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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복고의 전도사,방송과 연극(우리문화 키워드)

입력
1997.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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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형제의 강’ 등 70년대식 드라마 인기타고/교양·코미디·쇼프로 등도 추억의 상품화 붐/‘울고 넘는…’ 매진행진 등 연극도 신파극이 강세/그러나 감동 앞세운 ‘향수 팔아먹기’ 비판도KBS 주말드라마 「첫사랑」은 방영 첫주부터 내리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깨지지 않고 있다. 시청률도 평균 50%가 넘는다. 진부한 멜로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 드라마의 인기에 대해 방송가에서는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SBS 수·목드라마 「형제의 강」도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꾸준하게 10위 안에 들어가는 인기드라마로 군림하고 있다.

두 드라마의 공통분모는 바로 「복고풍」. 60, 70년대를 무대로 개성있는 인물 등이 어우러져 엮어내는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들이다. 특히 두 드라마가 복고로 분류되는 것은 과거를 무대로 한 것보다 이야기 구도와 접근방식 때문이다.

부잣집 외동딸과 가난한 청년의 사랑, 폭력까지 동원되는 빈부의 극단적 대립, 고단한 현실을 이겨내는 유일한 구원인 가족들의 눈물겨운 사랑, 출세의 수단으로 등장하는 법관이라는 직위…. 두 드라마에는 70년대식 드라마의 소재와 이야기 구도가 그대로 살아있다.

「복고풍」은 드라마 뿐만 아니라 코미디나 교양·쇼프로그램에서도 기승을 부린다. MBC 「오늘은 좋은날」, KBS1 「TV는 사랑을 싣고」, KBS2 「서세원의 화요스페셜」, KBS1 「이소라의 프로프즈」 등은 모두 회고와 추억의 감정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얼굴조차 희미한 초등학교 시절 은사와의 만남을 주선하고(「TV는 사랑을 싣고」),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졸업장 풍경을 다시 보여주기도 (「서세원의 화요스페셜」)한다.

추억의 상품가치가 만만치 않음을 깨달은 방송은 30대가 보고 자랐던 「흘러간 명작만화」(MBC 「미래소년 코난」, 「은하철도 999」)나 구봉서 남보원 백남봉 등 70년대 코미디 스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MBC 「웃는 세상 좋은 세상」)을 90년대 후반에 버젓이 다시 등장시킨다.

방송의 복고 바람은 「지난 시절에 대한 단순 미화 또는 현실성 없는 추억더듬기」라는 점에서 「선정」에 이어 「감동」이라는 새로운 상품에 불과하다는 비판적인 지적이 많다.

연극에서도 복고는 가장 잘 팔리는 품목. 일제시대 신파극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했다는 가극 「울고 넘는 박달재」는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최근 공연중인 뮤지컬 「겨울나그네」도 70년대 말에 나왔던 최인호의 동명 원작소설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극단 불수레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모티프로 삼은 뮤지컬을 조만간 공연할 계획이다.

연극계의 복고 바람은 관객층의 다양화, 중장년층 관객의 연극판 유입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흥행을 목적으로 한 지나친 상업주의와 퇴행성 등으로 날카로운 비판을 받기도 한다. 결국 연극계의 침체를 벗어나는 첩경은 과거에서 보물찾기가 아닌 창작극 활성화에 있다는 지적이다.<박천호·황동일 기자>

◎대중가요/리메이크… 트로트 멜로디… 재등장한 얼굴/창조의 고통없는 모방 ‘상업적 복고’가 한계

대중음악의 모든 것은 비틀스에서 끝났다는 말이 있다. 더이상 완전히 새로운 멜로디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복고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대중음악 분야에서 빈번할 수 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복고가 주는 친근함은 대단히 뛰어난 음악이 아니더라도 쉽게 청중의 귀를 사로잡는다는 데 있다. 가요계에서의 복고 바람은 90년대 들어 특히 두드러진 현상이다.

우선 리메이크다. 이전에도 간혹 리메이크 곡이 있기는 했으나 음반의 양념 구실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015B나 노영심의 경우처럼 리메이크 곡이 음반을 대표하기도 하고, 빅 히트를 기록한 조관우 2집처럼 음반 전체를 리메이크 곡으로 꾸미기도 한다.

곡 뿐만이 아니라 가수도 복고경향이 있다. 인순이는 복고적 프로그램인 「열린 음악회」를 통해 왕년의 인기를 구가하고, 나미 등 지난 가수들이 복고의 흐름을 타고 어색하지 않게 무대에 등장했다.

리메이크가 가장 초보적인 수준의 복고라면, 요즘의 복고는 보다 복합적이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멜로디나 가사가 완연한 복고풍이라면, 사람들로 하여금 복고임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향수를 자극하는 것들도 많다. 정승준의 「사랑을 고백할 때」처럼 귀에 익은 팝송의 멜로디를 넣는다든지, 걸의 로큰롤, 도마뱀의 뉴 웨이브 사운드처럼 특정 시기에 유행했던 음악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삐삐 롱 스타킹의 펑크 역시 70년대에 뿌리를 둔 일종의 복고다. 윤종신과 이문세의 최근 음반은 아련한 옛 기억을 자아내는 분위기로 복고를 시도했다.

속도나 리듬에서 한계점에 다다른 댄스 음악이 찾아낸 것도 귀에 익은 트로트 멜로디였다. 영턱스 클럽의 「정」이래 터보의 「트위스트 킹」, 요즘 최고의 인기곡인 쿨의 「운명」, 벅의 「맨발의 청춘」에 이르기까지 댄스곡들에 복고조가 가미되고 있다.

신당동 떡볶이집 DJ 「허리케인 박」. DJ DOC의 노래 「신당동 떡볶이」의 주인공 「허리케인 박」은 복고풍 유행이 만들어 낸 대표적인 가상의 스타이다. 복고경향은 잘 팔린다는 일반적인 이점 외에, 댄스 음악 일색인 현실 속에서 「좋았던 옛날 음악」에 대한 향수가 주된 원인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복고가 창조의 고통없이 단지 남의 노래를, 과거를 다시 부르거나 모방하는 수준이라는 것. 더욱이 최근에는 인기만을 노린 상업적 복고가 주를 이루는 추세여서 씁쓸하다.<김지영·김미경 기자>

◎재즈/‘퓨전’은 가고 ‘블루스&스윙’ 부활

90년대 한국의 복고는 재즈 선풍으로 체감된다. 거친 톤 흑백 화면의 광고에는 십중팔구 옛 재즈의 멜로디가 흘렀다. 30, 40년대 재즈 뮤지션들의 옷차림을 흉내 낸 「재즈 패션」이 패션계를 훑고 지나갔다.

최근에는 재즈의 고전적 명반들도 체계적으로 재발매됨으로써, 이 회귀 바람을 공인하고 있다.

옛 거장들의 재즈를 집성, 버브(Verve) 레이블에서 내놓은 방대한 「재즈 매스터즈」 전집. 80년대 이후 세계 재즈의 본류에서 가속화하고 있는 시대적 흐름, 즉 「과거 읽기」라는 거대한 움직임을 반영하는 움직임이다.

재즈는 왜 과거에 주목하는가?

70, 80년대를 풍미했던 재즈, 즉 재즈―록 또는 퓨전의 부작용이 그 최대의 원인. 퓨전의 궁극은 반재즈적 재즈였다. 인기를 위해서라면, 블루스와 스윙이라는 정통 재즈 최대의 음악 논리를 포기할 수도 있는 재즈였다. 말하자면 「아리랑 없는 국악」이었다. 80년대 후반, 재즈계의 최전선을 사로잡은 화두는 바로 「전통」의 문제였다. 고전주의(classicism)와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허물어져 가는 재즈의 뼈대를 어디서부터 추스릴 것인가, 둘을 가른 분수령이었다.

90년대는 마침내, 고전주의의 팔을 높이 치켜 들었다. 그 태두인 트럼페터 윈튼 마설리스는 명실상부한 우리시대 재즈 흐름의 지표. 연주뿐 아니라, 교육·저술 등 각종 관련 분야에서 과거와 정통의 이념을 우리시대에 맞게 변용하고 있다. 뉴 올리언스에서 태어나 줄리어드를 마친, 재즈와 클래식 두 분야 모두의 적자. 최근 「재즈와 클래식의 행복한 만남」이란 그의 책이 번역 출간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장병욱 기자>

◎전문가 진단/조형준 문화평론가/대중의 좌절이 낳은 ‘틈새문화’

우리 문화의 역사적 특징을 몇가지 들라면 먼저 위기의 문화, 부정의 문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제국의 주변부에 사는 우리에게 제국의 중심이 가하는 「외침」의 위기는 하나의 체화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리고 「추한 한국인」의 저자가 지적하는대로 이씨조선이라는 씨족국가가 500년동안 지속된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러한 이씨조선이 망한 지 9년만에 공화정을 선포하는 등 20세기는 일본과 미국이라는 새로운 제국의 중심을 모방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부정의 세기였다.

이처럼 계승없는 부정의 문화와 위기의 문화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우리의 정신구조를 지배해왔다면, 20세기말을 통과하는 지금, 경제부터 문화나 도덕성까지 우리 삶은 「위기」가 아닌 것이 없게 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대중들은 최근 느닷없이 조선시대부터 시작해 고려시대까지 관심의 촉수를 뻗치고 있다. 20세기 한국문화에서는 한번도 제대로 탐구의 대상이 된 적이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엄마 어렸을 적엔」이라는 전시회와 소설 「아버지」를 보자)가 대중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린다면 고향의 아버지를 죽이고 외국인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20세기 우리 문화의 원형질을 형성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복고의 문화」의 대중적 심리(학)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대중의 좌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잘 살아보세』라는 한마디 말로 온 국민이 단결하여 일사불란하게 앞으로만 매진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잘 살 수가 없으며, 오히려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었지만 그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역설적 느낌과 배경을 갖게 된 것이다. 아날 학파의 말을 빌린다면, 적어도 『잘 살아보세』나 『무조건 앞으로』라는 집단정서가 문화적 설득력을 잃어버린 셈이다.

이러한 틈새를 비집고 과거의 배고픔의 문화에 대한 느닷없는 향수가 출몰한 것이다. 하지만 뒤주에 왕자를 가두어 굶겨죽인 영정조시대를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로 둔갑시키고, 뜬금없이 문제적 인물 카이사르를 위대한 영웅으로 추켜세우는 데서 보이듯 우리의 「복고 문화」는 다분히 문화적 파시즘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과 대정 데모크라시가 몰락한 1920년대 말과 30년대 초의 독일과 일본이 그랬듯이 말이다. 문민정권이 좌초한 90년대를 우리도 그렇게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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