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란 무엇인가. 아마 아이들은 빽빽한 아파트숲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니면 꽉 찬 도로와 그 사이의 콘크리트 공간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거기에 우리들의 삶이 살아있다.지금 국토 방방곡곡이 아파트숲으로 바뀌고 있다. 한 번 시간을 내어 교외로 나가보라. 논두렁이나 밭이랑 사이, 산등성이에도 아파트가 솟아 오르고 있다. 집은 부족하고 땅값은 비싸니 어쩌랴. 그래서 진산과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로 둘러싸여 있던 우리의 도시가 빽빽히 솟아오른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이고 있다. 우리시대의 새로운 스카이라인이다.
따져 보면 토지이용에 대한, 도시에 대한, 주택에 대한 정책에 잘못이 있었던 것이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만성적인 주택부족에 시달려왔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가 넘는다는 지금도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68%밖에 안된다. 항상 공급부족에 시달리다 보니 되는대로 난개발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한 번 망가진 토지이용의 질서는 바로 잡기 힘들다.
최근 정부는 서울, 인천, 경기 용인 등지의 14개 지역 350만평의 택지개발 사업을 발표했다. 그중에는 50만∼100만평의 제법 큰 규모도 있어서 언론은 「미니 신도시」란 명칭을 붙여 주었다.
그동안 우리는 신도시 기피증에 시달려왔다. 정부나 정치인, 언론 모두 신도시는 안된다는 식이었다. 일산과 분당 건설중 자재파동, 부실공사, 땅값 폭등으로 곤욕을 치렀고 지금까지 고밀환경, 자족성 부족 등의 비판을 받다보니 그런 병이 생긴 것이다. 「미니 신도시」에서는 이런 문제점들을 뛰어 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집을 짓는데만 치중해왔다. 주택공급의 양이 늘 관심사였고 집값의 안정이 최우선 과제였다. 집이 모여서 도시가 된다. 도시는 여러가지의 생활기능을 가진 삶의 그릇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신도시는 거대한 아파트단지일 뿐 자족기능이 부족하다. 아무리 작은 단지라도 「도시」를 만든다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동안 주택단지는 고밀도 일변도였다. 이번에 발표된 서울 수색, 용인 동백 등 신규지구도 용적률이 180∼220% 수준이다. 전원주거도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고밀도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70년대 이후 수도권의 택지개발은 점점 고밀화해 왔다. 70년대의 반포 잠실 등지는 100%내외인데 80년대의 올림픽타운 상계동 등지는 150∼200%, 최근에 개발된 용인 수지, 하남 신장지구 등은 200%가 훨씬 넘는다. 분당과 일산의 경우 호당 택지면적이 각각 57평, 69평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여유있는 편이다. 그러나 일본 도쿄(동경) 주변의 신도시인 다마 지바(천엽) 등은 200∼400평이나 된다.
우리는 좁은 국토를 더욱 좁게 쓰고 있다. 밀도는 도시형태와도 관련이 깊다. 아파트 일변도보다는 단독주택 빌라 연립주택 등이 다양하게 조화된 공간이 되어야 한다. 녹지나 공공용지도 확보되어야 한다. 신개발지 주변의 난개발을 막는 장치도 필요하다. 이번에 지정된 택지지구 주변은 준농림지일 것이다. 개발이 이루어지면 당연히 공짜 덤터기개발이 횡행할 것이다.
200만평의 토지를 구입하여 100만평의 녹색띠를 두르고 도시를 개발하는 영국, 같은 건물은 두개이상 짓지 않도록 다양한 디자인을 도입한 프랑스 신도시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미국에서 내가 살았던 에반스턴, 영국에서 살았던 워킹은 모두 아담하고 자전거 타기 편하고 자연과 잘 조화된 동화같은 도시들이다. 우리의 딱딱한 산문같은 콘크리트 도시와는 다르다.
이제는 진정 살고 싶은 도시, 도시다운 도시를 만들자. 똑같은 모양과 높이로, 심지어 똑같은 베란다를 가진 아파트가 일렬 종대 혹은 횡대로 늘어선 타운에서 우리의 미래 공간을 찾으려 한다면 허상이다. 도시의 시를 쓰고 싶다. 우리의 국토 위에 고담스런 시를 쓰듯이 도시를 만들고 싶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