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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철책을 걷어낼 날은…/이규학(이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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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철책을 걷어낼 날은…/이규학(이렇게 생각한다)

입력
1997.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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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문턱을 넘어서니 청계산 618m기슭에 자리한 서울대공원은 시내보다 평균 기온이 2, 3도 낮지만 봄기운이 완연하다.계절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새들은 일찌감치 봄맞이 단장을 시작했다. 발랄한 여학생들처럼 각선미를 뽐내는 두루미가 『끼욱 끼욱』 큰소리로 세력을 과시하며 영역 확보에 한창이다. 홍부리 황새부부는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들고 얼음이 녹은 물 위에는 큰 고니가 짝을 짓고 깜찍한 원앙과 어울린 모습이 평화스럽기 그지없다.

73만평의 동물원 경내에 따스한 봄볕이 화사하게 내리는 정오쯤이면 그물무늬 기린들이 의장대처럼 넓은 방사장을 활보한다. 남녀노소가 화목하게 손잡고 밝은 표정으로 찾아와 재롱을 부리는 365종의 동물들을 보면서 환호와 탄성을 연발하는 광경은 휴일을 잊은 종사자들에게 뿌듯한 보람을 느끼게 한다.

자연의 섭리와 질서를 배우고 순응한다면 우리의 생활도 정신적으로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동물을 사랑하고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인간의 몫이라면 소중한 생명체를 아끼는 마음도 키워야겠다. 각종 희귀동물들은 우리의 허전한 마음에 활력을 채워주고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에게는 산 교육장이 된다. 막대한 예산과 금싸라기 같은 70만평의 넓은 땅에 왜 동물원을 만들었겠는가? 이 봄에 한번쯤은 떠올려 볼 일이다.

과거에는 타조가 관람객의 돈지갑을 먹고 장폐색으로 죽은 일도 있었고 수년전에는 방사장에서 뛰놀던 원숭이가 관람객이 던진 돌에 맞아 목숨을 잃은 적도 있었다.

바다악어는 천성이 음흉하여 야생시는 물 속에 몸을 감추고 눈만 내놓고 있다가 영양같은 초식동물이 물가에 올 때 기습하는 생태 때문에 동물원에서도 사육사가 깜짝 놀랄만큼 입을 벌리고 미동도 않을 때가 많다. 관람객들이 돌이나 동전을 던져도 모른 척 한다.

백수의 왕인 호랑이는 배가 부를 때면 네 활개를 펴고 늘어지게 누워서 벼락이 친다해도 꿈쩍 않는다. 관람객들이 돌을 던지면 날카로운 눈초리로 사람을 원망한다. 순진한 곰은 앉은 자세로 관람객들이 던지는 먹이를 야구선수처럼 받다가 돌을 던지면 눈매가 달라진다.

코끼리는 가까이 접근해서 약을 올리는 관람객에게는 진흙을 갑자기 뿌려 보복한다. 만또원숭이는 철망 부근까지 어린이를 접근시키는 보호자에게 모래를 뿌려 경각심을 준다. 관람객들의 의식 수준은 많이 향상되어 작년에는 동물이 죽은 사례는 없었다.

새 봄을 단장하는 개나리 진달래가 눈이 부시게 피는 화창한 봄 날에는 동물원의 운동장 같은 넓은 중앙도로가 인파로 붐비는 나들이의 계절이 된다.

열대 지방이나 북극에서 고향을 떠나온 많은 동물들이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매년 성숙되어 우리 공원의 넓은 시야를 가리는 인위적인 동물사의 철책들을 모두 헐어버리고 동물과 인간이 그야말로 사랑으로 어울리는 시대가 오기를 새 봄을 맞으며 간절히 기대해본다.<서울대공원 동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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