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타기금 76종류에 올 한해만도 103조원 조성/그러나 방대한 규모만큼 모금·운용에 숱한 난맥상/오죽하면 ‘가입자 탈퇴’ 우려로 지난해 감사보고서 공개 불발도/예산 초과하는 지나친 팽창·유사기금 중복투자·각 부처 자의적 사용/무책임하게 관리하고 다음 정권에 넘기는 악순환 언제까지일반회계, 특별회계와 더불어 「제3의 예산」으로 불리는 기금. 재경원에 따르면 올해에는 예산총액 71조4,000억원보다 32조원이상이 많은 103조5,800억원이 조성될 전망이다. 정부가 쓰는 돈은 모두 국회 심의를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 달리 이 막대한 돈은 거의 국회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세입세출 예산에 의하지 않고 운용할 수 있다」는 예산회계법 7조 2항의 규정에 따라 정부부처나 산하 관리공단은 국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 이 돈을 사용할 수 있어 『기금은 정부의 쌈짓돈』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모두 76종의 기금이 설치돼 있고 15개 부처가 이를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이중 장관이 운용권을 갖고 국회예결위에 운용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공공기금이 36개. 그러나 짤막한 계획서 만으로 적절한 운용여부를 검토하기는 어렵고 의원들은 질의를 통해 주의를 환기할 수는 있으나 삭제나 삭감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40개의 기타기금은 관리공단 이사장이 이런 절차조차도 밟지않고 정부와의 「협의」만 거치면 된다. 예산회계법에는 「기금은 국가가 특정목적을 위해 특정자금을 운용할 필요가 있을 때 설치할 수 있다」고 해 놓았다. 예산심의와 결산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보다 빨리, 보다 탄력적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기금은 예산으로 부담하는 정부출연금, 강제부담금, 채권 등을 통한 외부차입금, 민간출연금 등으로 조성된다. 선진국들도 이런 성격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61년 도입된 우리의 기금제도는 관리와 운영, 규모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6월 감사원장 자문기구인 부정방지대책위가 출간한 「기금부조리실태 및 방지대책」 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했다. 『기금은 이제 통합관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해졌다. 또 재정체계가 서로 달라 국가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저해하고 자의적 운용으로 우선순위에 따른 재원배분을 어렵게 하는 등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떨어 뜨리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하반기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이른바 4대 연·기금의 운용실태를 감사했다. 그러나 감사보고서를 제출해 달라는 야당의원들의 요구를 지금까지도 거부하고 있다. 『감사위원회가 감사결과 공개시 연금가입자 대량 탈퇴 등의 혼란이 우려된다는 점에서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 거부 이유다. 감사원의 이같은 태도 자체가 기금운용의 심각한 난맥상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우선 기금의 지나친 팽창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기금규모가 예산을 크게 넘어서는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현상이다. 국회보건복지위의 박철규 입법조사관은 『기금사업중 상당수는 일반회계나 특별회계로 추진할 수 있는데도 무분별하게 기금을 설치한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예를들어 91년 신설된 산업재해 예방기금이나 장애인 고용촉진기금은 정부예산에 편입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국회의 예산심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필요한 사업자금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한 정부 부처의 편의적인 발상과 각종 이익집단을 겨냥한 의원들의 생색내기가 결합해 기금의 종류와 규모를 늘린 셈이다.
예산과 기금, 또는 유사기금간의 중복투자도 문제다. 일반회계에 지방 체육시설 자금이 들어 있는데도 국민체육진흥기금에서 체육시설 건설에 돈이 들어간다. 교통안전을 위한 기금이 건교부의 교통안전기금과 경찰청의 도로교통안전협회기금으로, 기초과학진흥을 위한 기금이 과기처의 과학기술진흥기금과 한국과학재단의 한국과학재단기금으로 각각 나뉘어 운용되고 있다. 또 비슷한 성격의 농수산업 지원기금은 5종류나 된다. 더욱이 개별 기금의 운용에 대한 법규나 원칙이 미비해 부처의 자의적 운용을 부르고 있다. 91년 제정된 기금관리기본법은 기금운용의 원칙만 총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오연천 교수는 『현행법은 기금의 명확한 성격이나 운용·심사체계, 그리고 운용결과평가 등에 대한 규정을 명시하지 않아 혼선을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금별 운용규정도 들쭉날쭉일 수 밖에 없다.
또한 방만한 기금의 통합조정을 위한 정부의 노력도 미진하다. 경제부총리를 위원장으로 8개 부처장관과 한국은행총재가 참여하는 공공자금관리기금 운영위원회가 94년 설치됐지만 지난해 9월까지 열린 6차례 회의 가운데 5번이 서면동의 형식에 그쳤다.
고려대 경영학과 신수식 교수는 『정부가 국민이 모아놓은 기금을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 쓰고있다』면서 『한 정권이 기금을 무책임하게 빼다 쓰면 다음 정권이 이를 떠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유성식 기자>유성식>
◎“기금 둘러싼 잡음 끊이지 않는다”/은행예치 리베이트 등으로 거액 비자금 조성 의혹/5·6공 석유사업기금 불법전용 의혹이 대표적/극장들 문예기금 미납 등 모금과정에서도 허점
96년 운용규모가 62조2,000억원에 이른 기금은 거의 국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 있어 그만큼 비리의 소지가 크다. 금융권에 기금을 예치하면서 받는 리베이트 등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의혹이 대표적.
6공때 경제부처 장관을 지낸 신한국당의 모의원은 기금관련 부조리가 언젠가는 터져 나올 수 있음을 시사했다. 『기금의 은행예치를 둘러 싸고 주무부처에 은행이 수시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관재직 시절 몇몇 은행장이 직접 나를 찾아 와 부처가 운용하는 기금을 자기 은행에 예치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한 적이 있지요. 장관을 그만 둔 뒤에도 은행에서 「줄을 대 달라」는 청탁이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야권에서는 기금운용과정에서 조성된 비자금이 정치권, 특히 여권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며 각종 기금의 국회심의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5, 6공 당시 석유사업기금 유용의혹이 불거진 바도 있어 야권은 기금의 불법전용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석유사업기금은 94년말 자산액이 4조7,300억원에 이르렀던 매머드 기금으로 의혹과 추문이 잇따랐다. 그중에서도 은행에 기금을 예치하면서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거나 기금사용 내역을 축소해 조성한 돈을 정치자금으로 빼돌렸다는 의혹이 크게 대두했다.
당시 야권은 석유사업기금을 관리하던 석유개발공사 사장의 면면을 의혹의 방증으로 들었다. 80년부터 5년간 5공정권의 핵심인사였던 이원조씨가 사장직을 맡았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육사동기 최성택씨가 뒤를 이었다. 석유개발공사는 6공때 석유사업기금으로 발주한 석유비축기지 건설관련 수뢰사건으로 사법처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같은 의혹이 커지자 정부는 95년부터 석유사업기금을 석탄산업육성기금, 에너지합리화기금 등과 묶어 에너지자원 특별회계로 전환, 국회심의를 받도록 했다.
정치자금 전용 의혹은 아직까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기금 관리·운용과정의 다른 비리는 일부 구체적으로 확인돼 국민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이 95년 적발한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의 변태경리 등 21가지 비리는 대표적인 사례. 당시 인원이 321명에 지나지 않았던 원자력환경관리센터의 일반관리비로 연 154억원을 지출하는 등 방만한 운용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또 핵폐기물 처리시설과 관련, 후보지였던 인천 굴업도의 집단소요사태를 막기 위한 경비단 창설에 27억원의 기금을 불법전용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기타기금인 「문예진흥기금」의 경우 조성방법에서 허점이 드러나 95년 34억여원의 기금을 미납한 전국 100여개의 영화관이 고발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기금의 투명한 운용은 고사하고 자금조성 과정에서도 허점이 있다는 비난이 확산됐다. 이밖에 공업발전기금의 무자격자 자금지원(92년), 국민주택기금의 부담금 과다산정(93년) 등 기금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또 예산으로 처리해야 할 부처의 인건비·여비 등을 비슷한 성격을 가진 기금의 관리비로 지불해 국회의 감시를 피하는 등의 비리 사례도 늘고 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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