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70년을 맞은 우리 방송의 문제점을 하나씩 지적할 때마다 부딪히는 벽이었다. 그만큼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정확한 인식이야말로 해결의 실마리일 것이다. 방송학자, 방송종사자, 시청자에게 우리 방송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물어보았다.◎최창섭 서강대 언론대학원장/나눔·사랑·봉사의 철학 담긴 방송을
천할때
현대인의 삶 속에 「새로운 이웃」으로 등장한 방송은 스스로 다음과 같은 위상과 가치를 지녀야 한다.
첫째로 방송은 사람을 위해서 있어야 한다. 인간의 마음과 기술이 만나서 이룩된 방송이 기술 쪽으로만 치우치지 말고 인간 회복을 꾀해야 한다. 인간 존엄성이 부정되는 요소에 의해 비인간화 현상이 늘어날수록 방송은 오히려 인간화의 논리를 옹호해야 한다. 둘째로 방송은 사회라는 삶의 터전을 위해 이바지해야 한다. 사람이 진정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할 때에는 서로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 방송이 봉사자로 일할 때 방송활동은 가치를 얻는다.
셋째로 방송은 나눔을 실천하는 촉매여야 한다. 나눠야 할 것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까지 포괄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나 지식이나 교양, 오락이나 사랑을 주고받는 것도 나눔이다.
◎최상식 KBS 드라마국 주간/21세기 영상산업 국가적 투자 필요 21세기는 소프트웨어 시대다. 국가적 차원에서 영상산업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드라마의 경우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제작시스템의 정착이 시급하다.
우선 기획에서 연출까지 제작의 전과정을 책임지는 프로듀서제를 도입해야 한다. 또 주간 단위로 스튜디오 중심으로 제작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양의 경쟁」에서 「질의 경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외국처럼 연기자 양성 전문학교를 설립, 제대로 교육을 받은 연기자들을 길러내고 역량있는 방송작가 육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국내 드라마의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오디오와 영상 분야의 기술적인 선진화도 시급하다.
드라마 편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으나 제작능력에 비해서는 많아도 우리나라 시청자들의 기호를 생각해볼 때 일방적으로 줄일 수는 없는 입장이다.
◎송준영 방송개발원 연구원/방송인력 부족이 질 낮은 프로 양산
우리나라 방송의 가장 큰 문제점은 프로그램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문제다. 최근 TV와 라디오 채널이 증가하고 방송시간도 연장되면서 프로그램수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프로그램 제작여건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질낮은 프로그램, 외국 프로그램의 모방, 채널간 프로그램 중복, 스타시스템에 의존하는 제작관행, 출연료 인상에 의한 제작비 압박 등 문제는 결국 방송 제작인력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방송환경이 공급자시장에서 소비자시장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기적 부작용으로 이해되는 이같은 문제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안이 요구된다. 우선 제작인력을 발굴하고 재교육하는 본격적인 기관을 설립, 인력 개발 및 수급을 원할하게 해야 한다. 또 프로그램의 편성과 제작을 이원화, 간접제작비 비율을 감소시키고 프로그램 질을 높여야 한다.
◎이승정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실장/시청자 주권확립 말대신 실 요즘의 방송은 한마디로 양적 성장은 디지털인데, 프로그램의 질에 있어서는 아날로그 상태를 못벗어나 있다.
우리 방송은 국내 방송사 간의 시청률 경쟁에만 매달린 채 획일적인 오락기능에 매몰됨으로써 전체 국민의 문화적 감수성을 낮추고 있을 뿐 아니라 건전한 여론을 선도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공공의 역할도 방기하고 있다.
위성방송 등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함께 외국 방송 및 방송 프로그램의 개방은 국내 방송사의 질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공중파 시대에 구두선으로 외쳐왔던 「시청자를 위하여」가 명분만이 아닌 시청자주권의 실질적 확대라는 방송의 의지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질적 경쟁력이 제고될 것이다.<정리=박천호 기자>정리=박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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