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칼라 힐스’는 25년 후에나?/경제부처 5급이상중 여성 1%미만/그나마 정책성 지원 탓 최근 늘어/금융계는 대리급이상 증가 불구 임원급 아직 없어 여전히 높은 벽/회계사 등 시험통한 분야선 약진우리나라에서 여성경제인이 성장하는 데 가장 기여한 사람은 칼라 힐스 전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일 것이다. 94, 95년에 그와 협상을 하며 여성경제통을 키우자는 논의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95년 12월에 일반행정직 사무관 5명이 경제부처에 배치됐고 5급이상 관리직에서 금녀의 성이었던 통상산업부에 처음으로 여성사무관 3명이 자리잡았다.
이 추세대로라면 한국판 칼라 힐스는 언제쯤 등장할까. 대답은 「25년쯤뒤」이다. 5급 공무원이 차관이 되려면 20∼23년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미국 말레이지아 중국 등의 통상담당 장관이 여성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여성경제관리는 세계에 유례가 드물정도로 지위가 낮고 차지하는 비율도 적다.
95년말 현재(일부는 97년 2월) 「경제부처」의 5급이상 공무원수는 3,555명. 그중 불과 22명(0.62%)이 여성이다.
청단위도 마찬가지이다. 5급이상 일반직 공무원 1,675명 가운데 여자는 20명으로 1.19%. 전산직 비율이 높은 통계청을 제외하면 1,566명 가운데 5명(0.32%) 뿐이다. 전체 일반직공무원 가운데 여성이 18.1%, 5급이상 여성비율이 2.3%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떨어진다.
이 여성소외가 차별의 결과만은 아니다. 경제부처 관리직으로 안착시켜주는 행정고시 재경직에 합격한 여성이 95년까지 전무했던 것이다. 96년에야 재경직 92명 가운데 3명의 여성이 합격했다. 이 중 2명은 공무원 여성채용목표비율 10%를 맞추기 위해 추가합격되었다.
경제부처에서도 핵심으로 꼽히는 재정경제원과 통상산업부 여성관리는 현재 8명으로 모두 5급 사무관이다. 이중 4명이 행정고시로, 3명이 7급에서 승진하여, 1명은 전문직 사무관특채에 합격하여 현재 지위에 이르렀다.
20∼30대 여성 사무관들은 정부의 여성 유치책에 혜택을 입어 여성차별을 실감하지 않지만 이보다 앞선 세대들은 『유리벽이 여성승진을 막고있다』고 말한다. 금융기관여성책임자회 회장인 외환은행 김효정(58·2급·전 불광동지점장) 조사역은 『여성대리만 5명뿐이던 20년전에 비해 지금은 대리급이상이 1,500명정도로 금융기관 책임자의 3%정도를 차지한다. 그러나 은행장은 물론, 500명 정도인 금융계 임원중 여성은 없다』고 지적한다. 금융계는 경제영역에서 여성의 진출이 가장 빠르고 활발한 곳. 그러나 여행원과 행원의 차별이 80년대 중반에 없어졌을 정도로 남녀평등은 쉽지 않았다.
금융기관여성책임자회가 지난해 3월에 조사한 바로는 6대 시중은행의 책임자 남녀비율은 1급이 219명대 1명, 2급이 400대 6, 3급이 540대 49, 4급이 1,880대 563명으로 납작한 삼각형이다. 96년에 1급이 3명정도 늘어났다. 4급까지 시험만으로 승진할 수 있는 반면 3급부터는 시험 고과 연수성적이 함께 반영된다. 금융노련 김영주 여성국장은 『남성에게 연수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고과는 주로 남성인 부서장이 정한다는 점에서 차별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차별에도 불구하고 여성경제전문가는 증가추세이다. 특히 자격시험이 좌우하는 분야에서 약진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것이 공인회계사. 94년 합격자 285명중 여성은 18명을 차지하더니 95년에는 282명중 31명, 96년에는 351명중 36명으로 10%를 넘어섰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등록된 공인회계사 3,872명 가운데 여성은 84명으로 불과 2.17%. 여성공인회계사회는 전체 여성합격자수를 151명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절반정도는 교수로 전직했거나 주부로 일을 놓고 있다. 여성공인회계사회 노석미(39) 회장은 『대형회계법인이 남성을 선호하면서 80년대까지 이런 현상이 심했다』며 『세미나와 연수를 통해 여성공인회계사의 중도탈락을 막겠다』고 다짐했다.
◎공인회계사 문태연씨/주부로 만학의 길 91년 수석합격/“남자들보다 탁월해야 살아남아”
경제계의 「사법고시」로 불리는 공인회계사 시험에는 여성이 4번 수석합격을 차지했다. 75, 88, 91, 94년이 바로 그런 해였다.
91년에 수석합격을 한 문태연(33)씨는 아들 하나를 둔 기혼이면서 서울여상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됐었다.
『83년 서울여상을 졸업하고 한국화약그룹에 입사했다. 인사팀에서 4년동안 열심히 일을 했지만 여상출신이 맡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해서 전문직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문씨는 말한다.
처음 문씨가 생각한 전문직은 교사. 그러나 교대 특차시험에 떨어지면서 직업을 구하기 쉬운 경제, 경영계통으로 방향을 바꿨다. 결국 87년 홍익대 경영학과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4년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려고 학과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공인회계사 시험도 준비했다. 지금의 남편은 바로 그 고시반에서 만난 과 선배. 2학년 때인 88년에 결혼을 했고 89년에는 아들을 낳았다.
문씨는 『결혼이 출산과 더불어 일년정도는 공부를 중단하게 만들지만 정신적인 안정감과 「주부는 전문직이라야 살아남는다」는 절박감을 주어 정신력을 높여준다』고 말한다.
그가 수석합격자라고 하여 공인회계사로서 받은 혜택은 공식적으로는 전혀 없다. 다만 『여성을 꺼리는 대형회계법인이 자식까지 있는 주부를 쉽게 받아준 것은 수석을 했기 때문일 것』으로 풀이하는 문씨는 『아직은 여성이 남자보다 탁월해야 살아남는다』고 평가한다. 공인회계사는 정부가 인정하는 대형회계법인에서 2년간 일을 해야 실질적인 회계사 자격을 얻는다. 문씨는 94년부터 산본에서 문태연회계사무소를 열고 있다.<서화숙 기자>서화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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