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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유서 이야기(정달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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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유서 이야기(정달영 칼럼)

입력
1997.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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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사회에서는 요즘이 사순절 시기이다. 삼바 축제류의 카니발들이 하루 아침 오간데 없이 사라져, 도시는 어느덧 근엄한 표정이 된다. 사람들은 한동안 잊고 살던 회개며 고통이며 희생 따위의 무거운 말들을 떠올리거나 죽음의 실상과 그 의미에 대해서까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다. 숙연한 계절이다.소산이며 구룡과 같은 정치적 희화와 허상들만이 치열한 관심사가 되고 있는 세상에서 갑자기 사순절을 말하는 것은 번지수가 잘 맞지 않는다. 귀기울여 들어줄 만한 흥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죽음을 담론의 주제로 올리거나 「죽음 이후」를 대비하자며 소매를 잡아끄는 행위는 우선 한가롭고, 귀찮은 일로 여기기 십상이다.

그러나, 귀찮아도 꼭 들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가 여기 있다. 사순절 시기에 들려온 이야기다. 두 「유서」에 관한 것이다.

한달 전 사순절을 앞둔 때에, 가톨릭서울대교구의 최창무 주교는 그가 담당한 사회사목부의 신부 9명과 함께 공동의 유서를 써서 교구사무처에 맡겼는데, 사후 시신의 처리에 관한 유서의 내용인 즉 『모든 장기는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기증할 것, 남은 시신은 화장할 것』이었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유서는 묘비 설치는 물론 유해의 납골당 안치도 일절 하지 말도록 당부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의 유서는 고통받는 이웃을 위한 「나눔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사제로서의 모범을 보인 것이고, 특히 국가적 난제가 되어가는 묘지문제에 대해서는 솔선해서 「해답」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된다. 화장의 경우는 부활 신앙으로 인한 매장풍습이 기독교의 오랜 전통이었음을 감안하면 깜짝 놀랄만한 용단이지만, 가톨릭 교리면에서는 지난 63년 교황청이 화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화장 유서」가 다시 감동을 준 것은 지난달 19일 세상을 떠난 중국의 최고지도자 덩샤오핑(등소평)이다. 그의 뜻을 받들어 가족들의 「편지」형식에 담아 장쩌민(강택민) 총서기와 당중앙에 전달되고 공개된 유서는 『각막은 기증하고 시체는 의학연구를 위한 해부용으로 제공하며, 화장 후 유골은 바다에 뿌리라』는 내용을 담았다. 놀라운 것은 「고별의식을 거행하지 말라, 집에는 빈소를 설치하지 말라, 유골함은 당기로 덮고 그 위에 사진을 걸어 추도대회를 거행하라」는 세세한 당부.

실제로 장례식은 1만명이 참가한 추도대회만으로 간소하게 거행되고 그의 유해는 중국연안 바다에 뿌려져, 100만명의 대군중이 베이징의 인민대회당과 천안문광장을 메운 장례행사를 거쳐 방부제로 특수처리된 채 20년 넘게 기념관에 누운 마오쩌둥(모택동)과 크게 비교된다. 그의 유지는 기념관에 실물로 누워 인민의 순례 대상이 되는 지도자는 마오 한 사람이면 족하다는 「겸손」을 보인 것으로 이해되지만, 사실은 대륙을 둘러싼 조국의 앞바다에 미세한 분말로 뿌려짐으로써 자신의 도도한 애국심과 거인다운 자부심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뜻이 강하다. 그는 여러 모로 역사의 거인이다.

우리나라의 묘지는 몇해 전 통계로도 966㎢로, 남한 면적의 1%나 된다. 이 크기는 서울 전체면적의 1.6배, 전국의 공단지역 등 생산공간의 2.5배에 해당한다. 한해에 20만기의 묘지가 늘어 여의도 3배 크기의 국토가 잠식되는데, 이는 우리의 오랜 매장 풍습이 고쳐지지 않고서는 막을 길이 없다. 문제는 「매장에서 화장으로」 장례와 묘지 제도를 과감하게 바꿔가는 것인데, 이야말로 의식의 전환이 가장 필요한 부분의 하나다.

땅에 묻힌다는 것이 무엇인가. 죽음은 어디로 가는 출발인가. 경주의 거대한 신라 왕릉들에는 온갖 황금의 보물과 함께 영생의 염원이 곳곳에 묻혀 있으나 후세의 순례객을 감동하게 하는 유일한 영생의 자리는 동해 앞바다 바위틈에 호국룡으로 뿌려진 문무대왕의 수중능침이다.

뼛가루로 뿌려진 지도자의 겸손이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이 사순절의 시기는 죽음이라는 영원한 「인간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두 「유서」가 있어 다행스럽다.<본사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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