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기반 바탕 대선주자로 거론최형우 상임고문은 신한국당내 최대세력인 민주계의 좌장으로 통한다. 그의 이같은 정치적 위상은 김영삼 대통령과 오랜 세월동안 민주화 투쟁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해온 경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김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최고문은 고 김동영 의원과 함께 좌동영, 우형우로 불리기도 했다.
최고문은 92년 대선때 김영삼 대통령의 최대 사조직인 「민주산악회」를 이끌면서 문민정부 창출에 한몫을 했다. 이에 앞서 90년 1월 3당합당이 이뤄진뒤 정무1장관을 맡아 당시 여권내 반대세력을 회유·무마하면서 김대통령의 대권가도를 닦았다. 문민정부 출범후 초대 신한국당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최고문은 특유의 뚝심과 충성심을 바탕으로 개혁드라이브에 나섰다. 이러한 최고문의 정치적 행보는 아들의 대학편법입학 시비로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나 얼마후 내무장관으로 발탁되는 등 김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인정받아 왔다.
신한국당의 대선주자로 거론돼 온 최고문은 최근 탄탄한 당내기반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취약한 대중적 지지확보에 부심해왔다. 그는 본격적인 대선 경선에 대비, 황명수 전 의원에게 민주산악회의 재건을 맡기는 한편 중견언론인 출신인 황소웅씨를 비서실장으로 영입하는 등 대선캠프를 보강하기도 했다.
최고문은 노동법 파동에 이어 한보사태가 불거지면서 민주계가 위축되자 곤혹스러운 입장에 서게 됐다. 특히 한보사태에 민주계가 대거 연루되면서 대선경쟁에서 「민주계 배제론」이 제기되자 그의 정치적 위상도 크게 흔들려 왔다. 더욱이 그는 한보사태에 연루됐다는 구설수에 오르내리기도 했다.<고태성 기자>고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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