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전 육고초려도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대표는 93년 첫 인연을 맺은 이래 줄곧 극과 극을 오가는, 순탄치않은 관계를 이어왔다. 다만 일관된 점이 있다면 김대통령이 항상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첫 대면은 93년 1월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통령당선자 신분의 김대통령은 이대표(당시 대법관)를 네차례나 만나 새정부의 초대감사원장취임을 성사시킨다. 이로써 두 사람의 질긴 정치 인연은 시작된다.
감사원장 취임후 이대표의 거침없는 질주로 약간의 파열음은 있었지만 그래도 김대통령은 이대표에 대해 아낌없는 신뢰를 표시했다. 93년 12월 개각에서 이대표는 문민정부 2대 총리로 발탁됐다.
그러나 이 밀월기는 불과 128일만에 깨졌다. 취임이후 줄곧 「법대로」총리의 권한을 행사하려던 이대표의 소신이 청와대측의 심기를 건드렸다. 김대통령은 특히 통일정책조정회의에 대한 이총리의 간섭을 통치권침해로 받아들였고, 이는 마침내 총리교체라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이총리는 당시 김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해임통보를 하기 직전 간신히 사표제출을 하는 형식으로 쫓기듯 총리직을 물러나야 했다. 두 사람사이의 갈등기가 막을 올린 것이다. 이대표는 이후 재야에 있으면서 줄곧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양자간의 대립은 96년 4·11총선을 앞두고 반전됐다. 선거상황이 좋지않자 김대통령이 「육고초려」 끝에 이대표를 신한국당상임고문으로 전격 영입한 것이다. 김대통령에게는 이대표의 국민적 인기, 이대표로서는 자신의 「큰 뜻」을 펼 마당이라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총선이후 상황은 다시 달라져 이대표의 세가 확대일로를 걷자 여권핵심부의 견제가 심해졌다. 이에대해 이대표도 지지않고 수시로 되받아 양측의 관계는 다시 소원해 지는듯했다. 하지만 한보사태, 김현철씨 문제 등 정치적 위기상황이 조성되자 김대통령은 다시 이대표에게 「구원」을 청하게 됐다. 두번째 헤어졌다 만나는 셈이다. 또 갈등을 빚어 대립될지 여부는 두고봐야 할 것 같다.<신효섭 기자>신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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