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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7,000년 의연한 ‘세계문화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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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7,000년 의연한 ‘세계문화의 보고’

입력
1997.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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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 지중해와 접하고 있는 조그만 나라 레바논. 고대와 현대, 서구의 기독교 문명과 동방의 이슬람 문명. 이질적인 두 세계가 공존하는 공간. 레바논은 현대의 「예언자」 칼릴 지브란을 키워낸 예지의 땅이기도 하다.레바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좁은 시·공간 감각을 버려야 한다. 레바논의 도시들은 대부분 BC 5,000년 경에 건설된 유서깊은 고대 도시들이다. 국토면적은 경기도 정도에 불과하지만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네 곳(발벡, 비블로스, 티르, 안자)이나 있다. 나라 전체가 유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동지역이라고 해서 건조한 사막과 거친 모래바람을 연상했다면 큰 오산이다. 지중해의 따사로운 태양과 소금기를 머금은 감미로운 해풍이 우리를 반긴다. 레바논은 여름에는 피서를 오는 중동인들로 붐빈다. 산간지방은 겨울에 눈이 오기 때문에 중동지역에서 유일하게 겨울철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 충분한 햇빛과 때맞춰 내리는 비, 잔설이 녹아내려 만들어진 풍부한 지하수는 과일과 채소 재배가 가능한 풍요로운 옥토를 만들어주었다.

로마, 마케도니아, 페르시아, 이집트, 십자군…. 세계 정복에 나선 제국들은 이 비옥한 옥토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레바논은 언제나 크고 작은 잦은 외침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종족간의 갈등도 끊이지 않았다. 5개의 회교 그룹, 11개 기독교 그룹, 4개의 그리스 정교 그룹, 6개의 가톨릭 그룹, 1개의 프로테스탄트 그룹. 조그만 나라에 이렇게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공동체가 모여 살고 있다. 레바논 내전의 원인도 서로 다른 문화간의 충돌이었다. 레바논에는 산등성이 언덕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 많은데 외침과 종족간의 싸움때마다 산으로 피신해간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레바논인들이 즐겨쓰는 말 중에 「I.B.M 」이라는 말이 있다. 「인샬라(Inshalla, 신의 뜻대로)」 「부크라(Boukra, 이다음에)」 「말리쉬(Maalesh, 상관없어)」 모든 것을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낙천적이고 느긋한 태도. 다양한 종교와 문화 그리고 잦은 외침. 굴곡진 역사에 적응하면서 살아온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한때 레바논은 「중동의 프랑스」라고 불리울 정도로 관광 휴양지로 이름이 높았다. 내전 전 국민총소득의 20%가 관광수입이었다. 그러나 15년간의 내전은 그 모든 것을 앗아갔다. 내전중 많은 유적지가 파괴됐다. 이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네스코에서 내전 중이던 84년 레바논의 네 도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레바논은 현재 전쟁의 폐허를 딛고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직도 베이루트를 비롯해 곳곳에 내전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레바논은 그것조차도 역사의 흔적으로 소화해내고 있다.

북쪽에 있는 페니키아인의 항구도시 비블로스를 비롯해 고대 로마의 유적지 발벡과 안자, 베이루트 북쪽에 있는 비빌로스와 트리폴리, 남쪽에 있는 시돈, 티르. 모두 역사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서깊은 유적지들이다.

▷발벡(Baalbeck)◁

○고대 로마건축양식 집대성

레바논 산맥과 안티 레바논 산맥 사이에 푸른 융단처럼 펼쳐진 베카(Bekaa) 평원에 우뚝 솟은 발벡은 고대 로마의 건축양식을 집대성해 놓았다. 로마의 변방에 이렇게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된 거대신전이 남아있다는 것이 신비롭다. 당시 발벡은 로마의 곡창지대로 전략적인 요충지였기 때문에 지배를 공고히 하기위해 로마는 거대한 신전을 건축했던 것. 로마가 멸망한 뒤에도 발벡에서 신전 건축이 계속됐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신전은 허물어지고 기단과 지름 2m, 높이 20m에 달하는 6개의 거대 기둥만 남아있는 주피터 신전과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바쿠스 신전이 2,000년 로마의 위업을 한눈에 보여준다.

▷비블로스(Byblos)◁

○십자군 성채 절경

베이루트에서 북쪽으로 해변을 따라 37㎞ 떨어진 곳에 위치한 비블로스는 BC 7,000년 경에 세워진 페니키아인의 오래된 도시. 아랍어로는 즈베일(Jbeil). 성경에는 게발(Gebal)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다. 「Byblos」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파피루스」(papyrus). 비블로스가 파피루스의 교역지로 유명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비빌로스는 성서(bible)의 어원이기도 하다. 비블로스에는 알파벳의 원형을 보여주는 유적이 남아있다. 페니키아의 왕 아히람의 무덤벽에는 현대 알파벳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비명이 새겨져있다. 신석기, 청동기시대의 주거지터와 청동기 시대에 지어진 L자형의 신전(BC 2,800∼2,700년), 중기 청동기 시대의 오벨리스크 신전(BC 1,900∼1,600년), 로마의 반원형 극장과 성벽, 석관 등이 고고학적으로 가치있는 유적들. 해변에 세워진 십자군 성채는 뛰어난 경치를 보여준다.

▷제이타 동굴(Jeita Grotto)◁

○자연이 만든 지하 대성당

풍부한 지하수가 만들어낸 찬란한 지하 대성당. 제이타 동굴을 건축한 이는 영겁의 시간과 물이다. 베이루트에서 20㎞ 떨어진 곳에 있다. 동굴에 들어서면 먼저 깨끗하고 차가운 공기를 만난다. 간간이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고드름처럼 동굴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과 동굴 바닥에 자라나는 석순, 거대한 석주, 유석과 드레이퍼리 등 동굴 침전물들을 걸어다니며 관찰할 수 있고 보트를 타고 지하호수를 둘러볼 수 있다. 자연의 신비를 만끽하며 동굴산책에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 제이타 동굴에서는 동굴의 공명을 이용한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사진 촬영은 할 수 없다.▷레바논의 음식◁

○전채요리 ‘메자’ 등 다양

레바논은 중동지역에서 음식이 맛있기로 소문난 나라. 레바논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은 「흐비스」라는 얇은 밀가루 빵에 「타불리」라고 하는 야채 샐러드와 마늘, 땅콩을 갈아 올리브유에 섞은 각종 소스를 얹어 싸먹는 일종의 샌드위치. 이것이 일종의 전채요리로 메자(mezze)라고 한다. 주요리로는 양고기와 닭고기 등을 양념해 꼬치에 끼워 구운 케밥(kebab), 삶은 양골과 양 생간 육회가 야채와 곁들여져 나온다. 메자에 어울리는 술은 아락(Arak). 아니스 열매를 주정에 우려낸 아락은 보통 물을 타서 마시는데 소다수같은 희뿌연색에 소주와 비슷한 맛이 난다.

덥고 건조한 레바논의 여름은 포도 수확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후. 레바논의 포도주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짜라」(ksara)와 「샤또 케프라야」(Chateau Kefraya)가 손꼽힌다. 「샤또 무잘」(Chateau Musar」과 「나카드」(Nakad) 도 좋은 포도주에 속한다.

◎이것만은 알고 갑시다/직행없어 동남아·유럽 경유… 수돗물 그대로 마시지 말 것

레바논의 화폐 단위는 레바논 리라(L.L.) 미화 1달러가 1,500 L.L.이다. 레바논 어디서나 미국 달러가 통용된다. 거리 곳곳에 환전소가 있어서 쉽게 환전할 수 있다. 비자는 레바논 대사관(02―794―6482)에서 받으면 된다. 관광비자일 경우 신청 후 3∼4일이 걸리는데 여권, 사진 두 장, 수수료 1만 6,000원이 필요하다. 이스라엘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레바논 공항에서 입국수속시 여권에 이스라엘 사증이 찍혀 있으면 입국이 거부된다.

가는 방법은 동남 아시아 경유와 유럽 경유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유럽을 경유할 경우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모스크바 등을 지난다. 동남 아시아 경유시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 비행기를 갈아탄다. 유럽 경유시 항공요금은 150만원 정도. 베이루트에 취항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항공(02―777―7761)을 이용할 경우 쿠알라룸프에서 1박을 해야 한다. 숙박비는 말레이시아 항공에서 제공한다. 항공요금은 성수기 74만원, 비수기 81만원. 비용이나 시간면에서는 동남 아시아를 경유하는 것이 경제적. 노선의 선택폭이 넓다는 것은 유럽 경유시의 장점.

레바논 여행은 베이루트에 숙소를 정하고 택시로 이동하는 것이 편하다. 레바논의 관광지는 모두 당일 코스로 둘러볼 수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서두르면 일정의 무리는 없다.

레바논은 분명 쉽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해야 하고 거리도 멀다. 그러나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추천할 만하다. 레바논만을 여행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이므로 동남아시아 여행이나 유럽 여행의 한 코스로 잡는 것이 좋다.

베이루트에서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것은 금물. 전쟁 중에 상수도 시설이 많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베이루트 시민은 대부분 생수를 사마신다. 레바논은 지하수가 풍부하기 때문에 생수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다.

베이루트 거리에는 공중전화가 없다. 정부 예산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집에 연락을 하려면 숙소에서 전화를 걸어야 한다. 레바논에 관한 관광정보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http//web.cyberia.net.lb/tourist).<베이루트=김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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