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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 범람/국산품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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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 범람/국산품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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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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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은 거대한 ‘수입품 총판장’/매장 70%가 외제로 채워지고 국산화장품·잡화 등은 실종/시장·할인매장은 그곳대로 수입 반찬·과일 등이 득세/“국산 사려해도 파는 곳이 없다”수입품에 밀려 국산품이 사라지고 있다. 백화점에서는 고가 수입품이, 할인매장이나 재래시장에서는 저가 수입품이 국산품을 몰아내고 있다.

국내 유명 백화점은 거대한 수입품 총판장을 연상시킨다. 입구에 들어서면 좌우로 넥타이 스카프 등을 파는 잡화매장과 브랜드별 화장품 코너가 늘어서 있지만 「지방시」 「니나리치」 「피에르 카르뎅」 「샤넬」 등 외국 유명상표 간판만 다닥다닥 붙어있을 뿐 국내 기업의 상호나 상표는 보이지 않는다.

취재팀이 현장을 돌며 확인한 결과 서울 소공동 L백화점 화장품 매장의 23개 코너 가운데 국산품 매장은 3개뿐이었다. 그것도 깊숙이 들어앉아있어 쉽게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래선지 외제품 코너에는 손님들이 북적대는데도 국산품 매장은 한산했다.

잡화매장은 더욱 심해서 국산 브랜드 제품은 아예 한 가지도 없었다. 『국산 브랜드 제품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점원은 『시장에 가보세요』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다른 품목도 상황은 비슷했다. 지갑은 10종의 상표 가운데 한가지만이 국산이고 가방은 6종에 하나, 구두는 16종에 4개뿐이었다. 국산 구두코너 직원 K(22)양은 『국산은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소비자가 잘 찾지 않는다』며 『같은 회사 제품이라도 수입브랜드냐 아니냐에 따라 매출이 3배이상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그나마 L백화점은 국산품 코너라도 두고있지만 강남의 G, H 백화점 등은 국산 구두매장이 아예 없었다. 구두전문업체인 K사의 상품권을 들고 돌아 다녔지만 매장이 없어 대리점을 찾아가야 했다.

각 백화점의 골프용품 매장도 국산품을 취급하지 않는다. 어디서고 『국산을 보여달라』고 하면 직원은 『국산은 질이 떨어져 갖다 놓지 않았다』며 『외제가 더 좋으니 한번 써 보는게 어떠냐』고 오히려 수입품을 추천했다.

가전제품도 수입품 판매율이 급상승하는 추세. 통상산업부가 최근 실시한 소형 가전제품 시장조사에 따르면 수입품은 전기면도기 70%, 전기다리미 75%, 커피포트 86%, 커피메이커 93%, 토스터 83%, 믹서 63%의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 백화점에서 이런 종류의 국산품은 찾아보기 어렵고 각사의 대리점에나 가야 물건을 구할 수 있다.

가전제품 가운데 그나마 TV 냉장고 세탁기 등이 수입품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지만 장래가 그리 밝지 못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특히 대기업이 가전제품 수입에 앞장서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두산상사가 수입하는 「월풀」냉장고가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세탁기를 생산하면서 수입도 병행하는 동양매직은 자사 제품과 나란히 수입품을 진열, 판매하고 있다.

이외에 식품 도자기 의류 등도 수입품은 화려하게 전시돼 있었으나 국산품은 너절하게 널려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수입식품 코너가 가득 들어찬 지하 식품매장은 과자 사탕 초콜릿 등의 수입품이 「특별판매」 형식으로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대부분 백화점에서 직수입한 것들로 국산에 비해 값도 2배이상 비싼 수준이었다.

도자기도 수입품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도자기 메이커인 H사는 지난해 S백화점측이 매장철수를 요구해 수입품 매장에 자리를 내주고 쫓겨나기도 했다.

한때 섬유제품 수출국으로 이름을 날린 우리나라지만 이제는 신사·숙녀·아동복 코너를 불문하고 수입의류가 판을 치고 있다. 국내 유명 의류회사들도 앞다퉈 수입의류나 수입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백화점의 수입품 판매는 비단 고가물품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독일산 옷걸이가 5,000원에 나와 있으며 이탈리아산 실내화와 바닥깔개 등이 저가에 팔리고 있다. 서울 강남의 G백화점 관계자는 『전체 매장의 30%정도가 순수 국산품이고 나머지가 수입품과 수입브랜드 매장』이라며 『소비자가 수입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할인매장도 수입품 천국이다. 중국이나 동남아산 농수산물과 공산품 등이 저가로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매장 곳곳에 수입품이 진열돼 있어 상대적으로 비싼 국산품은 서자 취급을 받기 일쑤다. 할인매장측은 『저가로 밀고 들어오는 외국제품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다』면서 『국산품 애용 운운은 이제 불가능한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주부들과 애환을 함께 해 온 재래시장도 더 이상 수입품 파고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반찬류나 과일 등 수입농산물 문제는 이미 오래 된 이야기다. 시장마다 수입품 코너가 2, 3개씩 자리잡고 있으며 일본산 간장과 된장을 비롯해 중국산 건어물과 농산물 등이 토종을 몰아내고 있다.

그릇 식기 등 주방용품에서 면장갑 수세미 휴지 등 일용품까지 값싼 수입품이 범람하고 있고 음식점에서 쓰는 일회용수건 이쑤시개 나무젓가락 등은 저가의 북한제들이 중국제와 함께 9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분당에 사는 주부 서민희(31)씨. 『국산을 사려고 해도 파는 곳이 없어 할 수 없이 외제를 구입합니다. 상권이 새로 형성된 신도시 주변에서는 유달리 수입품이 많아요. 젖꼭지를 비롯한 유아용품부터 수입품 일색이어서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수입품에 의존하는 셈이지요』

전문가들은 『수입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무분별한 선호가 수입품 범람을 초래했지만 이에 편승하거나 오히려 부추긴 수입업체와 유통업체의 근시안적인 상혼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염영남 기자>

◎위스키 수입 왕국/작년 수입 1억8,500만달러/‘발렌타인 30년’ 등 세계 1위 소비국 육박

한국은 위스키 수입 왕국이다. 특히 발렌타인 30년산과 로열 살루트 등 고급 위스키 소비는 세계 1, 2위를 다툴 정도다.

국내 위스키 시장은 이미 수입 위스키가 점령하다시피 했다. 반면 국산 위스키는 맥을 못추고 시들고 있다. 스카치 위스키의 본고장인 영국에서조차 한국의 위스키 소비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한국이 위스키 황금시장이 된 지 오래이고 세계 위스키 시장의 판도를 한국시장이 좌우할 정도가 됐다.

불황도 아랑곳하지 않고 위스키 수입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위스키 원액과 완제품 수입은 94년만 해도 7,520만달러 어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95년에는 1억 2,000만달러로 60%의 증가율을 보였다. 경기침체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지난해에도 위스키 수입액은 전년보다 54%가 늘어난 1억 8,500만달러에 달했다.

원액을 들여와 국내에서 블렌딩하는 국산위스키의 수요가 갈수록 줄고 있는 것을 볼 때 위스키 수입액 증가의 직접적 원인은 완제품 수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수입위스키 판매비중은 94년 전체 위스키 판매액의 6.6%에 지나지 않았으나 지난해 50%를 넘어 섰다는 게 주류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주류업계는 올해 수입위스키의 시장 점유율이 70%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스카치 위스키의 본고장인 영국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고급품인 발렌타인 30년산. 제조사인 얼라이드 도멕(Allied Domecq)의 연간 생산량은 7,000상자(1상자는 700㎖짜리 6병)에 불과하다. 두산씨그램은 지난해 발렌타인 30년산을 100상자 팔았다고 밝혔다. 해외 여행객들이 기내에서 사가지고 들어오는 발렌타인 30년산은 지난해 대한항공이 월 1,000∼1,200병씩 2,000상자(1만 2,000병)가량을, 아시아나가 774상자(4,644병)를 팔았다. 『양주 구입고객의 90% 이상이 내국인이고 80%가 귀국시 사간다』는 항공사 관계자들의 말을 감안하면 기내 판매량의 70% 가량인 1,900여상자를 내국인이 사 가지고 들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발렌타인 30년산 10병 가운데 3병 가까이가 국내에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두산씨그램이 수입하는 시바스 브라더스사의 패스포트와 섬씽스페셜은 생산량의 80%, 시바스리갈은 30%가 한국에서 소비된다. 지난 한해동안 시바스리갈 30만상자, 조니워커 15만상자, 로비듀 3만상자가 팔리는 등 프리미엄급(숙성년도 12년이상) 수입위스키 소비량은 계속 늘고 있다.

조선맥주에서 수입하는 딤플은 영국 총생산량의 70%가 한국에서 소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 주류회사 가운데 하나인 유나이티드 디스틸러스(UD)사가 내놓은 15년 숙성의 딤플은 처음 실패작으로 취급됐으나 95년 한국이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효자」로 돌변했다. 지난해 8월 핀 존슨사장 등 경영진이 한국을 방문해 직접 딤플의 성공사례를 발표했을 정도이다. 딤플은 95년 판매량이 30여만 상자에 지나지 않았으나 지난해 167% 늘어난 82만상자를 팔아 수입위스키 돌풍의 주역으로 떠 올랐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완제품 수입이 이처럼 급증하고 있는 것은 통관시점 과세로 CIF(운임 보험료 포함가격)에 세금이 부과되고 이후 판매관리비 등을 포함시키는 반면 국산위스키는 제조원가에 판매관리비가 포함된 판매원가가 과세표준이 돼 완제품을 수입하면 마진폭이 국산위스키의 3∼8배나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이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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