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역사에 이름 석자 남기기를 바랍니다.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욕망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고 믿습니다.박정희 대통령은 엄연한 민주국가에서 그 나라 헌법의 제1장 제1조를 완전히 무시하고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는 대죄를 범했으나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지도자라고들 합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12·12사태, 5·17, 5·18 등의 무리수를 써가며 밀어붙여 마침내 권력의 정상을 차지하는 대죄를 범했으나 임기 7년을 무사히 마치고 청와대에서 살아서 걸어나온 최초의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들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의 함성에 못이겨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기고 하와이로 다시 망명길에 올라 태평양의 외로운 섬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고,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의 총에 맞아 죽어서 청와대를 나왔고,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세력의 군화에 채여 억울하게 밀려난 셈이니, 전두환 대통령이 『이 나라 역사 5,000년에 대통령 임기를 다 채우고 살아서 걸어나온 사람이 나 밖에 또 누가 있느냐』고 자랑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내용이야 어찌됐든 그것이 이 나라 역사에 있었던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이었다는 사실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한국 역사에 과연 어떤 지도자로 장차 남게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탄식할 수 밖에 없는 심정입니다. 5공을 계승한 노태우 대통령의 6공으로부터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것은 내용이야 어찌되었건, 40년동안 야당에서 잔뼈가 굵어져 마침내 야당의 당수가 된 김영삼씨로서는 변절에 가까운 무리수라고 나는 믿었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는 구차스런 변명을 대통령 자신의 입에서 들은 적이 있지만, 전두환 노태우씨가 아직 살아있는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의아스럽기조차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김대통령은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아 철창 깊숙이 가두어 놓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 나라에 호랑이가 한 두마리만 날뛰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호랑이를 잡겠다』는 말을 『부정 부패의 뿌리를 뽑겠다』는 뜻으로 풀이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대한 결심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 결심대로 사나운 짐승들이 몽땅 잡혀가 선량한 시민을 해칠래야 해칠 수가 없게 되었다고 믿는 시민이 몇이나 됩니까.
여당에도 야당에도 그리고 청와대 주변에도, 고약한 호랑이가 우굴우굴하다는 사실을 일반 국민은 이번 한보사건을 통해 분명히 보고 알았는데 왜 대통령은 손을 쓰지 않습니까. 만일 검찰이 「육법전서」를 덮어두고 국민의 간절한 애원, 『부정과 부패의 뿌리를 뽑아주세요』하고 부르짖는 그 애원을 외면하고 있다면 대통령 자신이 검찰에 엄한 분부를 내리셔야죠. 『뿌리를 뽑아라』고.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권의 평화적 교체를 실천한 선임대통령이 두 사람이나 있기 때문에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도 그 사실이 역사에 대서특필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쌓이고 쌓인 이 나라의 비리와 부조리를 척결코자 개혁과 사정의 칼을 높이 들었던 「깨끗한」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고 또 남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 칼을 마음껏 휘둘러 벨 놈은 베고 가둘 놈은 다 가두세요. 여당도 야당도 가리지 말고 친척도 친지도 예외가 없게 하세요. 정치 보다는 정의를 위해 분발하세요. 아직도 임기가 1년 가까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대통령, 힘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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