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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샤의 건망증/김준형 국제부 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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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샤의 건망증/김준형 국제부 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7.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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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고 야당 당수의 몸으로 최루가스를 마셔가며 가두시위의 선두에 섰다. 한번 고배를 들긴 했지만 결국 대통령자리에 올라 독재를 종식시킨 민주투사였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살리 베리샤 알바니아 대통령은 이제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과 맞서는 처지가 됐다.『탈취한 총기로 무장한 시민들은 시가지를 완전장악하고 바리케이드를 친 채 탱크로 중무장한 정부군과 대치하고 있다. 외부와 통하는 전화는 끊겼고 언론의 보도도 금지됐다』 외신이 전하는 블로러 등 시위 중심도시들의 모습은 흐릿해진 17년전 광주의 기억을 되살린다. 물론 블로러를 광주에 단순대입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정권의 성격, 시위의 원인·양상도 차이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도시의 모습은 닮은꼴이다. 18년 독재에 지친 광주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목말라 있었고 알바니아 국민들은 빵에 굶주려 있다. 백성을 주리게 만든 책임을 통감해야 할 집권세력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곳이나 이곳이나 오만하고 무책임하다. 사태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결과로 나타난 혼란만을 강조한다. 군병력에 의해 알바니아 도시들도 조만간 재장악되고 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따지고 보면 베리샤야말로 국민적 저항과 시위 덕에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자유화의 거센 물결속에서도 알바니아 사회당은 91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조직을 총동원, 권력을 지켰다. 하지만 장기집권과 실정에 염증을 느낀 일반 국민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자 결국 11개월 뒤 재선거를 받아들여 베리샤에게 권력을 넘겨줬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의 뜻을 언제까지 억누를 수는 없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그는 너무 빨리 과거를 잊고 있다. 베리샤는 지금 언젠가 셈해야 할 자신의 책임에 무게를 보태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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