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독신 ‘권리선언’/독신이 늘고 있다(시대와 문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독신 ‘권리선언’/독신이 늘고 있다(시대와 문화)

입력
1997.03.12 00:00
0 0

◎95년 현재 160여만 가구/원룸촌·세탁편의방 등 ‘솔로산업’이 번창하고 더이상 ‘문제적’ 소수도 아니다/혼자사는 자유를 위해 다소의 수고는 참지만 진짜불편은 주위의 시선/그러나 독신은 저마다의 내밀하고 실존적 선택일뿐/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광고회사 고참 기획자 김명섭(38)씨. 아침 6시30분. 서울 홍익대 앞에 있는 그의 원룸 아파트에는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아름다운 목소리의 모닝콜 서비스다. 샤워를 마치면 어느새 7시. 서둘러 토스터에 빵을 굽는다. 간밤에 술이라도 마신 날은 지하철역 부근에 문을 연 요기방이나 24시간 편의방에서 간단히 아침을 때우기 일쑤다. 7시30분. 출근시간에 맞추려면 지금쯤 집을 나서야 하는데, 다림질한 와이셔츠가 없다. 깜빡 잊고 세탁소에서 찾아오질 않은 것이다. 할 수 없다. 구겨진 와이셔츠라도 입고 출근하는 수밖에.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뭐 좋다고 혼자 사나』라는 동료들의 놀림이 뒷통수에 꽂힌다.

김씨의 출근 풍경은 독신 남녀들이면 누구나 치뤄야 하는 작은 수고와 불편이다. 그러나 그가 진정 불편해하는 것은―이제는 면역이 됐지만―단지 「독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감수해야 하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들이다.

독신이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95년 현재 독신가구는 164만2,000가구. 5년전보다 60.8%, 75년에 비해서는 무려 5배이상 늘어난 수치이다.

독신은 이제 더 이상 예외적이거나 「문제적」 소수가 아니다. 학교나 직장 때문에 혼자사는 「잠재적 독신」가구를 제외하더라도, 독신은 그 자체가 자연스러운 사회적 추세이자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일대, 강남구 신사동, 압구정동 일대에는 독신자들이 몰려 사는 「원룸촌」이 형성돼 가고 있다. PC통신 하이텔에는 30세이상 미혼자들의 모임인 「홀로서기」방이 개설돼 정기모임을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혼자 살려고 하는가?

시린 허리춤, 쓸쓸한 식탁에도 불구하고 「홀로 서기」를 선택하고 주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독신들은 혼자 사는 것의 자유로움을 말한다. 가족에게 매이지 않는 만큼 시간적·경제적 여유를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신 여성들의 경우에는 일을 통한 사회적 성취도 중요한 요인이다.

김윤미(35·잡지사 기자)씨. 『남성은 직장을 잡으면 결혼하지만, 여성은 결혼하면 사표를 내야하는게 여전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여성은 독신을 강요당하는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독신남보다 독신녀가 늘어나는 추세다.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면서 고급여성인력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독신여성들은 육아와 부엌 대신 사회적 성취를 원한다. 그들은 어느정도 경제적 여유가 생겨나면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한다.

개개인의 라이프 사이클마저 기성화하는 획일적인 사회문화적 분위기에 대한 반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독신은 모든 사람을 하나의 모델에 일사불란하게 끼워 맞추려는 「유니폼 문화」에 대한 반발입니다. 누구든 결혼해야 하고, 그것도 정해진 때에 해야한다는 「적령기 신화」는 그 한 예에 불과합니다. 사회 전반이 다원화함에 따라 저마다 자기만의 삶의 모델을 가지려는 욕구 또한 필연적으로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그 자신 독신론자인 문화평론가 손동수(32)씨의 말이다.

하지만 혼자 사는 자유에 비례해 치루어야 할 대가도 그만큼 크다. 『겉옷은 말할 것도 없고, 속옷, 양말까지 맡기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아예 트렁크로 한 짐씩 싣고 오는 단골도 꽤 있지요』 강남구 포이동에 있는 대형 오피스텔 부근에서 코인세탁 전문점 「월풀 빨래방」을 운영하는 이기원씨의 말. 기민한 사업가들이 이들 독신층을 놓칠 리 없다. 이른바 「솔로(solo)산업」의 번창이다. 원룸아파트, 1인용 미니 가전제품, 도시락 배달 전문점, 요기방, 세탁편의점, 민원 대행업, 모닝콜 서비스 등 독신층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사업 품목들이 늘고 있다. 독신생활 지침서도 여러종 서점에 나와 있다. 낮시간에 장을 대신 봐주는 쇼핑대행 서비스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이 땅에서 독신으로 산다는 것」은 여전히 남다른 결심과 각오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부모, 친지들의 「협박」에 가까운 결혼 권유, 독신이라고 하면 으레 「바람둥이」 혹은 무능력자를 연상하는 사회통념, 그리고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근심어린 눈초리 등 독신들이 넘어야 할 편견과 오해의 벽은 여전히 높고 험하다. 『회식자리에서 「혼자 불을 켜고 들어가는 여자와는 상대하지 말라」는 회사 동료의 농담에 분위기를 깰 수 없어 따라 웃긴 했지만 두고 두고 씁쓸했다』 대형 출판사 편집팀장으로 일하는 한 40세 독신여성의 경험담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볼 때 2,000년 즈음에는 독신가구가 250만에 육박하리라는 전망이다. 『전통적인 가족구조의 해체 및 이에 따른 독신가구의 부상은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자연스런 일부』라고 조혜정(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말한다.

『문제는 독신이 아니라 가부장적 가족 중심의 생활방식에 여전히 고착해 있는 우리 사회 전반의 의식지체 현상에 있다. 독신에 대한 지나친 미화와 비뚤어진 편견 모두 이 지체된 의식에서 비롯된 그릇된 현상이다. 독신은 저마다의 가장 내밀하고 실존적인 선택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황동일 기자>

◎원룸문화/간섭에서 해방 나만의 공간/생활방식 변화따른 과도기적 주거형태/대학가 주변 밀집 최근 ‘여성전용’ 등장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독신 남녀가 엎치락 뒤치락 애정싸움을 벌이다 결혼에 골인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그여자 그남자」. 주인공 남녀의 자유로운 독신생활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던 「원룸」이라는 공간.

원룸주택은 93년 첫 선을 보인 후 커다란 붐을 일으키며 새로운 주거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원룸주택 입주자들 대부분은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 독신의 전문직 종사자들.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움. 사생활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인 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것. 독신자들이 원룸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침대와 책상, 옷장 등의 각종 수납공간과 싱크대, 가스레인지 등 주방기기가 갖추어져 기능적으로 편리하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 원룸주택 전문업체 백년주택이 강남구 신사동에 건설중인 「여성전용 원룸」의 경우 가구 색깔과 형태, 마감재 선택까지 여성들의 취향을 고려한 것은 물론, 보안장치에 신경을 썼다. 『많은 독신여성들이 「혼자사는 여자」라는 주변의 껄끄러운 시선뿐 아니라 안전에 대한 염려 때문에 원룸을 선호한다』 관계자의 말이다.

원룸주택은 신촌 등 대학가 주변과 지하철과 연계돼 교통이 편리한 서초동, 신사동 등 서초구와 강남구에 밀집해 있다. 대학가 주변에 원룸주택이 많이 몰려있는 것은 편의점을 비롯한 각종 생활 편의시설과 카페 등의 유흥·휴게시설이 많아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려는 독신자들의 욕구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원룸주택을 선호하는 것은 독신자만이 아니다. 『서울 근교에 집을 둔 직장인들 중엔 직장 근처에 원룸을 얻어 놓고 자기만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예가 늘고 있다』 대우건설 주택사업기획본부 유민목 차장의 말이다. 이른바 「세컨드 하우스」바람이다. 결혼은 했지만 「독신의 자유로움」을 조금이라도 누려보고 싶다는 것이다. 최근 대우건설이 영등포구 당산동에 임대분양 중인 원룸아파트에는 독신자는 물론 신혼부부와 중장년층의 부부까지 신청했다. 자녀들을 출가시킨 후 노후를 새롭게 설계해보려는 중장년층에게까지 원룸주택이 새로운 주거공간으로 주목받는 것이다.

그러나 원룸주택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독립적인 공간인 원룸이 폐쇄적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원룸주택은 성냥갑처럼 각 세대별로 나뉘어져 옆에 사는 사람이 누구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처음부터 배제돼 있다. 올해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한 김인철(아르키움 건축 대표)씨는 건물 한 가운데 길을 만들어 오가며 한번이라도 얼굴을 마주칠 수 있도록 서교동 원룸 주택을 설계했다.

원룸주택은 변화하고 있는 최근의 생활방식을 반영하는 과도기적인 주거형태일 뿐이다. 건축 전문가들은 『다양해지는 생활양식에 맞는 다양한 주거형태가 필요하다. 새로운 주거형태는 개성과 자유로움을 보장하면서도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한다.<김미경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