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보완문제가 실시 3년반만에 공식적으로 제기되면서 찬반양론이 거세다.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이 취임직후 『실명제가 비리척결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촉발된 보완논쟁은 실시 당시의 논란을 재현하는듯 하다. 실명제보완의 방향과 문제점을 점검해본다.<편집자 주> ◎찬성 의견/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상무/금융시장 왜곡·과소비 방지위해 자금출처조사 면제 등 시행/유휴 지하자금 산업자금화해야 편집자>
새 내각의 출범을 계기로 금융실명제에 대한 보완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실로 그동안 정부나 우리 국민 모두가 실명제가 실시되면 지하자금이 양성화해 공평과세가 이루어져 일시에 선진국으로서의 기반이 갖추어질 것이라는 착각속에 살아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국내에서 축적된 부가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고, 우리 소득수준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과소비행태가 만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93년 대통령의 결단으로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지난 수백년에 걸쳐 형성된 우리의 가족제도와 상속관행 그리고 합리성보다는 관계를 중시하는 정치·사회적 제도를 일시에 부정했다. 즉 이 제도 실시에 적극 호응하여 실명전환하는 거액자금에 대해 자금출처를 철저히 조사하여 과거 탈세여부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실명전환을 가로막고 금융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 하겠다. 실제로 약 30조원에 이르는 차명계좌의 실명화율이 12%밖에 되지않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새 내각은 모든 국민이 동참할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으로 그리고 유휴 지하자금을 양성화하여 산업자금화하는 방향으로 실명제를 개선해야겠다. 이를 위해 우선 정부는 향후 실명전환하는 자금에 대해서는 과다여부를 불문하고 자금출처조사를 면제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정부가 이를 공약해도 지하자금이 얼마나 제도권으로 들어올지 의문이다. 현재 정부에서도 고려하고 있는 바와 같이 긴급명령형태로 추진되고 있는 금융실명제를 국회에서 입법화할 때 전환자금에 대해서는 일정액의 도강세를 부담시키고 자금출처에 대한 조사를 법으로 면제해줄 필요가 있다.
장기 무기명채권의 발행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지금 일부에서는 이의 발행을 실명제의 퇴색으로 여기고 반대하고 있으나 무기명을 대가로 표면금리 5%의 20년만기 복리식 채권을 발행하면 약 30%내외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효과가 있다. 해방과 함께 근대정부가 수립된 이후 개인의 부가 직계가족으로 3대이상 상속되면서 정부가 거둔 상속세가 미미한 수준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채권발행은 실제적으로는 과세형평을 기하게 된다. 정부가 이렇게 조달한 자금을 사회간접자본 확충이나 중소기업 발전자금으로 활용하고 날로 떨어지고 있는 저축의욕을 부추길 수 있다면 무기명 장기채의 발행은 실명전환의 최선책은 아니더라도 차선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양성화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종합소득세의 최고세율 40%는 하향조정되어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종합적인 보완책을 마련, 꾸준히 정치·사회 주변제도를 개선하고 일관성있게 행정적인 정착노력을 병행해가야만 오랜 관행이 점차 개선되어 경제주체들의 행동이 새로운 정책환경에 적응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반대 의견/이필상 고려대 교수·경영학/경제위기 주요원인 지목은 억지/오히려 음성거래 차단 통해 부패사슬 끊어야 경쟁력도 강화
금융실명제가 경제난의 주범으로 몰려 위기를 맞고 있다. 강경식 경제팀은 금융실명제가 지하자금의 양성화를 막아 경제난을 야기하고 있다고 판단, 자금출처조사를 면제하는 등 보완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경제위기를 빌미로 금융실명제를 무력화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현재의 경제위기는 금융실명제와는 관련이 없다. 93년 8월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된 이후 94년과 95년 우리경제는 9%수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34%대에 머물던 저축률도 증가세를 보여 95년에 36%를 넘어섰다. 이제와서 금융실명제를 경제불황의 원인으로 보는 것은 억지다. 그동안 금융실명제는 비리를 주도한 기득권층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차명거래를 사실상 허용하고 예금비밀보호 규정으로 비리를 덮는 등 무력한 개혁으로 변질되었다. 우리 경제위기는 국제경쟁력의 하락으로 인해 나타난 구조적 현상이다. 정경 유착이라는 비리체제하에 우리경제는 외형·실적위주의 부실성장을 했다. 그리고 일본 등 선진국의 이득을 증가시키는 종속적 체제로 발전했다. 이런 상태에서 무한경쟁시대가 되자 경제는 수출기반을 상실하고 방향감각을 잃으며 좌초하고 말았다. 최근에 터진 한보사태는 정경유착이 빚어낸 우리경제의 허구성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렇게 볼때 경제를 살리는 길은 오히려 금융실명제를 강화하여 비리와 부패의 사슬을 끊고 투명하고 창의적인 시장경제 발전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금융실명제의 보완조치로 무기명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비실명거래를 합법화하여 비리를 조장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또 실명전환자금에 대해 자금출처조사를 면제하는 조치는 검은돈에 면죄부를 주고 부의 불법증여와 상속을 허용하며 지하음성자금을 확대재생산하는 기회를 준다. 더 나아가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완화시키는 것은 극소수 부유층을 위해 공평과세를 부인하는 것이다. 결국 실명제의 보완은 비리와 부패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지하자금을 산업자금화하고 건전한 산업발전을 유도하려면 금융실명제의 결함을 고쳐 음성거래의 통로를 차단해야 한다. 즉 금융기관을 통하는 모든 차명거래를 불법화하고, 위반시 금융기관뿐 아니라 거래자도 엄한 벌을 받게해야 한다. 상시감시체제가 필요하다.
특히 예금비밀보호규정을 객관적으로 운영하여 실명화에 따른 불안감을 제거해야 한다. 표적사정의 대상이 될 경우 금융거래의 실명화는 비리를 추적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또 금융실명제를 정착시키는데 중요한 것이 금융소득종합과세이다. 현재와 같이 종합과세에 예외가 많을 경우 금융실명제는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모든 소득에 대한 과세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세율을 대폭 인하하여 금융실명제를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가는 제도로 운영해야 한다.
◎93년 전격실시이후 작년까진 “정착단계” 평가/강경식 부총리 취임직후 보완론 제기로 논란
강부총리는 취임초 실명제를 완전 뜯어고칠듯한 기세였지만 최근엔 『기본정신을 흔들면서까지 보완할 생각이 없다』고 한발 물러선 상태다.
공평과세와 지하경제 축소를 위해 93년 8월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전격실시된 금융실명제는 그동안 두차례의 후속조치와 각종 비과세·분리과세 저축상품 신설 등으로 보완돼 왔다. 저축률 하락과 외화유출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게 명분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실명제 실시 3년을 맞아 『금융시장이 정상적인 모습을 회복했고 실물경제도 호조를 보여 순조롭게 정착되고 있다. 97년 5월로 예정된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시행되면 실명제가 제도적으로 완성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때문에 강부총리의 문제제기는 그간 정부의 자평을 부정하는 것이며, 합의차명의 처벌근거를 마련하라며 대체입법을 주장해온 시민단체의 보완론과도 궤를 달리한다. 이번 보완론의 핵심은 작년말 현재 35조원으로 추정되는 지하의 검은 돈을 산업자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당근」을 마련하는 것이다.
보완론자들은 실명전환을 위해 자금출처를 묻지않는 대신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무기명 장기채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실명제=자금노출」로 인식한 부유층들이 소비를 늘렸고, 이것이 전시효과 등을 통해 중산층까지 퍼지면서 과소비가 확산됐으며, 저축률 감소(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반대론자들은 그러나 세금을 덜 내는 지하경제는 있지만 돈은 금융권에 들어와있기 때문에 지하자금은 없으며 실명제가 과소비를 부추긴 「경제난의 주범」이라는 논리적 근거가 빈약하다고 반박한다. 또 지하경제규모를 축소하기 위해서는 실명제를 강화해야지 완화의 성격이 짙은 보완은 안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보완론이 완화론으로 비춰지고 있는데다 그간 실명제가 문민정부 최대 치적이라고 강조해온 터여서 이 논쟁을 곤혹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보완론의 결과가 더욱 주목된다.
한편 논쟁의 주요 근거가 되고있는 국내 총저축률(총 저축액을 경상 국내총생산으로로 나눈 것)은 92년 34.9%에서 실명제 실시 첫해인 93년 35.2%, 95년 36.2%로 각각 높아졌다가 지난해에는 수출부진 등으로 34%대로 떨어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정희경 기자>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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