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거주 시크교도에 고어 부통령 의례답장/무심코 쓴 ‘분리인정’ 단어/인 정부·국민 “발끈”무심코 보낸 앨 고어 미국 부통령의 편지 한장이 인도인들의 반미감정에 불을 지피고 있다.
최근 인도 언론들은 미국의 무례와 무지를 비판하는 기사를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미국에 거주하는 한 인도계 시크교도가 인도 펀잡주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보낸 편지에 대해 앨 고어 부통령이 써준 한장짜리 답장. 고어 부통령은 이 답장에서 「칼리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귀하의 견해를 들려준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는 의례적인 구절을 적었다.
문제는 「칼리스탄」이라는 단어. 「칼리스탄」은 시크교 분리주의자들이 펀잡주를 자신들의 독립국가라고 주장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인도의 주 가운데 유일하게 시크교도가 힌두교보다 많은 펀잡지방에서는 시크교도의 독립투쟁이 격화한 84년 이래 지금까지 사망자만 2만명에 달하고 있다. 인도정부는 「칼리스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불쾌하게 여긴다.
편지 내용이 인도언론에 공개된 뒤 인도인들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시크교도들의 독립국가를 인정하려는 것 아니냐』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제가 확대되자 백악관은 『미국은 펀잡주를 인도의 영토로 간주한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고어 부통령측도 『편지는 비서실에서 미리 준비돼 있는 답장양식에 맞춰 빈칸에 해당단어만 집어넣은 것이며 이 과정에서 편지를 보낸 사람이 사용한 칼리스탄이란 단어를 무심코 집어넣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도인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얼마전에는 클린턴 대통령도 시크교도에게 보낸 답장에서 『이 지역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과 협력하겠다』고 쓴 사실이 추가로 알려졌다. 인도인들은 분리주의자들과 협력하겠다는 것은 곧 그들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라며 또한번 펄펄 뛰었다.
인도의회는 정식으로 외교경로를 통해 이 문제를 항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NKP 살베의원은 최근 열린 의회에서 『고어 부통령은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나 역사의식을 전혀 갖추지 못한 인물』이라며 이 기회에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국가」인 인도에 대한 미국의 경시태도를 바로잡을 것을 주장했다.<김준형 기자>김준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