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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영화인(전문직 여성의 위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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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영화인(전문직 여성의 위상:4)

입력
1997.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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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솔력 떨어진다” 뿌리깊은 편견/여성감독 10명 이내 여성PD도 전체 10%선/“스태프와 출연진 어떻게 거느리나” 선입견/어렵사리 발들여 놓아도 굵직한 작품·프로 못맡고 승진에도 성차별이 존재방송·영화계는 시대의 감수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앞서가는 분야이지만 여성인력의 진출은 뒤처져있다.

현재 방송계에서 활동하는 여성PD는 KBS MBC SBS 3대 공중파방송과 부산방송 대전방송 대구방송 광주방송 등 지역방송의 편성제작국을 다 합쳐서 160여명에 불과하다.

KBS에는 725명의 PD중 여성이 98명(13.52%)뿐이며 MBC에는 275명중 22명(8%), SBS에는 175명 중 13명(7.42%)이다. 4개 지역방송의 여성PD 비율은 10.1%선이다.

극영화계에서 일하는 여성의 수는 더 적다. 한국영화감독협회에 등록된 감독 192명 중 여성감독은 「수렁에서 건진 내딸」을 연출한 이미례감독과 「겨울애마, 그리고 봄…」의 허경화 감독 단 두명. 감독협회 소속은 아니지만 「세 친구」의 임순례 감독과 문명희 김강숙 이소정 등 3∼4명의 조감독들을 포함해도 활동중인 여성감독이 채 열손가락을 넘지 못한다.

한국영화사 77년동안 극장상영 영화를 만든 여성감독은 겨우 7명뿐이었다. 55년 「미망인」으로 여성감독 1호를 기록한 박남옥씨, 60년대 활동한 황혜미 홍은원 최은희 감독,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의 변영주 감독.

여성의 방송·영화계 진출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여성은 통솔력이 떨어진다」는 뿌리깊은 편견을 꼽는 이도 있다. 수 십명의 스태프와 출연자들을 지휘해야 하는 직업을 여성이 수행하기에는 무리라는 편견이 아직 곳곳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83년 MBC가 PD직을 뽑으면서 여성에게는 아예 응시기회를 주지 않았다가 각 대학 신문방송학과 여학생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다음 해 이 방침을 철회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같은 실력이면 남자를 뽑는다」는 관행은 방송계에 아직도 숨어있다.

영화감독의 산실로 일컬어지는 영화진흥공사 부설 영화아카데미는 84년 개설된 이래 지난해까지 12기 156명(여성 1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곳을 거친 남학생의 90%이상이 감독으로 데뷔했지만 여성은 단 한명도 감독으로 이른바 「입봉」을 하지 못했다. 제작자들은 평균 10억∼15억원의 제작비에 수십명의 스태프들이 동원되는 상업영화를 선뜻 여자손에 맡기는 것은 모험이라 생각한다는 얘기다.

천신만고 끝에 방송·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해도 앞길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우선 좋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KBS 1TV 「아침마당」을 맡고 있는 박혜령 PD는 『특별기획 프로그램 등 주목할 만한 굵직한 프로는 남자들에게 연출권이 돌아간다』고 말한다. 성차별도 엄존한다. MBC FM 「FM 음악도시」의 안혜란 PD는 『승진인사 때 「여자는 자기 한 몸이지만 남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이유로 남자를 배려한다』고 말한다.

영화아카데미 6기출신 김은주씨는 자작 시나리오 「주먹 센 여자」로 감독데뷔를 준비하다가 당분간 작업을 접기로 했다. 감독의 작품세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답게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들라』는 제작자의 주문에 질렸기 때문. 이미례 감독은 제작자로부터 감독의 고유권한인 촬영콘티를 사전검열당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여성이 봉착하는 현실적인 장벽들이 많다. 출산 이후에는 육아부담까지 합쳐지고 직장에서는 은근히 한직으로 갈 것을 권유당하기도 한다. 물론 스스로 원해서 가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이런 편견과 현실적 어려움에서 비롯된 여성의 수적·질적 열세가 대중문화속의 올바른 여성상 정립에 장애가 된다는 점에 있다. 영화평론가 유지나씨는 『여성의 시각이 반영될 기회가 적은 만큼 여성에 대한 편견이 대중문화상품 속에 여과되지 않은 채 녹아들 위험이 크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을까.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회장인 MBC 최상일 PD의 『남자보다 더 열심히 해야 겨우 동등한 대우를 받는 현실을 직시하고 여성계 차원에서 「여성인권의 사각지대」라고 할 방송·영화계를 개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그가 남성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심장하다.<이성희 기자>

◎KBS 1TV ‘체험 삶의 현장’ 이은미 PD/작년 ‘최고 TV프로그램상’ 수상/“여성이 살아남을 길은 전문화 뿐”

『남성 중심의 방송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전문화해야 합니다. 자연다큐멘터리, 환경문제, 여성문제 등 특정한 이슈를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져서 나만의 영역을 구축해야 하지요』

KBS 1TV 「체험 삶의 현장」 팀장 이은미(39) PD는 이 프로그램을 처음 기획했고 정상에까지 올려놓은 이 프로그램의 「주인」이다. 93년 9월 첫방송이 나간이후 그는 손을 뗀 적이 없다. 「체험 삶의 현장」이 공익성과 재미를 아울러 지녔다는 평가를 받아오고 지난해 일간지 방송기자단 선정 「올해 최고의 TV프로그램상」을 수상하고 한국 방송프로그램으로는 처음으로 국제 연예·오락프로그램 경연대회인 「제37회 골든로즈상」에서 결선에 오르는 등의 기쁨을 안겨준 것은 필연적인 결과일지 모른다.

일선PD로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그도 여성PD들이 흔히 겪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여성PD라고 야외촬영이 거의 없는 단순한 프로그램을 맡겼고 인사고과에 참작하는 대형프로그램에는 손대볼 기회조차 주지 않아 방송일에 근본적인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이PD에게 결정적인 전환기가 온 것은 84년. 「생방송 오늘」을 연출할 때 당시 교양제작국장이었던 안국정(현 편성본부장)씨의 따끔한 충고를 들었다. 가정에라도 충실하기 위해 한직으로 자원할 생각을 하던 이PD에게 안본부장은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역사의식을 가지라』고 말했다. 「여성PD는 결혼하면 일을 등한시한다」는 선례를 남긴다면 앞으로 여성들이 어떻게 PD직에 진출할 수 있겠느냐는 질책이었다. 이PD는 지금도 이 충고를 잊지 않고 있다.

여성의 방송계 진출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여전히 핵심부에서 멀리 있다고 설명하는 이PD는 여성이 실세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력을 장기적 안목으로 기획하는 태도」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고집스럽게 밀어부치는 추진력이 「여성=소극적」이라는 등식을 없앤다는 주장이다.<이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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