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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불로소득이 ‘주범’/일부계층 사치에 보통사람들도 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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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불로소득이 ‘주범’/일부계층 사치에 보통사람들도 모방

입력
1997.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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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못따르는 의식 ‘천민자본주의의 표본’/체계적인 소비자 교육과 ‘돈흐름 투명화’가 시급우리국민의 과소비는 경제와 사회, 의식의 「왜곡」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건전한 소비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십조원으로 추정되는 음성자금과 불로소득에 바탕한 일부 계층의 호화사치성 소비가 일반 국민의 모방심리를 자극해 경쟁적인 과소비를 가져왔다는 것.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의 신도철 교수는 『과소비의 1차적 원인은 음성자금』이라며 『정당하지 않은 부는 반드시 과도한 소비로 이어지는데 일반 국민이 이를 모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민경제교육연구소의 김해동 박사,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모임의 강광파상임이사도 『자금을 공개하기 보다는 써버리는 게 속편한 사람들의 무분별한 소비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경제학과 박승 교수는 전반적인 국민의식의 문제를 강조했다. 『과소비는 물질의 선진화를 정신이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생긴 천민자본주의적 현상입니다. 가족 이기주의와 출세주의적 교육관, 한풀이식 소비행태 등 후진적 의식과 문화가 과소비를 낳고 있어요. 고성장, 고소득시대에 형성된 과욕구가 경제가 침체된 지금까지 꺾이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산성만 중시하고 윤리나 도덕성을 경시해 온 정부의 경제정책도 이를 방조한 측면이 있지요. 어쩌면 국민들이 대량실업과 도산사태 등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비로소 과소비 현상이 진정될 지도 모릅니다』

과소비의 원인을 주거형태 및 문화면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소비주도층인 주부들이 아파트생활의 단절감과 단조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과소비를 일삼고 있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원의 박희정 수석연구원은 『선진국의 경우 같은 아파트단지라도 시민공원 등 여가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해 주부들이 소비 이외에는 다른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내부구조가 똑같은 아파트에서 가구와 장식 등을 고급화, 자기집을 돋보이게 하려는 주부들의 경쟁심리도 과소비를 부채질한다』고 지적했다.

과소비 해소방안으로는 우선 국민의식의 개혁을 위한 체계적인 소비자 교육과 시민운동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YMCA 시민중계실 신종원 실장은 『성장일변도의 공급위주 경제정책 속에서 소비자교육을 소홀히 해 과소비라는 폐해가 나타났다』며 『미래의 소비자인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경품제공이나 교묘한 이미지 조작 등을 통해 과소비를 부추기는 각종 기업행태에 대한 감시활동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소비자 의식개혁 운동만으로는 과소비 억제에 한계가 있다. 과소비를 근본적으로 막기위해서는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제도적 장치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강철규 교수는 『왜곡된 경제구조와 이를 틈탄 불로소득에 대해 과감한 시정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부동산 투기 억제, 접대비 삭감, 뇌물수수관행을 낳는 각종 규제의 완화 등을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했다.<유성식 기자>

◎과소비 파는 재벌기업/백화점들 고급수입품 판매 앞장/경품축제·대중매체 광고로 유혹

대규모 유통망을 장악한 재벌기업이 사치성 소비재 수입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 대중매체를 이용, 과소비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모재벌기업이 운영하는 강남 G백화점은 2개 건물 가운데 하나에서 고급 수입상품만을 취급하고 있다. 이 백화점은 결혼철을 맞아 20일부터 고가품 위주의 「혼수보석대전」까지 열 계획이다. 재벌기업의 현금창구 역할을 해 온 유명 백화점 치고 수익률이 높은 수입품 판매에 애쓰지 않는 곳이 없다. 백화점의 경품축제도 고객에 과소비를 부추긴다. 서울 강남 H백화점의 경우 지난달 25일 재고 가전제품을 대대적으로 할인판매한다고 선전했으나 실제로는 수십점만을 내 놓아 고객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재벌이 장악한 국내 가전업계는 6개월∼1년 간격으로 내수시장을 겨냥한 새 모델을 내놓아 신제품 구입욕구를 자극한다. 새 모델이라고 해봐야 사소한 기능과 디자인만 바꾼 것이 대부분이다. 신혼부부의 혼수장만 문화나 새집에 이사갈 때면 대부분 새살림으로 바꿔 버리는 풍조도 「신혼대축제」 등 끊임없이 수요를 자극하는 기업의 전략에서 비롯했다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과소비추방 범국민운동본부 박찬성 사무총장은 『재벌과 대중매체가 과소비의 주범』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케이블 TV 홈쇼핑채널이 외제 소비재 정보 제공에 시간을 할애한다. 여성지 광고도 고급 소비재 정보로 메워져 있다. 여성지는 잡지보다 더 비싼 경품을 제공하기 일쑤다. M여성지는 올 1월호 「현물부록」으로 메르베 아이섀도를, W여성지는 에스테 로더 데이웨이 크림을 제공했다. 한국소비자연맹 여운연 사무총장은 『책 때문에 불필요한 경품을 받아야 하고 경품 때문에 불필요한 책을 구입하는 그릇된 소비행태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YMCA 오재관 정책기획국장은 『기업이 제품 판매신장을 위해 각종 대중매체를 동원, 충동구매와 과소비를 부채질하고 있다』며 『기업은 건전한 기업윤리를 바탕으로 제품의 질을 향상시키고 정확한 상품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진동 기자>

◎근검절약 몸에 밴 유럽/새학기 앞서 입던 교복 ‘점블세일’/자녀 결혼선물 포크세트면 최고

최근 교복업체가 중·고교생 교복을 판매하면서 가죽외장 다이어리와 무선호출기 등을 경품으로 제공해 학생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와 일부 학부모가 과소비를 부채질한다며 제조회사에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영국의 신학기 풍경은 사뭇 다르다. 교복을 입는 학교에서는 매년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 어김없이 점블(Jumble)세일 행사가 열린다.

학생들이 졸업하거나 학년이 바뀌면서 안입게 된 교복을 싼 값에 팔고 사는 교내시장이 서는 것. 이때 학생과 학부모는 자연스럽게 몸에 맞는 옷을 골라 사고 파는 과정에서 친목도 도모한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 국민들에게는 합리적인 소비생활과 근검절약이 신념처럼 돼 있다. 국민 1인당 담세율이 높고 고도의 사회보장으로 연금 등의 부담이 커 개인이 임의로 쓸 수 있는 돈이 실제로 별로 없다는 것이 소비억제의 한 요인이다.

「더치 페이(Dutch Pay)」라는 말을 만들어 낸 네덜란드에서는 정부가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려 전자제품 등을 구매할 경우 그 이자만큼을 세금에서 감면하는 정책을 실시할 정도다. 총신대 김지찬 교수는 『유럽은 검약을 강조하는 캘빈주의 때문에 과소비를 죄악시하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세금이 소득의 30% 수준인데다 물품에 붙는 세금이 평균 18%를 넘어 과소비가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더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경우 결혼식때 부모가 자녀들에게 해주는 가장 큰 선물은 고급 포크와 나이프세트. 싱가포르는 월급의 22%가량을 강제 저축하는 CPF(Central Provident Fund)제도와 청렴한 사회구조 때문에 불로소득이 발생할 여지가 없어 과소비란 상상할 수도 없다.

『불로소득 등 음성적인 부의 축적이 어렵고 부의 분배가 상대적으로 평등한 나라에서는 과소비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이상연 기자>

◎“큰 차가 좋다”/승용차 평균크기 세계 2위/교체주기도 3.4년에 불과

우리 국민이 자동차 구입에 쏟아붓는 돈의 규모는 세계 정상급이다. 한국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승용차의 평균면적은 7.14㎡로 8.49㎡의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다. 일본은 6.89㎡, 독일과 프랑스도 각각 7.0㎡, 6.60㎡에 불과하다. 소득은 따라가지 못하는데도 크고 비싼 것만 좋아하는 우리국민의 과소비 풍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승용차의 교체주기도 유난히 짧다. 현대자동차에 따르면 지난해를 기준으로 자동차 소유자는 평균 3.4년만에 차를 교체했다. 95년의 평균 3.64년보다 더욱 짧아졌다. 「자동차왕국」인 미국의 교체주기는 5년 정도이고 영국, 프랑스, 호주 등 다른 선진국은 이보다도 교체주기가 길 뿐 아니라 중고차 구입이 일상화한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짧다.

차종별 교체주기는 배기량 2,000㏄이상 대형차 소유자가 2.86년으로 가장 짧아 역시 부유층이 승용차 과소비를 주도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반면 1,500㏄이하 소형차는 3.7년으로 사용기간이 가장 길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과거 국산차의 내구연한이 짧아 자주 새 차로 바꿔야 했지만 90년대 들어 국산차도 보통 10년은 탈 수 있게 됐다』면서 『새 모델이 나오면 산지 1∼3개월 된 차들이 중고차시장에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개탄했다.<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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