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소유로부터의 자유/박찬식 논설위원(메아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소유로부터의 자유/박찬식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7.03.14 00:00
0 0

20년쯤 전 「25시」의 작가 게오르규가 우리나라를 찾아왔을 때의 일이다. 그는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묻는 기자 질문에 느닷없이 무덤 얘기를 꺼냈다.『세계 어느 곳을 가봐도 한국인의 무덤처럼 아늑한 느낌을 갖게 하는 무덤은 없습니다. 겉모습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욕심없이 자연에 순응하는 한국인의 품성을 나는 그 무덤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나무 관 속에 담긴 시신은 흙 속에 묻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관과 함께 곱게 썩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무덤의 봉분도 점점 낮아져 평평한 땅으로 돌아갑니다. 무덤의 안과 밖이 함께 원래의 자연으로 회귀하는 것이죠』

이 얘기 속에서는 그의 한국여행을 안내한 사람의 속삭임이 느껴지지만, 어쨌든 그는 한국의 산과 들을 닮은 한국인의 순박한 풍습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양지바른 곳 잔디밭에 엎드린 우리의 동그란 무덤을 그 상징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다. 다 놓아버리는 것이다. 덩샤오핑(등소평)의 장례를 보면서 사람들은 이 「소유하지 않음」의 의미를 새삼 되씹고 있다. 인간의 마지막 모습은 저렇게 홀가분해야 할 것이라고. 13억 중국인의 소유욕을 해방한 대개혁의 길을 열었으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 한 그의 최후가 과연 대인답다고.

하지만 각막을 기증하고 시신은 화장해 바다에 뿌려 달라고 했다는 그의 유서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다. 저우언라이(주은래)나 후야오방(호요방)이 죽었을때 처럼 애도인파가 반정부 시위군중으로 돌변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중국지도부가 등의 유족을 설득해 그런 유서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장례식을 짧고 간소하게 치를수록 그만큼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89년 톈안먼(천안문)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장본인이 등이고, 그의 뒤를 이은 장쩌민(강택민)체제의 뿌리가 아직 튼튼하지 못한 터에, 만일 장례식을 계기로 유혈진압의 책임을 묻는 폭동이라도 발생한다면, 중국은 삽시간에 전국이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었다. 한편으로 등의 유족은 이런저런 이권에 개입해 그가 살았을 때부터 적지않은 말썽이 있었다. 강은 등 일족에게 부정을 눈감아 줄테니 화장을 유언한 것으로 청원서를 만들라고 요구했다는 것이 그 유언조작설의 요지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관계자들이 입을 열기 전에는 확인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 또한 이 조작설의 자랑이다. 출처가 수상하긴 하지만 등만한 인물이 자신의 시신처리를 위해 구차하게 유언이나 유서 따위를 남기기야 했겠는가 하는 점만은 생시 그의 언동으로 미루어 의심해 볼만 하다.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철학은 소유로부터의 자유였다. 그는 재산은 말할 것도 없고 권력과 명예까지도 소유하지 않으려 한 것 같다. 무소유는 곧 자기부정이다. 독일의 전기작가 울리 프란츠는 그의 저서 「중국의 개혁자 덩샤오핑(Deng Xiaoping:Chinas Erneuerer)」 첫머리에 등 자신의 이런 경구를 인용하고 있다.

「전기를 쓰기로 말하자면 좋은 일은 물론 나쁜 일도 포함돼야 한다. 실수나 오류까지도. 그러므로 전기는 쓰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공산독재정권 최고지도자의 이념적 무오류성에 충실하려한 그의 자기부정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유언」은 어김없이 집행됐고, 그의 골회는 꽃잎과 함께 물결에 실려 대망의 홍콩 앞바다로 흘러 갔을 것이다. 명예로부터의 자유는 끝내 얻지 못한 것이다. 그 유언의 진위야 어떻든 부모의 유골까지 이장해 가며 발복을 원하는 대통령병 환자들로서야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