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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없는 ‘천국’/뉴질랜드 이민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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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없는 ‘천국’/뉴질랜드 이민의 빛과 그림자

입력
1997.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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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을 찾아온 1만4,500여명 교민들/그러나 좁은 내수시장·서툰영어로 75%는 실직상태다/사회보장제와 자연환경에 마음은 편하고 자유롭지만 먹고살기에는 힘든 ‘꿈의 나라’뉴질랜드 교민들의 가장 큰 바람은 안정된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 오윤경 주 뉴질랜드 대사는 『한국교민의 75%가 직업없이 놀고 있다』고 말했다.

96년말 현재 뉴질랜드의 한국 교민은 오클랜드에 1만2,000명, 크라이스트 처치 2,000명, 웰링턴 500명 등 모두 1만4,500여명. 이들은 대부분이 공무원 회사원 군인 출신 등이다. 고학력, 젊은층일수록 높은 평점을 주는 뉴질랜드의 점수제 이민제도가 빚은 결과로 고급인력이 대량으로 실업자가 돼 있다.

이중에는 서울에서 치과병원을 하다가 94년 이민온 후 3년째 의사면허 시험준비만 계속하고 있는 오세진(35)씨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도 꽤 많다. 그래서 뉴질랜드 교민들 사이에는 한국에서 무엇을 했는지, 여기서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서로 묻지않는 것이 기본 예절이다. 또 새로 이민온 사람은 최소한 1년간은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 것이 이민 선배들에 대한 예의로 통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기본적으로 뉴질랜드의 인력시장이 협소하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인구는 부산시 인구에도 못미치는 350만명에 불과, 내수규모가 아주 작다. 게다가 주력산업인 목축과 낙농, 임업 등 1차산업은 현지인들이 장악하고 있어 파고들 여지가 거의 없다. 교민들의 영어구사 능력부족도 대량실업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교민들은 그러나 뉴질랜드의 사회구조와 자연환경이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해 준다는 데는 아무런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호주와 마찬가지로 세계 최고수준의 사회보장 및 교육제도를 갖추고 있는 데다 다분히 미국화한 호주에 비해 범죄가 훨씬 적다. 호주만큼 아시아계 이민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지도 않는다.

한국에서 식료품가게를 하다가 8년전 이민와 오클랜드에서 가구배달을 하고 있는 김인석(52)씨. 『비록 막일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주말에는 골프와 가족여행을 하고 고등학생인 아이들은 입시부담이 없는 교육제도 덕분에 몸이 아파도 학교에 가려고 할 정도로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어요.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위해서는 그지없이 좋은 곳이죠』 김씨처럼 눈 딱 감고 육체노동을 하지않으면 대다수가 장기실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교민사회의 실상이다. 「살기는 좋지만 한인들이 먹고 살기는 쉽지 않은 나라」인 것이다.

직업이 없는 교민들의 생활유형은 대략 몇가지로 나뉜다. 첫번째는 이민후 대학에 입학해 학자금을 받아 생활하는 것. 일단 공부를 하면서 천천히 살 길을 모색하자는 식이다. 뉴질랜드정부는 이민자가 대학에 들어가면 5년간 월 1,000뉴질랜드달러(한화 약 60만원)안팎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민자들에 대한 정착지원금인 셈이다. 이 정도의 수입에다 한국에서 갖고 들어온 돈을 합하면 기본 생활비는 충당할 수 있다는 게 교민들의 설명이다.

D그룹에서 8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4월 이민온 강태영(38)씨는 오클랜드 기술전문대에 다니면서 틈틈히 한국관광객 가이드로 나서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그는 『스트레스가 없고 딸아이가 이 곳을 좋아해 마음은 편하지만 졸업후 어떤 직업을 구할지는 아직 막막한 상태』라고 털어 놓았다.

두번째는 구직을 포기하고 가족을 현지에 남겨둔 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일자리를 구해 월급을 송금하는 「이중생활」을 하는 것이다. 웰링턴 교민회장인 김승엽(57·무역상담업)씨는 『이중 생활자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들은 2세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역이민을 하지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의 사업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익금을 송금받아 여유를 즐기는 부유층도 있다. 이들은 단지 쉬기위해 이민온 「의도적 실업자」들이다. 이민 5년째인 오클랜드의 최모(52)씨는 서울 강남 유흥가의 횟집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50만 뉴질랜드달러(3억원)짜리 고급주택에 살며 골프와 낚시로 소일하고 있다.

취재팀은 오클랜드 국제공항에서 연월차 휴가를 이용, 뉴질랜드를 방문했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광고회사 과장 오모(35)씨를 만났다. 『이미 2년전에 뉴질랜드 영주권을 땄지만 여기서 직업을 구할 수 있을 지 확신이 서지않아 이민을 미루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마땅한 일자리나 사업을 물색하러 왔지만 역시 답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돌아갑니다』<오클랜드=유성식 기자>

◎한국서 직장생활하는 교포 P씨/접시닦이·청소·막노동… 그나마 그런 일자리도 궁했다/이민 1년만에 다시 U턴/혼자 떨어져 힘들긴 하지만 가족을 한국에 데려오고 싶진 않다

95년 뉴질랜드 영주권을 얻어 한국을 떠난 P(36)씨는 요즘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으로 되돌아 온 건 아니다. 아내와 5살바기 딸은 여전히 오클랜드에 있다. 주위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본다. 『저사람 왜 처자식 놔두고 혼자 와 있는 거야』

그도 가끔씩 자기 처지를 이해할 수 없다.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이국땅에 남아있는 처자식을 떠 올리면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직장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이민을 떠난 것은 95년 4월. 직장생활이 무료하고 지겹게만 느껴졌고 뭔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다. 이곳 저곳을 물색하던 박씨는 「지상 최후의 낙원」이라는 뉴질랜드로의 이민을 결심했다.

『처음 뉴질랜드에 갔을 때는 마치 천국 같았어요. 자연도, 사람들도, 사회시스템도 모두 별천지였죠. 공해도 없고 아이들 키우기엔 그만이었어요. 스트레스나 과중한 업무로 인해 뒷머리가 늘 무거웠던 한국과는 딴판이었어요. 정말 이민을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지요』 처음 6개월동안은 좋기만 했다. 가족들과 여행을 하며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처음 올 땐 「무엇이든 할 일이 있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반년이상을 돌아다녀봐도 일이 없었다. 먼저 이민 온 주변 사람들도 할 일을 못찾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살려면 한국에서 가졌던 자존심이나 허영은 버려야 한다」는 이민선배들의 조언에 팔을 걷어 부쳤다. 접시닦이 청소 막노동 등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럭저럭 반년동안 막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나 막일도 흔치 않았다. 모처럼 일을 찾았다 싶으면 금세 일이 끝나고 다시 실업자가 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이것이 내가 꿈꿔 온 이민생활이었나」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이것 저것 시도해 보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찾기 어려웠다. 한마디로 뉴질랜드는 「일자리 없는 천국」이었다. 돈은 떨어지고 아내와 딸은 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지난해 3월 방황하던 그에게 뜻밖의 제의가 들어왔다. 호주로 관광 온 옛 직장동료가 『한국에 와서 같이 일하자』고 제의했다. 가족을 놔두고 혼자 귀국하자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민끝에 그는 혼자 한국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한국에서 하던 옛일이 그리웠어요. 그래도 제가 일할 곳은 한국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나 가족들까지 데려올 순 없었어요. 딸아이에겐 이곳이 천국이었거든요. 주위 친구들에게 가족을 부탁하고 지난해 4월 혼자 귀국했죠. 이민 1년만이었어요』

그는 친구의 소개로 모협회의 계약직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비록 바쁘고 힘들긴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할 일 없이 떠돌 때보다는 낫다. 숙식 등 기본적인 생활은 회사기숙사에서 해결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가족에게 송금하려면 돈을 아껴야하기 때문이다.

그는 3개월마다 한번씩 뉴질랜드로 가 가족들을 만난다. 보름정도 머물며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한국에 혼자 있다보면 타향에 있는 것처럼 외롭다. 혼자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도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고 싶지는 않다. 『비록 할 일은 없지만 뉴질랜드는 살기좋은 나라입니다. 딸을 과외와 경쟁에 찌든 한국에서 키우고 싶지는 않아요. 저도 직업만 있었다면 뉴질랜드를 떠나지는 않았을 겁니다』<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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