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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보다 문화논리로…/조유전 국립민속박물관장(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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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보다 문화논리로…/조유전 국립민속박물관장(아침을 열며)

입력
1997.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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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서 올해를 문화유산의 해로 정하고 1월21일 선포식을 가진지 벌써 1개월이 넘었다. 우리가 문화유산을 알고 가꾸고 보존하는 근본 뜻은 어디에 있는가를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문화유산의 의미는 간단히 정의해서 문화적으로 물려받은 유·무형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오늘날 일반적으로 문화재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하는가?

문화유산은 유한한 것일뿐 아니라 우리의 얼이 그 속에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화유산은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가장 값진 민족자산이자 나아가 세계의 자산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제시대는 그렇다 하고 광복 50년이 지난 이 시점에 과연 우리의 문화유산은 온전히 보존되어 왔는지, 일제시대보다 더 나아진게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문화유산을 천시해 왔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300년이나 걸려야 이룰까말까 한 경제성장을 30년에 이루었고 세계로부터 연구 대상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모든 것을 경제개발에 맞추었고 그 결과 단군 이래 오늘날처럼 잘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 현재를 살고있는 사람은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경제개발을 위한 국토의 개발은 문화유산 특히 매장된 문화유산의 파괴와 멸실을 함께 가져온 것이다. 예컨대 초기 백제의 수도로 알려져 있는 한강변의 오늘날 서울을 보자. 초기 백제의 고도가 아무런 사전조사없이 오늘날 거대도시로 변함으로써 매장되어 있던 초기 백제의 역사를 밝혀줄 많은 자료가 흔적없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지금도 개발정책은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지역사회 발전을 앞세운 지역이기주의와 맞물려 문화유산 보존이란 국가정책 차원과는 상이하게 양보없이 대립관계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300년을 30년으로 앞당긴 경제개발 정책의 결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가 제 틀을 잡고 뿌리를 내리지도 못하고 정체성을 잃어버린 꼴이 되어 버렸다고 진단하는 주장도 음미해볼 일이다. 그것은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즉 모든 가치의 척도를 돈이란 잣대로 재다보니 돈이 있어야 정치도 할 수 있고, 돈이 있어야 문화사업도 할 수 있고, 돈이 있어야 공부시킬 수 있고,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만사는 돈으로 통한다는 황금만능 풍조를 만들어 국민을 경제동물로 만들었다.

그 결과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수단이야 어떻든 돈만 벌면 된다는 사고뿐이고, 오로지 내 자식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주의, 더불어 사는 인성교육은 없고 오로지 일류에만 집착해 1년에 수십조원이라는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교육부재의 교육, 과소비의 교육, 과소비의 만연, 이 모든 것이 경제개발의 부작용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지 않은가?

지금 한보사태로 나라가 들끓고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말하자면 정신과 마음을 순화하는 문화의 비전없이 오로지 경제개발에만 매달려 왔기 때문에 일어나는 필연적 결과라 할 것이다. 이제 삶의 질이 경제우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자성해야 한다. 올해를 문화유산의 해로 정한 것은 지금까지 이끌어온 경제개발 우선에서 21세기를 대비한 문화우선주의로 그 발상을 전환할 때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통일에 대비해서도, 또한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서도 이제 우리의 문화유산은 보존의 차원을 넘어 환경보존과 함께 경제개발에 밀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야 문화유산을 진실로 사랑하고 아끼는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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