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시절 미술시간이면 늘 색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빨강은 불조심 또는 반공을 나타내는 색으로 고정됐고 학교건물이나 복도, 담장 등 생활공간들은 회색과 갈색으로 칠해져 있어 여러 색상의 물감들을 마음대로 쓰는 데 곤혹감을 느꼈다. 심지어 공중화장실과 버스도 베이지톤의 갈색이 많아 한동안 나는 갈색을 「똥색」(화장실=똥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나의 20대 초반까지도 지속됐던 색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바일 것이다.네덜란드출신의 건축가겸 가구디자이너 리트벨트(Gerrit Rietveld·1888―1964)가 제작한 「적·청 의자」(1918년)는 색채의 독창성이 일상적인 가구를 얼마나 다르게 표현해줄 수 있느냐를 웅변하는 것이어서 탁월하다.
15조각의 목재와 합판(앉는 부분과 등받이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의자는 여러 개체가 모여 하나의 조화를 이루어내면서도 개체의 특성과 스타일이 빨강 노랑 파랑 검정의 색상으로 강조돼 그래픽적인 균형미와 활기를 느끼게 한다. 추상화가 몬드리안의 구성원리를 입체적으로 조형시켜낸듯한 심미안적 작품이다. 제작 당시 유행이었던 곡선의 장식적인 스타일을 일체 배제하고 직선에 대담한 색채로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살려내, 제작한지 근 8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기능성과 독창성에 거듭 탄복하게 만든다.
가구는 우리의 생활양식과 환경, 공간이 바뀜에 따라 그에 맞춰 변화하기 마련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호화찬란한 속칭 「금테 두른」이탈리아식 가구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것이 과연 지금 우리의 생활공간에 어울리는지는 숙고해야 할 문제다. 딱딱한 도시생활에 활력과 휴식의 도구로서 자리잡아야할 가구는 어떤 감각으로 만들어져야하는지 「적·청 의자」에서 그 단초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김규현 경희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p>김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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