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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수에는 동백이 불탄다/겨울 찬바람속 맺은 꽃망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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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수에는 동백이 불탄다/겨울 찬바람속 맺은 꽃망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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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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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처녀 설레이는 봄바람 불면 이달 중순의 절정을 향해 화려한 자태를 가꾸는 오동도 동백숲/떨어져도 시들지 않는 절개와 어부아내 애틋한 전설 간직한채 바닷바람과 꿋꿋이 맞서는 향일암의 동백/그 두 얼굴의 화심… 여심…청마 유치환은 「그대 위하여/ 목놓아 울던 청춘이 이 꽃 되어/ 천년 푸른 하늘 아래 소리 없이 피었나니…(중략)/ 그대 위하여선/ 다시도 다시도 아까울리 없는/ 아아 나의 청춘의 이 꽃」이라 했다.

동백이다. 동백의 계절이다.

세상의 만화가 아직 인고할 때 홀로 남녘의 산을 홍조로 물들이고, 진달래 벚꽃 철쭉의 등을 북녘으로 떠다 미는 동백. 시린 가슴으로 떠난 여심에 남도의 바람이 분다. 그래서 동백은 여심이련가?

동쪽으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서쪽으로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 시작되는 여수. 한때 오동나무가 많아서, 혹은 오동나무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붙여진 오동도. 꽃은 여기에서부터 불이 붙는다.

여수역에 내려 10여분 걸으면 오동도로 향하는 방파제. 오른쪽으로 충무공이 수중에 성을 쌓았다는 장군도를, 왼쪽으로는 이름 모를 수많은 섬들을 바라보며 20여분 천천히 걷다 보면, 반기는 것은 후박나무의 은은한 향기.

『봄바람난 처녀는 오동도로 데려와라』는 관리사무소 잡역부의 말마따나 섬 전체를 휘감은 후박의 향은 여심을 흔들고도 남겠다.

섬 바깥쪽으로 오솔길이 둘러싸고 있다. 쉬엄쉬엄 걸어서 1시간거리. 오솔길에 접어드는 순간, 봄이다. 동백숲 천지. 꽃은 지천이다. 희고 매끄러운 줄기. 윤기 흐르는 푸른 잎. 그 사이에 탐스럽게 터져나온 붉음.

이렇듯 동백꽃은 가장 먼저 바람난 봄처녀다. 그러나 속내는 절개이자 순정이다. 섬 입구의 비문은 동백의 슬픈 전설을 이렇게 전한다. 어부와 함께 사는 아리따운 아낙이 도적에 쫓겨 창파에 몸을 던졌다. 어부는 슬피 울며 오동도 기슭에 아내를 묻었는데 북풍한설 내리치는 그해 겨울부터 무덤가에는 붉은 꽃이 피어났다고.

오동도의 동백은 작년 11월부터 꽃망울을 맺기 시작해 지금은 절반이 피었다. 절정은 이달 중순에서 4월초. 오동도 관리사무소(0662-62-4981)

떨어져서도 시들지 않고 화려한 색깔과 자태 그대로 마르는 동백은 조선의 아낙네다. 어느 하나 남김없이 희생한다. 꽃은 술에 담가 동백주로 아낌을 받고, 새빨간 꽃잎은 전을 부쳐 먹거나 녹차 한잔에 띄우면 향과 꽃색이 어우러진다. 씨앗은 기름을 짜 아낙의 머릿기름과 화장품으로, 또는 식용유로 사용되었고, 기름을 짜고 난 찌꺼기는 비누로 쓰였다. 나무는 치밀하고 단단해 파이프 빗 주산알 등으로, 이파리는 도자기의 유약과 연마제로 이용되었다.

오동도를 나와 향일암으로 길을 떠나보자. 바닷가에 우뚝 솟은 바위산 중턱의 암자와 동백의 어울림이 찬탄을 자아내는 곳이다. 돌산대교를 지나면 갓김치가 유명하다는 돌산섬. 향일암은 섬의 남쪽 끝에 있다. 입구에서부터 향일암에 이르는 24㎞ 국도는 왼쪽으로는 한가한 어촌과 오른쪽으로는 나지막한 산 아래 시골풍경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 온다.

10여분 차를 달리면 충무공이 왜선 60여척을 격파했다는 전적비가 서있는 무술목. 다시 20여분 달리면 200년생 송림이 울창한 방죽포해수욕장. 인적 드문 고적함이 아직 때 이름을 말한다. 15분 가량 더 달리면 향일암 오르는 길. 걸어서 20여분. 바다를 밑으로 바라보며 돌무덤과 함께 뱅글뱅글 올라가는 산길이 힘들지만 좋다.

경상도 아낙들은 『우야꼬, 백지(괜히) 올라왔네, 와이래 힘들세』라고 후회하지만, 거북의 등판처럼 갈라진 바위틈새로 열린 아슬아슬한 길을 따라 향일암에 올라서면 때이른 후회를 뉘우친다. 『큰 절 많이 댕겨봤지만 자연적으로 이렇게 아담한 절은 처음일세. 관세음보살…』

바다를 향한 거북이 모양의 금오산 기암절벽 위, 보조국사가 세웠다는 향일암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대웅전 앞뜰에 서서 붉게 솟아오르는 해돋이를 바라보기 위한 발길이 연중 끝이 없는 곳이다.

그러나 향일암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바다를 향해 서있는 동백들이다. 오동도가 동백숲의 현란함이라면, 이곳에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꼿꼿이 홀로 핀 동백의 푸른 절개가 있다.

◎동백이 좋은 곳/고창 선운사­국내 ‘1번지’/월출산­기암괴석속 절경/거제 몽돌밭­최대 군락지

동백은 봄이 오기 전 바람끝이 싸늘한 이른 2월부터 피기 시작한다. 대개 섬기슭이나 해안의 남쪽을 향한 골짜기에서 무리지어 자생한다. 고창 선운사, 완도 죽청리, 거제도 몽돌밭, 해남 두륜산, 거문도, 울산의 춘도 등이 대표적인 동백꽃밭으로 유명하다.

전북 고창의 선운사는 미당 서정주의 시로 유명한 국내 동백꽃 1번지. 동백나무 자생지의 북방한계선상에 있어 다른 곳보다 한달 정도 늦는데 올해는 지난해 가뭄으로 5월 초·중순께야 절정일 것 같다. 고창군에서 주관하는 선운사 동백연도 이때 열린다. 동백호텔에서 선운사까지 2㎞ 숲길 5,000여 평에는 500년생 동백나무 3,000여 그루가 저마다 꽃을 피워 붉은 숲을 이룬다. 고창에서 선운사까지 1시간마다 운행하는 완행버스가 있으며 주차장에서 선운사까지는 1시간 30여분. 선운사 관리사무소(0677-63-3450)

전남 영암·강진군의 월출산은 기암괴석의 전시장.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온 산이 바위와 절벽으로 이뤄져 있다. 동백꽃을 보기에는 월남리 쪽으로 올라가 도갑사 방면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좋다. 20여분 올라가면 기암괴석이 동백숲에 묻혀있는 금릉경포대. 40여분을 동백을 보며 걸어 올라갈 수 있다. 광주에서 영암행 직행버스를 타면 된다. 공원 관리사무소(0693-73-5210)

거제 해금강에서 7.9㎞ 떨어진 학동리 몽돌해수욕장 부근의 동백숲은 국내에서 가장 큰 동백군락지. 학동삼거리에서 해금강쪽의 1.5㎞국도는 절벽 위에 피어있는 동백이 일품이다. 다도해를 배경으로 한 해금강의 일출과 낙조가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한국의 나폴리라는 통영을 거쳐 들어가는 코스와 여수, 충무, 부산 등에서 출발하는 배편을 이용해도 된다. 해금강 관리사무소(0558-32-8788)

◎여수 주변 볼거리·먹거리/검은 모래 만성리해수욕장 찜질로 유명/참장어·금풍생이·서대회 등 입맛 유혹

여수는 남해의 섬을 둘러보는 기점이다. 배편(0662―63―0117)으로 2시간 남짓 남쪽으로 내려가면 거문도. 삼부도 백도 등을 거느린 섬으로, 새벽녘 거문리 야산에 오르면 밖노루섬과 오리섬 사이로 장엄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거문도에서 다시 1시간여 배를 타고 나오는 백도는 높고 얕은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절벽이 장관. 매년 음력 2월15일이면 바다위로 길이 열린다는 사도가 여수에서 뱃길로 1시간 20여분 거리에 있다.

피서철이 아닌 때에도 모래찜질을 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해수욕장이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검은 모래로 덮인 만성리해수욕장. 미용과 건강에 좋다고 한다. 5월26, 27일 이곳에는 모래찜질과 갖가지 행사를 즐길 수 있는 「검은 모래 눈 뜨는 날」이 열린다.

여수시내에는 충무공이 전라좌수영 본영으로 사용하던 진남관, 충무공 사액 사당인 충민사,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훈련장소였던 흥국사 등 문화 유적지도 많다.

무엇보다 바다 먹거리가 천지다. 해마다 내륙 손님들을 위한 잔치가 벌어지는데, 5월4∼11일 오동도에서는 「남해안 생선요리 축제」가, 7월말에는 「참장어(하모) 요리 축제」가 경도에서 열린다. 흔히 「아나고」로 불리는 붕장어와는 다른 참장어는 여름철 스태미나 식품으로 뱀장어를 능가한다. 「여수와서 힘자랑하지 말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여수하면 빼놓을 수 없는 요리가 금풍생이 구이와 서대회 무침. 금풍생이는 돔종류로 대가리는 진하고 고소하며, 몸통 살은 쫄깃쫄깃하다. 그래서 「새서방」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집 나가는 마누라도 불러세운다」는 서대회는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 중앙동의 구백식당(0662―62―0900)에 가면 두 가지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14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손춘심씨의 정성도 있겠지만 「엄마가 달래도 안준다」는 막걸리 발효 식초가 비결.

근처에 있는 노래미식당(0662―62―3782)은 노래미탕으로 유명하고, 교동에 있는 칠공주식당(0662―651―1564)은 장어탕이 일품.<여수=유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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