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에 담은 향수… 그리움…우리 양화 1세대 작가인 임규삼. 그가 미국으로 떠난 것이 78년. 예순이 넘어 떠난 이민길이었기 때문일까? 한국 땅, 한국 사람에 대한 그의 향수와 갈망은 아직도 그의 그림 속의 한마리 새로, 흔들리는 나뭇잎으로 그 느낌이 온전하다. 이제 팔순을 맞은 노화백이 다시 고국 땅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갖는다.
그간 이런 저런 단체전에 작품을 한두점씩 출품하기는 했지만 서울서의 대규모 전시는 87년 롯데미술관 전시 후 근 10년 만에 처음이고 미술교사로 첫발을 디딘 안동의 세종화랑 전시이후 5년 만의 일이다.
임규삼은 1937년 일본 미술대학 유화과에 입학, 동기인 임직순, 선배인 곽인식 등과 함께 미술교육을 받았다. 학생 신분으로 일본 화단의 등용문인 신구도사전에 입상하고, 이어 독립전에 입선하는 등 출발은 화려했다. 이어 해방이후 49년부터 국전에 출품하기 시작, 수차례 입선과 특선을 차지했고, 61년 추천작가, 74년 초대작가, 75년 심사위원 등 81년까지 국전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28년간 미술교사로 재직하기도 한 그는 57년에는 미술교사의 동호회로 국내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기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몇 안되는 양화 1세대 중 현존작가이면서 동시에 이를 뒷받침할만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화단에서 그는 별로 유명하지 않다.
한때 한국화단에서 융통성 없는 이로 유영필과 임규삼을 꼽았을 정도로 임화백의 성격은 꼿꼿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강직함은 늘 배타성, 고립으로 결말이 나기 십상이다. 학교와 화실, 집을 오가는 생활을 수십년간 지속했던 그는 이렇다할 화단의 동료도, 지지자도, 후원세력도 별로 없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리는데 소홀했던 그의 성격은 이민 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LA 근교 애나하임시에서도 10여평짜리 화실과 집만을 오가는 「꽁생원」생활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후기 인상주의 경향의 그의 작품 중 70점이 추려 전시된다. 이 작품들은 실제에 대한 기술의 단계에 있는 40년대 작품, 시대상을 반영한 50, 60년대 작품, 무르익은 사실주의와 추상화에 대한 모색이 엿보이는 70년대 작품, 밝은 색채로 긍정적 세계관이 강조된 80년대 작품, 고향에 대한 향수가 형상화한 90년대의 근작까지를 아우르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왕성한 창작력으로 아직도 작품에 몰입하고 있는 노화백이 그려낸 그리움의 선언이며 1세대 양화가의 새로운 자리매김을 모색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문화일보 갤러리가 마련하는 임규삼 초대 회고전은 17일부터 31일까지. (02)3700―5760.<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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