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가 새삼스럽게 논란을 빚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경제살리기가 가장 시급한 국가적 당면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실명제를 놓고 또 한번 떠들썩한 논쟁을 벌이는 것은 국력의 소모를 초래할 뿐이다.신임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이 실명제 보완을 주장하자 그 동기는 이해하면서도 학계와 시민단체들이 반론을 제기했고 재경원 국세청 등 일부 실무진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일어나는 등 벌써부터 뜨거운 논쟁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명제는 80년대 초부터 10년 넘게 논쟁이 끊이지 않았었고 93년 실시이후에도 논란이 많았던 문제다. 지금와서 이 문제를 갖고 다시 논란을 벌인다 하더라도 쉽게 결말을 내기 어렵다.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 모두 나름의 논리적인 정당성과 현실적인 근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경제부총리가 바뀌었다고 해서 선명한 결론이 새로 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물가불안과 대량 실업, 외채와 수출경쟁력, 산업구조조정, 낙후한 금융산업의 개편과 중소기업문제 등 예민한 현안과 한보사태 뒤처리 등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데 왜 하필 실명제부터 먼저 들고나와 부질없는 논쟁을 재연시키느냐는 것이다. 실명제 때문에 경제가 안된다는 견해에 우리는 동조할 수 없다.
실명제는 경제가 안되는 여러 이유중의 하나일 수는 있으나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는 하기 어렵다. 따라서 신임 부총리의 취임후 개구일성이 실명제 보완이라는 점을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차분하게 안정을 도모하면서 흐트러진 행정과 민심을 바로잡고 착실하게 저축과 수출을 늘리면서 생산활동을 장려하는 것이다. 거창한 제도개선이나 또 다른 개혁은 시기가 아니다.
실명제를 문자 그대로 보완할 생각이라면 그 뿌리와 틀에 손을 댈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제기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씩 차례로 해결해 나가면 된다. 공연히 떠들썩하게 문제를 제기해서 실명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결국은 사실상 폐기하는 방향으로 나가려는게 아니냐는 오해를 살 필요가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