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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속에는 고래가 산다’/이대흠(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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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속에는 고래가 산다’/이대흠(시평)

입력
1997.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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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의 찬가힘있는 젊은 시인을 만났다. 이대흠의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는 척박한 현실에서 길어올린 희망의 의지들이 역동적으로 언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표제작인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를 보자. <세상은 짐승들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고/한 나라를 이루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 답답한 세상에서 화자를 당당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육체에 대한 신뢰이다. <나는 삼풍처럼 무너질 염려가 있다>, 내 몸은 그 자체로 세계이며 세계의 일부이다. <내 몸엔 탐진강이 흐르고 있으며/북한산과 용두봉이 둥지를 틀고 있다>. 육체에 대한 이 떳떳한 확신에 의해 <살아있다는 것으로 나는 얼마나/위대한가>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러한 낙관적 인식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이 시집에서 드러나 있는 노동체험이 육체의 생명력에 대한 믿음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

가령 그는 <어떤 사람이 떠나고 그 사람이 그립다면/그 사람이 멀리 있다고 생각마라/그리운 것은 내 안으로 떠나는 것이다>라고 이별을 긍정하며, <난간을 걷는 나의 생/언제든 죽을 수 있으므로 고개 숙이지 않으리>라는 역설 속에서 삶의 위태로움에 당당하게 맞서며,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건 씹다 뱉은 희망보다/얼마나 큰 선물인가>라고 비탈진 삶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역설적인 희망의 의지들이 그의 시의 주요한 동력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시집에서 삶의 구체적 실감에 대응하는 독특한 비유들에 더 이끌린다. 가령 <나사처럼 야위어 어긋난 세상에서 헛돌며>, <오래도록 세상은 젓갈처럼 깊어가고>, <엉덩이만한 잎새들/깔깔깔 들썩이네>, <올림픽대로 위 차들은 일당처럼 날아간다>. 이런 표현들은 가파른 세상을 온몸으로 통과한 시인에게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대흠의 시들에서는 정말 <허무라든가 절망이란 말들이/쥐새끼처럼 달아>난다. 우리는 삶에 대한 당당한 낙관주의에 박수를 보내야 하겠지만, 그것이 그의 앞세대 이른바 「민중시인」들이 보여준 희망의 미학에 대한 수락으로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고래」는 일찍 떠오를 필요가 없다. 「눈물」 속에서 더 오래 머물러야 한다.<이광호 서울예전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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