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서 태어나 자라서 근무… 3대 90년 “이화가족”/조부 이화학당 유치원 소사/아버지는 총장공관 요리사/형도 수위로 일하다가 은퇴이화여대 재무처 관재과 이상천(50·은평구 갈현2동) 주임은 이대 캠퍼스가 고향이자 출생지다. 총장공관 요리사로 일했던 부친 고 이동섭(70년 작고)씨 부부가 교내 사택에서 자신을 낳았기 때문이다. 총장을 제외한 직원 가운데 캠퍼스에서 기거했던 사람들은 이주임 가족 뿐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이주임의 조부 고 이원식(41년 작고)씨도 이대 사택에서 살았다. 3대에 걸쳐 근 90년을 이대와 고락을 함께 한 것이다.
조부 이씨가 이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이화학당 시절인 1910년대초. 경기 고양군에 살던 이씨는 친척 소개로 당시 이화학당 유치원 소사로 취직했다. 이때부터 이주임이 12세 되던 해인 59년 사택 자리에 대신초등학교가 들어설 때까지 이씨 집안은 사택에서 기거하며 「이대 터줏대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주임의 부친은 14세때부터 선교사들의 심부름을 하다 서양요리를 배워 총장공관 요리사로 발탁됐다. 부친의 닭튀김 요리는 일품이라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부친은 22세 때인 1924년 결혼했다. 주례는 당시 이화여전 6대 교장 앨리스 아펜셀러씨가 맡았다. 여자가 주례를 서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대 「사건」으로 인해 결혼식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50년 가까이 총장공관을 지키던 부친이 68년 정년 퇴임하자 당시 김옥길 총장은 종신연금을 주고 위로했다.
부친이 은퇴하기 전 이주임의 큰 형인 장남 성천(67)씨도 이대에 수위로 취직, 5년동안 부친과 함께 근무했다. 성천씨는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일본군이, 해방 뒤에는 미군이,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이 캠퍼스에 주둔하는 장면을 목도했다. 이주임은 한양대를 졸업한 뒤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다 김옥길 총장의 제안으로 75년부터 이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씨 형제는 75년부터 형 성천씨가 은퇴할 때까지 10년을 함께 일했다.
조부때부터 이씨 집안이 모신 이대의 수장은 룰루 프레이(4대) 당장 제닛 월터(5대) 당장 아펜셀러(6대) 교장 김활란(7대) 김옥길(8대) 정의숙(9대) 윤후정(10대) 장상(11대) 총장 등 8명.
비품 및 교육기자재 관리업무를 맡고있는 이주임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직장이 아닌 집에서 일하는 기분』이라며 『가업은 아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에서 근무한다는 데 긍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1남2녀를 둔 이주임은 『본인만 괜찮다면 아들이든 딸이든 이대와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윤순환 기자>윤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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