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가족관계 ‘유진 오닐’로의 여행미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극단 산울림에서 보게 됐다. 20일 산울림소극장에서 이해랑선생 추모공연을 겸해 채윤일씨 연출로 막을 올린다. 미국이나 국내에서 모두 손꼽히는 걸작이다.
이 작품은 오닐이 죽은 뒤 브로드웨이에 처음 발을 내디딘 신인 연출가 퀸테로가 무대에 올려 오닐의 영전에 네번째 퓰리처상을 안겨 주었다. 오닐은 자신이 죽은 뒤 25년간 발표하지 말 것을 주문했었다. 그가 『눈물과 피로 쓰여진 지난날의 슬픔』이라고 말했듯이 아픈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난 유랑극단 배우였으나 셰익스피어극의 배우로서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아버지, 정착하지 못한 삶에서 마약중독에 빠진 어머니, 냉소적이고 술을 많이 마시는 형 등 작품의 등장인물은 오닐의 실제 가족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89년 타계한 고 이해랑씨가 62년 주연과 연출을 맡아 초연한 공연이 한국 신극사의 절정으로 평가받았다. 채윤일씨는 『「밤으로의 긴 여로」를 본 느낌은 고교 2년생이던 나에게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연극도 예술이구나 하고 처음 느끼게 된 작품이었다』고 회상했다. 채씨는 「햄릿」을 함께 준비하던 이해랑씨가 갑자기 별세, 뒤를 이어 막을 올려야 했던 슬픈 인연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작품세계는 많이 다르다. 이해랑씨는 채씨가 연극 「불가불가」로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했을 때 『내가 입원해있느라 심사를 못한 틈을 타서 네가 상을 탔구나』라고 말했을 정도로 사실주의연극에 집착해왔다.
그러나 채씨는 창작극시리즈를 선언하는 등 사실주의연극과 다른 자유분방한 연출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4막5장인 이 작품은 2시간50분 동안 지루함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채씨는 원전을 거의 자르지 않았고 답답해 보이는 무대장치도 원작대로 따른다. 역설적으로 채씨는 『관객 수준 높이기 일전』을 선포한 셈이다.
웃음의 대사 뒤에 숨은 울음의 심리를 따라잡는 것이 이 작품을 보는 즐거움. 채씨는 이를 위해 배우들에게 작살처럼 내리꽂히는 강한 시선, 대사와 대사 사이를 채우는 작은 손짓을 하나하나 치밀하게 주문한다. 그리고 4막이 승부수다. 가족들의 감정의 꺼풀이 한 겹씩 벗겨져 속내를 드러내며 감동의 파고를 높이면서 파국을 맞는다.
아버지 티론 역의 김종칠, 어머니 역의 채진희, 장남 역의 남명렬, 동생 에드먼드역의 박지일씨가 애증의 4중주를 연주한다. 6월22일까지 화∼목 하오 7시30분, 금 하오 3시 7시30분, 토 하오 3·7시, 일 하오 3시. (02)334―5915<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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