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제약회사들이 의약품가격을 멋대로 올려받다 적발돼 무더기로 가격인하조치를 당했다. 정부가 의약품에 대해 시행중인 표준소매가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표준소매가제도의 존폐를 놓고 관련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유지 입장/김대업 부천시 욱일약국 대표/오·남용예방가격질서확립 수단/폐지땐 난매약국 편법 폭리 조장 편집자>
의약품은 그 사용목적이 질병의 치료 및 예방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약품을 얼마나 싸게 구입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필요한 약품을 구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아무리 싼 가격에 구입했더라도 불필요한 약을 복용하게 되면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약값만 낭비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최근 일부 대형 난매약국들이 사회적으로 약가논쟁을 일으키며 의약품을 국민에게 싸게 판매하는 것을 제한하는 현행 표준소매가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소비자에게 최대한 싼 값에 의약품을 공급하겠다는 이들의 주장이 옳은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깊게 들여다 보면 이같은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지 알 수 있다.
실례로 지난 1월 대구지방식품의약청에서 발표한 대구지역 대형 난매약국들의 의약품 가격실태 조사결과 L무역의 수입약품인 R제품의 경우 실제 가격이 3만2,670원임에도 불구하고 표준소매가를 6배이상이나 높은 21만원으로 표시한 뒤 이를 소비자에게 싼값으로 판매하는 것처럼 속이는 일종의 소비자 기만행위가 드러났다. 이러한 행위는 지난달 인천지방식품의약청의 조사결과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이와 같이 대형 난매약국들은 잘 알려진 의약품을 표시된 가격보다 훨씬 싸게 판매하여 고객을 유인한 뒤, 일반약국에서 취급하지 않는 특정품목 또는 수입약품 등의 가격은 높게 표시하여 폭리를 취하는 수법으로 의약품의 오·남용을 조장하고 있다.
대형 난매약국들이 표준소매가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편법의 영업행태를 합법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현행 표준소매가제도를 폐지한다면 대형난매약국들의 이같은 영업행태를 방치하거나 조장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제약회사들이 자사제품에 대한 판매촉진을 위하여 과다한 가격을 표시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어지게 된다. 의약품의 가격질서가 문란하게 된다면 이는 결국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의약품 표준소매가제도는 가격책정 단계에서 적정한 심사를 보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통단계에서 덤핑되는 제품에 대한 가격인하 기능과 약국에서의 부당한 염가판매를 금지하는 수단을 갖추고 있다. 의약품의 오·남용 예방과 가격질서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다.
◎폐지 입장/윤경환 약국경영협의회 회장/공장도가격 ‘뻥튀기’로 유명무실/염가판매 규제 소비자들만 피해
의약품의 가격이 1만원일 경우에 약국이 이 약을 7,000원 미만으로 팔면 행정당국으로부터 업무정지라는 행정처분을 받는다. 약국은 이 약을 4,000원에 구입해 5,000∼6,000원에 판매해도 경영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정부는 그같은 염가판매를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약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1만여종의 의약품 대부분이 이같은 실정이다.
한 마디로 현행 표준소매가제도는 소비자인 국민은 도외시한채 약국과 제약회사만을 살찌우기 위한 가격결정구조이다. 표준소매가제도는 약국에게 공장도가격 이하로 약을 팔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제약회사들은 공장도가격을 뻥튀기로 신고한 뒤 그보다 훨씬 싼 값에 출하하고 있다.
제약회사가 신고한 공장도가격보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의약품을 출하한다면 당연히 약국에서 판매하는 가격도 실제 출하가격 이상이면 된다. 명목뿐인 공장도가격을 하한판매가로 통제하는 것은 정부가 약국의 가격담합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공장도가격보다 20%이상 낮게 출하되는 의약품에 대해서는 가격을 인하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올들어 일부 의약품의 가격을 조정한 바 있다. 그러나 조정된 공장도가격도 대부분 제약회사의 입장만을 반영한 것이어서 실제 거래가격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가 진정으로 의약품이 저렴한 가격에 국민에게 공급되기를 원한다면 명목상의 공장도가격이 아니라 약국에서 실제로 구입한 원가를 기준으로 판매토록 장려해야 할 것이다.
복지부는 또한 대형약국들의 염가판매에 대해 「지나친 가격경쟁은 의약품에 대한 불신과 오·남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 국민건강의 위해요인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약값이 싸진다고 오·남용의 위험이 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약국에는 엄연히 약사가 있고 약사의 관리하에 약이 판매되는 것이 상식인데 복지부는 약사의 기본윤리마저 믿을 수 없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궁극적으로 모든 경제활동은 자유로워야 한다. 공산품과 화장품의 권장소비자가격은 폐지하면서 의약품에 대해서만 유독 이같은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정부의 자율화시책과도 배치된다. 따라서 현행 표준소매가제도는 폐지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정부가 굳이 이 제도를 고집하려면 약국이 구입원가를 기준으로 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한판매가격 규정을 고쳐야 할 것이다.
◎약값질서 문란에 소비자보호차원 84년 시행/정확한 공장도가격 몰라 ‘거품’ 발생 문제점/보건복지부 “의약품 신뢰 붕괴 우려” 유지방침
의약품에 대한 표준소매가제도가 시행 2년6개월만에 표류하고 있다. 의약품 표준소매가제도는 80년대 초 약값질서의 문란이 극에 달하자 정부가 소비자보호 차원에서 약값질서 확립과 가격안정을 위해 84년 9월 약사법시행규칙을 개정, 도입했다. 그러나 최근 단속에서 드러난 「거품 약값」의 실상은 표준소매가제도가 도입 당시의 목적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의약품 표준소매가는 기본적으로 제약업계 자율로 결정한다. 제약협회내 의약품가격관리위원회는 제약회사로부터 의약품의 표준소매가와 공장도가격을 신고받아 이를 심의, 가격을 결정한다. 현행법상 표준소매가는 유통마진을 포함, 공장도가격의 142% 이내에서 책정하게 돼 있다. 예를 들어 공장도가격이 70원인 약의 표준소매가는 최대 100원이다. 하지만 제약회사나 약국이 의약품을 출하 또는 판매할 때 반드시 공장도가격이나 표준소매가를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약회사는 공장도가격의 20%까지 할인해 의약품을 약국에 출하할 수 있고 약국은 공장도가격 이상(표준소매가의 70% 이상)이면 소비자에게 팔 수 있다. 공장도가 70원, 표준소매가 100원으로 표시된 의약품의 경우 제약회사는 최소 56원(공장도가격에서 20% 할인)까지 약국에 출하할 수 있으며 약국은 70원(공장도가 혹은 표준소매가의 70%)까지 할인 판매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표준소매가제도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표준소매가의 기준이 되는 공장도가격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 공장도가격은 제약회사가 제조원가의 2배로 책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조원가 자체가 기업비밀이어서 실사가 어렵다. 제도 자체가 「거품가격」을 묵인하는 셈이다.
두번째 문제점은 약국에서 공장도가격 이하로 약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강제(판매가격하한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약국들은 표준소매가 100원(공장도가격 70원)으로 기재돼 있는 의약품을 56원 또는 그 이하에도 납품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 약국 입장에서는 60원이나 65원에 팔 수도 있는데 70원(공장도가격)이하로 팔면 불법이 된다. 현행 약사법은 공장도가격 이하로 판매한 약국에 대해서는 3일간 영업정지처분을 내리게 돼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문제점을 어느 정도 인정은 하지만 표준소매가를 폐지할 경우 가격질서 문란은 물론 의약품에 대한 국민의 신뢰 자체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표준소매가제도를 계속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가격실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가격관리위원회에 공인회계사를 참가시키고 연중 단속을 통해 공장도가 이하로 유통되는 의약품의 가격은 계속해서 인하해 「가격 거품」을 빼나가겠다는 방침이다.<김상우 기자>김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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