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할 때 세상이 보이더라작가 노경실(39)씨의 신작 장편 「어느 니힐리스트의 아침」(소담출판사간)은 자극적이다. 그렇다고 노골적인 섹스를 묘사하거나 문체가 화려하고 말초적이지도 않다. 그 자극성은 징그러울 정도로 숨김 없이 해부한 삶에서 뿜어져 나온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작품은 평범함의 외각에 있는 사람의 시각을 빌리고 있다. 누구나 어느 정도 허무주의자의 대열에 속해 있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중증이다. 주인공 권희주는 충무로 허름한 건물의 옥탑에 작업실을 짓고 글을 쓰는 40세의 미혼여성. 밤을 지새고 새벽 카페로 달려가 마른 속을 쓴 커피로 달랜다. 여고 1년때 아홉살짜리 동생이 폐렴으로 죽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흐름에서 이탈한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자신의 기억과 추억 속에서 벗기고 입히고 쓸쓸하게 조롱한다.
「어느…」는 뚜렷한 줄거리를 갖고 있지 않다. 아내가 있으면서 주인공과 밀애를 나누는 권태로운 시인, 마리화나에 취한 조각가, 결벽증 혐의가 있는 의사 등 어딘가 상처입은 등장인물을 지그재그로 건너다니며 인간의 아름다움과 썩은 냄새를 섬뜩하게 공감을 느끼도록 그리고 있다. 세상을 대하는 시선이 만만치 않은데서 작가가 걸어온 삶의 두께를 읽을 수 있다.
다양한 이야기법 또한 이 작품을 독특하게 이끄는 장치로 작용한다. 여성작가 특유의 끊이지 않는 수다, 속사포 같은 대화, 비슷한 말·반대말의 열거 등 수 많은 서술 방법을 도입했다. 노경실씨의 문학적 연륜과 문장의 소화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노경실씨는 9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오목렌즈」가 당선돼 소설가로 명함을 바꿨지만 이미 82년부터 동화작가로 활동해왔다. 동화작가로는 크게 호평을 받아 베스트셀러인 「상계동 아이들」 등 30여편을 발표했다. 소설가로 데뷔한 이후 「우리는 다시 메트라로 떠난다」 「사랑은 기다리지 않는다 1, 2」 「소설묵시록」 등 세편의 장편소설을 내놨지만 동화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노씨는 『유일하게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이 글쓰기』라고 말한다. 그가 네번째 장편 「어느…」를 통해 작가로서의 문제의식과 탐구의 노력이 재평가 받기를 기대해본다.<권오현 기자>권오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