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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대 데뷔 30주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한국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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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대 데뷔 30주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한국인터뷰)

입력
1997.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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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면서 부드러워졌지요”/처음엔 음악적 정열만 앞서다 이젠 몸의 일부로/현란한 기교 넘어 청중과 감동 나누고 싶어/때로는 너무 힘들지만 다시 태어나도 바이올린을…세계 정상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49)씨가 2월20일∼3월8일 서울과 지방 5개 도시에서 국제무대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페스티벌을 가졌다. 총 9회의 음악회로 진행된 이번 공연을 통해 그는 세월의 향기로 더욱 무르익고 넉넉해진 음악세계를 드러냄으로써 『역시 정경화』라는 찬탄을 자아냈다. 예전의 불같던 정열은 안으로 삭아서 내밀한 아름다움으로 변해 있었다. 정경화페스티벌은 영국 바비컨센터가 기획했으며 10월에는 런던, 내년에는 일본과 유럽으로 이어진다.<편집자 주>

―많이 너그러워지신 것 같습니다. 연주중에 박수가 나와도 오히려 청중이 무안하지 않게 미소를 짓고 앙코르 인심도 후하던데….

『옛날엔 신경질적으로 예민했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 많이 변했어요. 인간으로서 내가 모르던 세계에 들어갔기 때문일 겁니다. 심술이 좀 줄었다고 할까요. 꼬맹이들 심술을 받아주려니까 그럴 밖에요』(그는 영국인 남편과 이혼한 뒤 두 아들 유진(12), 재곤(9)과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벌써 50을 바라보는 나이입니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나이들면서 부드러워졌지요. 악기만 해도 처음엔 고음에 매력을 느껴서 67년 레벤트리트콩쿠르 우승이후 6년이상 소리가 밝고 강한 스트라디바리를 썼어요. 그런데 저음을 원하게 되니까 갑자기 미칠 것 같아서 과르네리로 바꿨는데 이제 다른 것은 못쓰겠어요. 원하는 것이 달라진 거지요. 돌이켜보면 예술인의 길이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이겨냈고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예술인으로서 지금의 내가 좋습니다』

―연주생활 30년동안 음악관이나 연주스타일에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음악이 몸이 되고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때가 따로 있어요. 처음엔 피에서만 끓고 차츰 뼈가 됐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몸에 배는 거지요. 어렸을 때는 음악의 아름다움에 꼭 폭발할 것만 같아서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연주할 때 몸을 하도 흔드니까 「쟨 춤도 잘 춘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기도 했지요. 지금은 음악이 내 자신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정상에 서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만.

『누구든 성공하려면 피눈물이 들어가야 하는데 뭐는 쉽겠어요. 힘든 과정이 많았지요. 넘어질뻔 할 때마다 일으켜준 분들께 감사합니다. 저는 스승을 참 잘 만났습니다. 또 고집 센 것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직감적으로 오는 게 있으면 하도 고집을 세워 아무도 꺾을 수 없었거든요. 그런 집념이 있어서 헤쳐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대에 서는 마음가짐이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는 청중을 휘어잡겠다, 성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실패할까봐 또 기대에 어긋날까봐 겁이 많이 났어요. 두렵지만 여태까지 해온 것은 연주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하루라도 안하면 이상할 정도로 연주가 몸에 맞아요. 그리고 청중과 교감을 하고 싶습니다. 무대에서만이 아니라 연주 끝나고도 말입니다. 그래서 팬들의 사인 요청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어떤 연주자로 남고 싶습니까.

『한때 바이올린의 기술에 스스로 감탄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기술보다 그것을 통해 나오는 음악으로 감동을 주기를 원합니다. 현란한 기교를 요구하는 파가니니의 작품을 평생 연주하지 않았어요. 원치 않은데다 그런 기술을 타고나지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음악 자체로 파고 들면서 색채에 매력을 느끼죠. 기술은 표현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클래식음악은 날로 쇠퇴하고 있으며 심지어 컴퓨터의 도움으로 언젠가는 전문연주자들이 사라질거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동의합니까.

『아니요. 컴퓨터가 발달할수록 인간의 힘으로 직접 하는 음악의 가치는 더욱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겁니다. 손으로 만든 수예품만 봐도 예전엔 보잘것없이 쌌지만 지금은 반대잖아요. 음악은 자연에서 나옵니다. 온 지구가 기계로만 덮이기 전까지 클래식음악은 안없어질 거예요. 꽃 한 송이조차 볼 수 없는 세상이 오면 그때 사라지겠죠』

―13세 때 미국유학을 떠나 지금껏 세계인 정경화로 살고 있는데, 자신이 한국인임을 자주 깨닫게 됩니까.

『제 뿌리는 한국입니다. 한국을 떠날 때 한국인으로서 성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굳은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뒤 방황은 있었지만 한시도 한국인임을 잊은 적이 없어요. 애들한테도 지독스레 한국말을 가르치고 한국의 얼을 심어주려 애씁니다. 글쎄 피가 그렇게 무서워요』

―두 아들도 혹시 음악을 합니까. 어머니로서 자녀교육 철학도 들려주시죠.

『첫째가 첼로, 둘째가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어요. 그런데 직접 가르치려고 하니까 「엄마가 뭘 아느냐. 선생님이 이렇게 하랬어」라며 말을 안 듣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화가 나잖아요. 세상에는 엄마한테 5분이라도 배우려는 사람이 많다고 말해줬죠. 요새는 시간 있으면 봐달라며 연습실로 들어오기도 하고 그럽니다. 나 참…. 애들한테는 무조건 사랑을 듬뿍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생각하죠. 제대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하고 있어요』

―한동안 한국 연주가 뜸했는데 무슨 까닭입니까.

『수년 간 건강이 나빠서 연주를 줄여야 했습니다. 애들이 어려서 옆에서 돌봐야 하기도 했구요. 이젠 몸도 괜찮고 애들도 컸으니 다시 자주 가질 계획입니다. 연간 연주횟수는 공식적으로는 40회, 비공식 연주까지 합치면 60∼70회쯤 됩니다. 여러 날 집을 비우는 연주여행은 애들을 위해서 한 달에 1주일 정도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20일 가까이 집을 떠나 있으니까 난리예요. 매일 국제전화를 해서는 「엄마 엄마」하고 징징 울어요』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나요.

『연주자도 사람인데 왜 안그렇겠어요. 음악을 미치도록 좋아하고 음악은 곧 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대 나가기 1초 전까지도 왜 이 힘든 일을 하나 생각하곤 합니다. 이번에도 반주자하고 둘이서 여러 번 한숨을 쉬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다 잡념이죠. 다시 태어나도 바이올린을 할 겁니다. 한 세상 그걸로 살았으니 달리 살고싶을 것 같지만 아닙니다. 바이올린이 그만큼 좋아요. 가끔 내가 돌지 않았나 생각될 정도로』

―연주와 레코딩 계획을 말씀해주시죠.

『9월에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빈 필과 브람스 협주곡을 녹음합니다. 빈 필은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오케스트라입니다. 제일 좋아하는 오케스트라이기도 하구요. 브람스의 음악은 깊은 가을의 소리같습니다. 브람스를 무척 좋아해요. 녹음 제의도 여러 번 받았지만 두려움 때문에 나이들어 해야지 하고 계속 미뤄왔던 겁니다. 바흐의 곡만으로 몇 개국을 순회하는 바흐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흐는 큰 도전입니다. 세상이 다하도록 바흐는 영원할 겁니다. 음향이 좋은 교회에서 연주했으면 합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도 몇 군데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내년 어머니 팔순을 맞아 봄에 명화언니(첼로), 동생 명훈(피아노)이와 정트리오 공연을 하려 합니다. 어머니를 존경합니다』<오미환 기자>

□약력

▲48년 서울서 정운채·이원숙 부부의 4남3녀 중 3녀로 출생 ▲53년 6세에 바이올린 시작 ▲61년 13세에 미국 유학. 줄리어드음악원에서 갈라미언과 시게티 사사 ▲67년 영국 레벤트리트콩쿠르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 1위 ▲70년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심포니 협연으로 런던 데뷔 ▲82년 영국 「선데이타임스」 선정 「지난 20년간 가장 뛰어난 기악인」에 뽑힘 ▲92년 유엔 마약퇴치 친선대사, 미국 엑셀런스 2000상 수상 ▲94년 그라모폰상(최우수협주곡)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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