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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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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의 ‘봄’

입력
1997.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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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한달 서울에서만 20개가 넘는 공연이 열리고 유명가수 무대는 매회 매진/댄스음악 판치는 가요 풍토에 질린 팬들의 취향 변화일까 방송사의 바람몰이 때문일까/‘라이브의 황제’ 이승환·이승철·강산에·이소라·이은미…/음악 하나만으로 승부하는 우리시대의 뮤지션들/관객과 하나되는 기쁨을 찾아 오늘도 무대에 오른다막이 오른다. 일순 고요해지는 객석. 어두운 무대에 가수가 등장한다. 천장의 조명이 그를 비춘다. 무대 뒤에 자리잡은 연주자들의 손 끝이 움직인다. 음악이 흐른다. 노래가 시작된다. 관객의 시선은 무대에 고정된다. 라이브 가수만이 느낄 수 있는 이 충일감.

가장 신경 써 고른 첫번째 노래. 1절이 끝나기 전에 무대와 객석은 하나가 된다. 라이브에서만 가능한 혼연일체.

라이브의 열기가 날로 더해간다. 라이브가 「뜨고」 있다. 1년중 가정의 달인 5월, 연말인 12월과 함께 가장 많은 공연이 열리는 3월. 서울에서만 20개가 넘는 공연이 열리고 있다. 소극장은 물론이고 수천명이 모이는 대형 공연도 여느 해보다 많다. 가수나 그룹들의 합동공연도 심심치 않게 열린다. 유명한 라이브가수의 공연은 전회 매진이다. 표 구하기가 어렵다.

관객들은 스타를 직접 보고 싶은 중학생에서부터 단체관람 온 직장인, 아이 손을 잡고 오는 30대 초·중반의 부부까지 다양하다. 라이브 전용 극장인 대학로의 라이브 1, 2와 신촌의 라이브극장 벗, 중극장 규모의 연강홀과 마당세실극장, 심지어 새로 문을 연 정동문화예술극장도 1년치 공연 일정이 벌써 다 잡혀있다.

새삼스레 웬 라이브 붐인가.

라이브가 한 나라 대중음악의 척도이며 가장 든든한 뿌리임을 갑작스레 깨닫기라도 한 것일까. 라이브 관계자들은 역설적이게도 가요계의 획일적인 풍토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지난 몇년동안 10대 위주의 댄스음악만이 계속 「공급」되면서 들을만한 음악에 대한 「수요」가 강렬하고 넓게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라이브는 음악을 「찾아 들으려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장을 제공한다.

방송국의 라이브 바람도 거들었다. 립 싱크(녹음에 맞춰 입만 벙긋거리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에 밀려 라이브로 방향을 바꾼 TV의 가요프로그램 덕에 「얼굴없는 가수」 취급을 받았던 실력있는 라이브 가수들이 하나둘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열악한 방송국 음향시설 탓에 제대로 된 라이브는 아직 기대하기 어렵지만 최소한 라이브냐, 방송이냐라는 터무니없는 이분법은 무너져가고 있는 셈이다. 라이브 바람에 가창력이 떨어지는 가수들의 무대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라이브는 가수의 꿈이자 의무이다. 많은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비로소 자신이 가수임을, 살아있음을 느낀다. 라이브 가수 권진원의 고백. 『온 사방이 캄캄한데 동그란 조명만이 나를 비춘다. 어둠 속에 보이는 시선은 모두 내게 꽂혀있다.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는 노래를 뱉어낼 때, 청중의 갈채를 온 몸으로 느낄 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을 맛본다』 한번 무대에 섰던 가수들은 그 박수갈채의 마력을 잊지 못한다. 라이브가수들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남모르는 땀을 흘린다. 혼자서 노래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라이브는 밀폐된 녹음실과는 다르다. 밴드와의 일체감, 조명과 음향,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과의 교감. 공연을 앞둔 가수들은 밤을 샌다. 일단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내기만 하면 즉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라이브계에도 스타가 있다. 라이브의 황제라는 이승환과 이승철을 비롯해, 강산에, 조관우, 장사익 등이다. 여자 가수로는 이소라를 필두로 이은미, 장혜진이 트로이카를 이룬다. 권진원, 장필순도 빼놓을 수 없다. 그룹으로는 넥스트가 최고. 단 한번도 실패한 공연이 없다. 동물원과 여행스케치, 낯선 사람들도 이에 못지않다. 김정민 박상민 리아 등은 다른 가수들의 라이브 게스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경우다. 이미자 나훈아 양희은 심수봉 조용필 등도 라이브 공연마다 매진을 기록하는 중년의 스타들이다. 김건모 신승훈 등의 라이브 공연도 물론이다.

라이브의 스타는 보통 스타와는 다르다. TV라는 강력한 매체의 도움없이 오직 음악 하나만으로 승부하는, 진정한 뮤지션들이다. 대부분 무대에서 처음 노래했고 무대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앞으로도 무대를 고집할 이들이기도 하다. 많으면 1년에 5, 6회, 적어도 1년에 두번 이상은 무대에 선다. 관객들과 직접 만난 이들의 음반은 반짝 스타들의 그것과는 달리 꾸준히 팔린다. 유행따라 음악이 바뀌는 일도 물론 없다.

그러나 라이브의 붐을 받쳐주지 못하는 하드웨어가 문제다. 공연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극장의 수가 절대 부족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음향과 조명, 객석 등 낙후한 시설은 라이브의 즐거움을 반감시킨다. 우리의 라이브가 외국과는 달리 소극장 중심인 것은 미성숙한 라이브 문화 외에 시설의 부족이 큰 원인이다. 여기에 히트곡의 나열, 또는 토크 쇼를 흉내낸 신변잡기적인 이야기에 급급한 기획력의 한계도 과제다.

라이브 극장 연강홀의 신호 부극장장은 『최고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가수는 물론이고 극장측도 깨닫기 시작했다. 단지 생음악이 아닌 「살아있는」 음악이라는 라이브의 본래 의미에 보다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한 지금의 라이브 붐은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브는 떠도 라이브판은 적자/관객 몰릴수록 씀씀이 커져/가수 개런티·극장 대관료 등 제외하면 잘해야 본전

라이브 열기가 되살아 나고 있다고는 해도 라이브판은 아직 적자다. 관객이 몰리는 것만큼 공연을 위한 씀씀이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 입장료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공연 비용은 극장 규모와 가수의 인지도, 공연 일수에 따라 달라지나 보통 400석 이하의 소극장 공연이 1,500만원, 500∼800석 규모의 중극장 공연이 2,500만원 전후다. 올림픽 체조경기장이나 잠실 실내체육관 같은 수천석 이상의 대형 공연은 무대를 비추는 대형 스크린이나 이동 조명 등 공연 설비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이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가수의 개런티. 대개 연주자들의 세션비(연주료)도 여기에 포함된다. 가수의 급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무명의 소극장 공연인 경우 300만원에서부터 관객 동원이 보장되는 스타급의 대형공연은 수천만원에 이른다. 전국을 도는 장기 공연인 경우는 억대로 높아지기도 한다.

수익금은 공연이 끝난 후 공연기획사와 6:4 혹은 5:5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매회 매진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던 고 김광석의 경우는 50여회에 육박하는 장기공연으로 억대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가수측에서 선불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흥행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공연의 속성상 기획사측은 선불을 꺼릴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계약단계에서 공연 경비를 줄이려는 기획사측과 가수측간의 실랑이가 치열하다. 구두로 계약했다가 며칠 뒤 보다 높은 개런티를 제시하는 다른 기획사와 계약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극장대관료도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라이브 공연장이 태부족이라 극장 잡기가 가수 잡기 만큼이나 어렵다. 중극장인 경우 회당 150만∼170만원, 주말인 경우는 조금 더 높다. 대형공연장은 1,000만원을 넘는다. 이밖에 음향 및 조명시설비, 포스터와 입장권 인쇄비, 홍보비, 진행비 등이 「제작비」 명목으로 들어간다. 돈을 들일수록 충실한 공연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지방공연인 경우는 대개 극장사용료를 별도로 내야 하는데 그나마 대학교 강당이나 시민회관, 문예회관 등을 제외하면 변변한 공연장을 찾기도 힘들다.

수익은 입장권 판매 뿐이다. 현재 대개의 공연 입장료는 1만∼2만원. 공연 규모나 일자, 수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매진에 가깝지 않고서는 손해를 면하기 힘들다. 그러나 입장료를 올릴 경우 관객들의 발길이 끊어질 우려가 있어 쉽게 올리지 못하는 형편이다. 지난해에는 이문세가 최고 5만원을 받아 공연기획자들 사이에서 원성을 사기도 했다. 모인기획 김명환 제작실장은 『예전에 비해 나아지기는 했지만 웬만한 「대박」이 아니고서는 라이브로 돈을 벌기란 아직도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도 가수들은 라이브의 매력을 잊지 못하고, 라이브무대에 서고 싶어한다.<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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