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와 한보사태로 야기된 김영삼정권의 위기는 김대통령의 대국민사과와 「인사개혁」으로 한 고비를 넘기는가 싶었다. 그러나 「김현철 테이프」와 함께 봇물 터지듯 터져나오는 현철씨의 국정개입 의혹으로 「현철게이트」는 새로운 양상으로 증폭되고 있다.이 와중에도 이홍구 전 신한국당대표가 사실상 대선후보 출마를 선언하는 등 본격적인 경선준비가 시작되고 있다. 또 김대통령은 예상을 뒤엎고 이회창 고문을 신임 당대표로 지명함으로써 정국의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야권의 경우도 김대중 국민회의총재가 자민련과의 대선후보 단일화를 위한 전제조건인 내각제개헌에 대해 좀더 진전된 입장을 밝히는 등 내각제를 향한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국민회의의 「비주류」측이 이에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이같은 흐름은 앞으로 「대선 레이스」 이외에도 내각제를 둘러싼 개헌논쟁이 본격화할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와함께 주목해야 할 것은 야권의 내각제 수용 움직임과는 별도로 김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내각제 개헌을 수용할 가능성이다.
물론 김대통령은 그동안 내각제를 포함한 어떠한 개헌에도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혀왔고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그 이유는 세가지이다. 우선 김대통령은 장면정권의 경험을 토대로 「내각제는 곧 혼란이고 망국」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김대통령은 자신의 임기중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너무 여러번 해 이를 번복하기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김대중 총재와의 경쟁의식 내지 「대립」이다.
사실 김대통령에게 남은 일은 잘해야 신한국당이 정권재창출을 하고 자신은 2선으로 물러나는 일이다. 그럴 바에는 김종필 자민련총재가 주장해온 내각제를 받아들여 판을 바꾸고 일정지분의 권력을 가지고 자신이 원할 때까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도덕적인 문제를 일단 논외로 할 때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경우 나머지 양김 역시 일정 지분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대통령은 김대중 총재와의 역사적 대립과 관련하여, 자신과 함께 「3김시대」가 끝나기를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고 있다. 「현철게이트」의 파고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임기후 보장」문제가 김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일부 주장처럼 한보사태가 지난 대선자금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더욱 문제는 심각하다. 설사 정권재창출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새 대통령이 누가되든 그가 방패막이가 되어 임기후를 책임져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은 김대통령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결국 그나마 확실한 보장책은 내각제로 전환하여 일정 지분을 가지고 계속 권력의 정상에 앉아있는 것이다. 「현철게이트」의 파고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내각제의 유혹이 커질 수 밖에 없다. 김대통령이 이 유혹에 굴복하는 경우 3김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3김정치」를 영속화시키는 내각제 개헌이 급속하게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회창 고문을 당대표로 지명한 것은 김대통령이 아직 이같은 선택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현철게이트」의 파고가 위험수위에 다다르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
김대통령은 추호라도 내각제의 유혹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문제의 해결책은 내각제가 아니라 특단의 조치를 통한 현정권의 아킬레스건인 김현철문제의 발본적인 해결이다. 야권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내각제의 장단점이 아니다. 국가의 핵심적인 권력구조를 단순히 정략적 필요성에 의해 바꾸려는 태도가 문제다.<정치외교학>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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