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쓴 전직대통령 재판방청기/하늘 다음으로 높은 사람인줄 알았는데…「이틀 밤을 샌 끝에, 아빠는 41번 나는 42번 줄표를 받았다. 아침 8시30분이 되어 법원직원들이 책상을 갖고 나와서 방청권을 교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랑 줄서는 것에 두번 실패하고 세번째로 성공하여 방청하게 되어서 너무나 좋았다」(96년 2월26일, 「드디어 방청석에 앉았다」중)
흥분도 잠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입정하는 순간 그 어린이의 가슴에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96년 8월5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 80년대 국정의 주역들에게 구형이 내려지던 현장에서 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며 메모를 남긴 유혁훈(13·당시 서울 성사초등 6년)군이 20여 차례의 방청수기를 모아 「대통령 아저씨들, 너무 부끄러워요」(계몽사간)를 냈다.
「대통령…」은 동심에 비친 현대사의 질곡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3일 백마중에 입학, 어엿한 중학생이 된 유군의 방청수기는 전직 대통령이 죄수복을 입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났을때 받은 충격으로 시작된다. 유군의 방청동기는 법도 마음대로 만들고 하늘 다음으로 높은 줄 알았던 대통령이 왜 재판받아야 하는가라는 궁금증에서 비롯됐다. 방청하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다. 월요일 재판을 보기 위해 담임선생님에게 결석의사를 밝히자 『6년 개근상을 포기하든지, 가든지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고 해 개근상을 포기했다. 그후 방청 때마다 『방청하는 어린이는 너밖에 없으니 수기를 써서 대통령이 재판받는 내용을 알리라』는 주변 얘기에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유군은 수기에서 『돈이 필요했다면 돈을 잘 버는 사업을 했으면 됐을 텐데…. 대통령이 되어서 나라를 부강하게 할 목적이었다면 대통령으로서 직무에만 충실했으면 죄수복을 입고 재판받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전두환 아저씨와 노태우 아저씨는 쉽게 대통령이 된 것같다. 대통령의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권력만 아는 아저씨들이 대통령이 되었던 것 같다』고 적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을 뽑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는 지적이다.
유군은 「12월엔 자랑스러운 대통령 뽑아요」에서 「단돈 1전도 받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김영삼 대통령 아저씨, 대통령은 돈을 안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에요』라고 말한다. 그는 『대통령만 되고 보자는 병든 아저씨들은 대통령이 되면 안되는 사람들 아닌가? 12월에 있을 대통령선거에서 자랑스러운 대통령을 뽑는데 국민이 함께 힘썼으면 한다』라고 수기를 맺었다.<여동은 기자>여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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