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무분별 빌려쓰기 겹쳐/‘군인·공무원’ 이미 적자행진/‘국민·사학’은 20여년후 고갈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4대 연금기금은 흔히 부실 건축물에 비유된다. 설계와 사후관리 잘못으로 「붕괴 위험」을 맞고 있다는 것.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회사원 농어민 등 783만여명이 가입해 있는 국민연금은 2021년께 355조원이라는 엄청난 기금이 조성되는 데도 불구하고 현 추세대로라면 2020년대 중반부터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기 시작해 10년이면 기금이 고갈된다.
60년 가장 먼저 도입된 공무원연금은 93년 처음으로 지출이 수입을 초과, 95년(96년은 미결산)까지 적자행진을 계속했다. 전문가들은 공무원연금 기금도 2010년을 전후해 바닥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75년 도입된 사학연금도 아직까지는 흑자구조지만 머지 않아 적자로 돌아서고 20여년 후에는 기금고갈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63년 시행된 군인연금은 75년 적자로 돌아서 매년 수백억∼수천억원씩 적자를 내고 있으며 이를 메우기 위한 국고보조금도 75년 20억원에서 95년 5,002억원으로 250배나 늘어 났다. 올해에는 전체 국방예산의 3.9%에 달하는 5,370억원의 보조금으로 운용적자를 메울 예정이다.
지난해말 4대 연금기금의 총조성 규모는 약 30조900억원. 매년 엄청난 돈이 모이고 있는데도 기금고갈과 연금제도 붕괴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까닭은 무엇일까.
가입자의 불입금과 통상적인 이자를 합한 것보다 많은 돈을 받게 돼 있는 구조의 문제가 우선 지적된다. 사정이 나은 국민연금만 해도 가입자는 불입금의 원리금보다 1.65∼3배의 급여를 받도록 설계돼 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엄청난 규모의 적립금을 무분별하게 차용, 연금재정의 부실을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는 88년 국민연금을 시행하면서 적립금의 40.5∼57.7%를 재정투융자재원으로 활용해 오다가 94년 공공자금기금관리법을 제정, 여유자금의 60% 이상을 시장금리보다 낮은 이자율(9.6∼11.0%)로 공공자금으로 쓰도록 했다. 정부는 이 돈으로 국·공채를 인수하거나 재정융자특별회계에 재예탁,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에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재특융자 이자율이 시중금리의 절반 수준인 6% 수준이어서 연금기금의 공공자금 예탁금리와 재특융자 이자율 차이에 따른 2차 손실도 만만치 않다. 2차 손실액은 90년 195억원에서 95년 2,833억원으로 급증했고 이 손실은 결국 일반회계로 메울 수 밖에 없다.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김연명 교수는 『정부가 국민연금기금을 공공자금으로 끌어쓸 때 금융시장에서 환금성이 없는 「예수금증서」를 교부, 원금과 이자상환을 보장받을 수 없는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국민회의 이해찬 의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공공부문 예탁금은 96년말 현재 약 15조2,000억원이고 올해말에는 20조여원에 달한다. 이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액의 약 62%를 차지하고 97년 일반회계와 재정융자특별회계예산 71조여원의 약 28%에 해당한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매달 꼬박꼬박 불입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돈이 엉뚱하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을 「주인없는 돈」으로 착각, 눈앞의 재정자금 조달 수단으로 삼는 것은 극히 무책임한 처사』라며 『연금은 개인의 미래소득과 직결되는 민감한 것인 만큼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손질을 하지 않으면 사회경제적으로 엄청난 후유증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김성호 기자>김성호>
◎국민연금 이용방법/퇴사 1∼5년내 일시불 환급 가능/가입 5년이상 생활자금 대출도/최고 500만원까지 연리 10.9%
국민연금에 가입한 후 직장을 옮기거나 퇴사할 때는 불입액의 원리금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반환일시금 제도가 있다. 반환일시금은 퇴직 또는 이직 1∼5년 기간에 청구할 수 있으며 5년이 지나면 국민연금기금에 귀속된다.
그동안 가입자가 찾아가지 않아 귀속된 돈은 330억4,100만원. 66만1,700여명의 가입자가 다달이 적립해 온 돈을 포기했다. 가입자들이 반환일시금 제도에 대해 모르고 있거나 1인당 수령액이 5만원 정도의 소액이어서 알고서도 찾아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으로 반환일시금 지급사유가 생긴 93년 1,200여명 6,200만원이던 미반환금이 94년에는 36만 5,000명, 90억원으로 크게 늘어 났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전화나 우편을 통해 만기 6개월전부터 대상자에게 통보를 하고 있지만 95년 139억8,000만원(18만6,500명), 96년 99억4,200만원(10만8,700명)으로 별 변화가 없었다.
반환일시금을 찾으려면 국민연금관리공단 지부·출장소나 읍·면·동사무소에 비치한 청구서를 이용하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지역번호 없이 700―2547번을 돌리면 알 수 있다. 전화가 연결된 후 반환일시금 안내번호인 1번을 누르면 된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장기저리로 생활자금을 대출받을 수도 있다. 국민연금에 가입한지 5년(장애인은 3년)이 지난 사람은 누구나 자격이 있다. 총 융자액은 500억원으로 의료비와 학자금은 최고 200만원, 경조사비는 300만원, 전세자금과 재해복구비는 500만원까지 대출해 준다. 금리는 시중은행보다 낮은 10.9% 수준이다.
융자 희망자는 국민연금관리공단 지부나 출장소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회사에서 발급한 증빙서류를 함께 내야 한다. 신청자가 많을 경우 월소득이 92만원 이하인 사람이 우선권을 갖는다.<이상연 기자>이상연>
◎정부의 쌈짓돈?/‘주인없다’ 변칙·소극 이용/이웃돕기성금에 출연까지
감사원장 자문기구인 부정방지대책위원회는 92∼95년 42개 기금과 44개 해당기관을 상대로 기금운용 부조리 실태를 조사, 총 160건을 적발했다. 기금지출과정의 문제가 60건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기금계리 및 결산 39건, 기금운영 37건, 기금조성 26건, 기금재산(대출금)관리 25건 등의 순이었다.
이 보고서가 지적한 기금 주무부처 및 관련기관의 여유자금 운용 부조리 유형은 실로 천태만상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기금 조성과 관리를 전담하는 기관의 사업운영에 중앙부처가 개입해 쌈짓돈으로 이용한 사례. 문예진흥원과 문체부에 사업결정권이 있는 문예진흥기금이 대표적인 예이다. 문체부가 정부예산으로 추진할 사업의 재원을 문예진흥기금에서 조달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유자금을 소극적, 변칙적으로 운용해 적절한 이자수입을 올리지 못한 사례도 많이 지적됐다. 농업진흥청은 92년 농업산학협동기금에서 4억2,160여만원을 이자수입이 없는 당좌예금에 예치해 1억9,930여만원의 이자손실을 냈고 다음해에도 같은 방법으로 1,320여만원을 날렸다.
이밖에도 기금운용의 전문성 미흡과 목적외 지출(축산진흥기금), 기금의 변칙회계(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 의사결정과정 위반(문예진흥기금), 기금의 이웃돕기성금 강제출연(사회복지사업기금), 자의적인 융자관련 내부지침 마련(산림개발기금), 무자격자 자금 지원(공업발전기금) 등이 지적됐다. 국민회의 이석현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회 예결위에서 외국환평형기금이 무분별한 채권발행으로 95년 3,95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낳는 등 87년 이후 매년 수천억원의 손실을 낳았다고 지적하고 전반적인 기금운영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
당초 기금의 설치목적과 동떨어진 운용이 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 주요 농산물 우량품종의 효율적인 수급관리를 통해 농가소득을 증대한다는 목적으로 조성된 종자기금의 경우 여유자금으로 농민을 상대로 한 「종자장사」를 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95년 이 기금은 벼와 보리, 감자, 옥수수 등의 종자를 확보, 농민에 팔아 41억 4,000여만원의 차익을 챙겼다.
기금사업과 정부예산사업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는 부지기수다. 청소년육성기금은 95년 청소년을 위한 각종 사업에 44억8,460만원을 썼는데 일반회계에서도 유사사업에 718억원을 지출, 기금의 존재의의를 무색케 했다.
이와 함께 도서관 및 독서진흥기금 등 4개 기금은 전혀 자금조성을 하지 못해 이름만 남았고 국민건강진흥기금 등 14개 기금은 여유자금에 대한 운용규정조차 없는 실정이다.<김성호 기자>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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