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용도땐 예산에 편입/비슷한 기금 통폐합/공공·기타 분류 재실시/관리인력 전문화 등 필요국민이 조성한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정부가 자의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현행 기금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금에 대해 국회를 비롯한 대의기구의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하면서 『예산과 달리 재빨리,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기금의 특성을 살려 투명성과 자율성을 조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문을 덧붙인다.
기타기금을 제외한 공공기금은 운용규모만 해도 일반회계예산의 70%에 달할정도로 방대하다. 국회에 형식적인 운용계획과 결산보고서를 제출하는 것만으로 이같은 거액을 운용하는 한 기금운용의 파행은 불가피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주무장관의 결재만으로 수십억원의 돈을 간단히 쓸 수 있는 기타기금도 다를 바 없다.
연세대 경제학과 박태규 교수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기금관리체계의 부재가 문제의 핵심』이라며 『강제모금 형식으로 조성돼 준조세 성격이 강한 대규모 연금성 기금만이라도 우선 국회의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효율적인 기금운용을 위해서는 일부 기금을 예산 테두리안에 흡수하거나 유사기금을 하나로 묶는 것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다. 기금규모가 영세하거나 일반예산과 유사한 용도로 사용되는 기금을 특별회계나 일반회계에 흡수하든가 통폐합해야 한다는 것.
박철규 국회입법조사관은 『같은 목적을 위해 공공·기타기금 양쪽에 비슷한 이름의 기금이 설치돼 있거나 심지어는 예산과 겹치는 경우도 많다』면서 『이런 기금을 일원화하지 않으면 비효율적 운용과 예산낭비를 가져 온다』고 지적했다.
가장 논의가 무성한 것은 유사기금의 통폐합이다. 현재 5개로 쪼개져 있는 농축산관련기금을 비롯해 제조업분야 관련기금과 기초과학육성기금 등에 대해 통합관리체제를 갖춰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와 함께 각각 36개와 40개인 공공·기타기금의 재분류도 단기적인 개선책으로 거론된다. 기금관리기본법은 사업의 재원이나 공공성을 기준으로 공공·기타기금을 나누고 있지만 기준자체가 모호해 실질적인 구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박규태 교수는 『자금의 공공성이 크고 국민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공무원연금기금이 기타기금으로 분류돼 있다』며 『명확한 기준으로 재분류해 기타기금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민간심의위원회의 관리하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금관리 실무자의 전문화와 기금운용에 대한 전문평가제도의 구축도 내부적으로는 시급한 과제다. 재정경제원 관계자는 『각 부처의 기금운용을 제대로 감독하고 여유자금을 관리하는데만 70명 이상의 직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기금운용 및 관리를 전담하는 전문인력의 숫자는 태부족이어서 전문인력의 선발과 기존인력에 대한 재교육 요구가 일고 있다.
기금운용을 투명화하기 위해 유사분야의 기금을 묶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부문별 평가단을 구성해 중복투자나 부조리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증시부양’ 짐 떠맡은 기금/연간 수천억∼수조원 ‘울며 겨자먹기’ 투자/“손해 속단 일러” 반론도
국민연금기금 공무원연금기금 사학연금기금 등 3대 기금은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의 큰 몫을 차지한다. 정부는 시황에 따라 이 기금에서 자금을 동원해 주식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한다. 기금의 주식투자 규모는 연간 수천억∼수조원에 달해 증시동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올해는 증시침체의 장기화로 장세부양을 위한 기금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참여민주사회 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와 야권은 현재의 불안한 장세로 보아 주식투자는 대규모 투자손실을 가져 올 공산이 커 결국 가입자들에게 손실을 전가하게 될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한다. 국회 법제예산실의 한 관계자는 『주식투자로 기금이 부실화해 사회적 충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민회의의 한 의원은 『정부가 심각한 후유증을 뻔히 예견하면서도 증시부양 등을 위해 국민의 돈인 기금을 오용하고 있다』면서 『정권만 안정시키면 된다는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3대 기금에 대한 감사원 특별감사에서도 관계자들이 주식투자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현장세의 「위험부담」으로 인해 올해 주식투자를 하겠다는 기금은 국민연금기금 뿐이며 투자규모도 지난해 수준인 1,500억원에 그치고 있다. 대부분의 기금은 안정적 이자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금융권 예탁 등 「안전투자」를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재경원과 재계쪽은 견해가 다르다. 재경원의 한 관계자는 『기금으로 장기적인 주식투자를 하면 손해본다고 속단할 수 없다』면서 『최근 주가가 바닥세를 보이고 있어 적절한 「사자」시기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35년간 증시의 연평균 수익률은 15% 내외로 시중금리보다 높았다』고 덧붙였다. 또 증시부양은 기금의 「공익성」에도 부합되며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 주요기금의 주식투자 비율이 총자산의 26∼80%로 우리나라의 3∼5%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도 지적된다.
재경원은 올해 투자신탁회사 등을 통한 주식투자를 적극 장려하고 이로 인한 손해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하는 등 기금의 주식투자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재경원의 「지시」라고 볼 수도 있는 이같은 조치는 증시부양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몰라도 가뜩이나 취약한 기금의 재정구조로 보아 모험일 수도 있다는 것이 기금관계자들의 우려이다.<유성식 기자>유성식>
◎외국의 운영사례/원리금 상환 책임소재 분명/특별한 경우 의회 승인받아 설치
해외 각국도 여러 형태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기금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기타기금은 공공재원의 효율성을 높인다거나 재정운용을 돕는다는 등의 특별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설치·운영되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각종 기금은 원칙적으로 예산의 범주안에서 운용되고 있다. 의회의 심의와 승인을 거치므로 투명성은 높은 편이다. 기금을 재정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이다. 다만 정부가 환금성이 보장된 국·공채 등을 주는 방법으로 원리금의 확실한 상환을 보장해 주는 동시에 원리금 상환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적립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경우 대부분의 기금을 금융시장에서 유통되는 국·공채 및 상장주식 등을 매입하는 방법으로 운용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심지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도 연금기금을 재정자금으로 차입할 때 환금성이 높은 유가증권을 교부한다.
수조원에 달하는 공공자금 예탁에 대해 국회의 심의나 동의를 받는 채권이 아닌 5년만기 예수금 증서를 교부하는 우리나라의 예는 특수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예수금 증서는 환금성이 없을 뿐 아니라 원리금 상환의 주체나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더욱이 만기에 이른 기존 예수금 상환을 위해 새로운 예수금 증서를 발행하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김성호 기자>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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