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정치는 후진국 행태에서 벗어날 줄 모르고 경제는 갈수록 추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여당과 야당은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보다는 대권 잡기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있는 듯하다. 한때 모두가 경탄했던 한국의 경제성적표는 빨간 글씨로 채워지는 중이다. 순외채 350억달러, 매달 무역수지 적자 20여억달러선. 70∼80년대 중남미 국가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일부 국민들의 의식은 또 어떤가. 미국 및 일본 골프채 수입량은 세계 랭킹 1, 2위에 올라있다. 고급 위스키, 고액 포도주 수입도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일인당 국민소득 약 1만 달러, 인구 4,000여만명의 국가가 이 정도의 소비수준을 보이는 나라는 아마도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아! 대한민국」이란 말이 절로 터져 나온다. 그러나 이말은 88올림픽을 전후해 들려지던 대한민국 찬가가 아니다. 좌절과 한탄과 비아냥 등이 복합된 한숨일 따름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 책임의 대부분은 타락한 정치, 국민들의 삶에는 등한한채 정치만을 위한 정치,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정치, 경제문제까지도 정치논리로 지배하려는 무식한 정치 탓이다.
지금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김현철씨 스캔들도 따지고 보면 경제분야에 정치적인 힘이 잘못 개입한 전형적인 예다. 한보사태와 관련한 비리의혹과 이를 계기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현철 스캔들은 경제가 경제논리로만 굴러가는, 정치가 경제에 부당한 입질을 하지 않는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사안이다.
한국 근세사에서 정치적 압력을 무시한 뒤 당한 각종 탄압과 불이익을 숱하게 보아온 우리로서는 모든 면에서 정치가 우위한다는 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왜곡된 역사가 오늘의 현철 스캔들을 낳았다 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 정치인들의 잘못된 힘자랑이 드러났을 경우 이를 처벌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풍토가 조성되지 못한데 있다. 비리가 발생했을 경우 올챙이급만 잡히고 정작 큰 덩치들은 법망을 비웃듯 빠져나가는 지독한 불평등 구조가 개선돼야지만 나라에 미래가 있다.
한보의혹과 관련, 구속된 정계 실력자 한 명도 자신은 깃털에 불과하다며 훨씬 강한 배후가 있음을 공공연하게 토로했다. 이번 역시 큰 덩치 즉 깃털의 몸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몸체의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채 넘어갔다. 한보 비리 수사결과를 보는 대다수 국민들은 이번 역시 정치적 입김이 수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이같은 국민들의 불신감은 비단 정치나 검찰수사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까지 확산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심각하다.
현철씨가 과연 어느 정도의 비리를 저질렀는지는 모르나 그 진상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건전한 상식을 갖춘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엄정한 수사가 이루어져야지만 현 정부가 출범초기부터 입버릇처럼 강조해 온 역사 바로세우기도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그렇지 않고는 우리는 수많은 외신들로부터 조롱섞인 논평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조롱거리가 되는 나라의 상품 역시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도 한번쯤 심각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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