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어느 모임에서 20년만에 고교 동창을 만났다. 공부를 꽤 잘했던 친구인데 미국에서 노인복지정책으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와서 직장을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전문가가 많지않은 분야인데다 수요는 늘고있어 직장구하기는 쉽겠다』고 했더니, 그 친구 말이 대학에서 영문과를 전공해 힘들다는 것이었다.대학에서의 전공과 다른 직장을 구하고자 할 때 어려움을 겪는 것은 비단 학교 계통의 직장 뿐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처럼 일단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전공을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한 곳에서 졸업 후까지 전공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적성이나 취미에 따라 교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 대학에서 전공을 바꾸거나 복수전공을 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중고등학교 때부터 오직 대학입시를 위해 일률적인 교과목을 공부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실정에서 자신의 적성을 확실히 알고 대학의 전공을 택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게다가 선택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성적인데.
사실 나만큼 대학 때의 전공과 동떨어진 직업을 택한 경우도 드물 것이다. 한국에서 음대를 나왔지만 미국에서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은행에서 일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직장에서 전공때문에 차별대우를 받았다거나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한 동료들에 비해 능력이 모자란다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당시 동료들 중에는 경제학이나 경영학보다는 철학 역사학 등 다양한 전공을 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런 인문계통의 전공자들에게 은행업무를 철저히 가르쳐 놓으면 소위 말하는 「상상력이 풍부한 은행가」가 나올 수 있다고 해서 오히려 더 좋아했다.
대학을 학부제로 운영하려 해도 인기있는 몇 학과에만 학생들이 몰리기 때문에 안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대학에서의 전공이 평생을 좌우해서야 인기있는 학과로만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경직된 사고와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의 후배나 자식들도 점수 때문에 할 수 없이 택한 전공으로 평생 곤혹스러워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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