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가난/사회적 편견과 무관심에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했던 그들/낮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지친몸 등교/졸음 쫓으며 배우는 야학생들 그리고 아무 대가없이 가르치는 교사/그 열기는 어느 학교보다 뜨겁다/힘들고 피곤해도 결석없고 검정고시에도 보란듯이 합격/그곳은 꿈과 희망 가득찬 ‘사랑의 교실’『정말 학교에 다니고 싶었습니다. 공부가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몰라요. 문구점에서 필통을 고르고 공책을 살 때의 행복을 아무도 모를 거예요』
장애와 가난, 사회적 편견과 무관심 때문에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장애인들이 꿈과 희망을 가꿔 나가는 눈물겨운 현장이 있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 정립회관 구관 3층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노들야학」.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장애인들이 향학의 등불을 밝히는 배움의 전당이다.
저녁 6시20분께 노들야학 교실앞 콘크리트 복도. 휠체어나 목발에 의지한 장애인 20여명이 1교시 수업에 늦지 않을까 땀을 뻘뻘 흘리며 「등교」하고 있었다. 교실옆 2평 남짓한 교무실에서는 대학생 10여명이 수업 준비로 바빴다.
40대 중반의 지체장애 「여학생」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깍듯이 인사를 건넨다. 어깨에는 책가방으로 보이는 큼지막한 핸드백이 걸려 있다. 『낮에 일하시느라 피곤하실텐데 나와 주셨군요』 20대 초반의 교사는 이 학생의 차가운 손을 꼭 잡는다. 정규 학력을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사제간의 정은 여느 학교보다 두터워 보였다.
노들야학이 문을 연 것은 93년 8월. 전국장애인 한가족협회가 신체장애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근로 장애인에게 늦게나마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뜻에서 힘을 모았다. 교훈은 「밑불이 되고 불씨가 되자」로 정했다. 현재 재학생은 중검반(청솔반) 2명, 고검반(불수레반) 12명, 대검반(한소리반) 8명 등 모두 26명. 이중 4명은 휴학중이다. 학생은 대부분 정립회관 안에 있는 정립전자에 근무하는 20∼40대의 장애인 생산직 근로자들이다.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모두 23명. 신임교사 13명은 현재 2개월 과정의 훈련을 받고 있다. 교사 가운데 박경석(37·숭실대 대학원 2년) 유영근(32·건국대 법학 4년) 박찬호(27·삼육대 사회복지 4년)씨 등 3명은 자신도 지체장애인이다.
『보시다시피 교사와 학생의 열기는 뜨거워요. 하지만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선 교사모집이 어려운데다 오래 머물지 않아요. 예전처럼 열정을 가진 사람도 드물고요. 학생 입장에서는 등·하교 자체가 어렵습니다. 겨울철에는 더 심하죠. 그래도 결석하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94년 8월부터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석씨는 『「나도 공부할 수 없느냐」고 문의하는 장애인은 많지만 교실이 좁은데다 그들의 등·하교를 도와 줄 스쿨버스가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지난해 대입검정고시에 응시한 야학생 4명이 전원 합격했어요. 개교이래 첫 경사였습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자는 한명도 안 나왔어요. 솔직히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처지이니 대학진학이 쉽겠어요? 형제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으면 저도 대학에 다닐 수 없었죠』
저녁 7시30분 청솔반 국어시간. 뇌성마비 장애 1급인 장인홍(33·서울 광진구 중곡동)씨 등 2명이 교사 김준형(30·숭실대 철학과졸)씨의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반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국어와 산수. 볼펜을 힘겹게 잡고 있는 장씨에게 『재미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힘겹게 무어라고 대답을 하는 듯 했지만 쉽사리 알아듣기 어려웠다. 초등학교 문앞에도 못 가봤다는 장씨. 「나도 이제 글을 쓸 수 있다」고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써 보였다.
지난해 8월부터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씨는 『교육여건은 열악하지만 학생들의 열의는 정규학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수업을 시작할 때 우스갯 소리를 하면 빨리 수업하자고 재촉한다』고 말했다. 그는 『온종일 공장일을 하다보니 내색은 않지만 피곤해 보이는 학생들이 많아 가급적 숙제를 적게 내준다』며 『수업도중 학생들이 졸음을 이기지 못해 5분동안 함께 눈을 붙인 적도 있다』고 안쓰러워 했다.
소아마비 장애 1급인 고정숙(43·여)씨는 이 야학의 최고령 학생. 90년 정립전자에 입사한 그는 94년 8월 청솔반을 거쳐 현재 불수레반에 속해 있다.
『일을 마치고 기숙사에 가면 녹초가 되지요. 푹 쉬고 싶은 생각 뿐이지만 아무런 대가없이 우리들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들 얼굴이 떠올라 도저히 그럴 수 없어요』
정규 학교교육은 전혀 받지 못하고 혼자서 기초한글을 깨쳤다는 그는 『야학에 다니기 전에는 동사무소 가는 것조차 겁났는데 한글과 영어를 배운 덕분에 신문 보는 재미가 그만이다』고 활짝 웃었다.
퇴임교사 신승애(23·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졸)씨는 개교 당시의 어려움을 이렇게 전했다. 『돼지머리 올려놓고 축문을 태워 날려 보내며 노들야학의 탄생을 자축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합니다. 처음에는 교실이 없어서 정립회관내 탁구장을 빌려 칸막이를 한 채 수업을 했어요. 보충수업을 하려면 열쇠를 빌리느라 수위 아저씨를 찾아 헤매야 했죠. 교무실이 없어 교사들이 교실 밖에서 추위에 떨며 서성거리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퇴근하기도 했습니다』
개교때부터 지난해 2월까지 교사로 활동한 그는 『취업준비를 위해서 그만 두기는 했지만 이곳을 잊지 못해 이따금 놀러오곤 한다』며 『「네게 무슨 이득이 있느냐」고 친구들이 말릴 때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 놓았다.
교사들의 주장은 한결같았다. 『장애인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교육문제입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학교가 있긴 하지만 턱없이 모자라죠. 국내 장애인 가운데 50% 이상이 초등교육조차 받지 못했어요. 장애인도 국민입니다. 당연히 교육받을 권리가 있죠. 정부와 사회의 인식변화가 절실해요. 일반학교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특수반을 운영해야 합니다』<김성호 기자>김성호>
◎정태연·박찬숙 부부/“우리는 야학 커플”/야학교사로 첫 만남/남편은 ‘대안교육 이론가’ 아내는 ‘현장 교사’
1월26일 경남 진주에서 결혼식을 올린 정태연(25)·박찬숙(25)씨는 야학에서 만나 평생 야학을 지켜나갈 「야학 커플」이다. 둘은 배낭에 신혼짐 외에 야학 교과서를 꾸려넣고 남해안을 횡단하는 것으로 신혼여행을 대신했다.
두사람은 93년 경기 의왕시 성광야학에서 처음 만났다. 지난달 25일 성균관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정씨는 당시 군에 갔다와 복학하면서 보람있는 일을 해보려는 생각에 이 야학을 찾았다. 그때만해도 성광야학은 중·고등학교에 다니지 못한 인근 공단 청소년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배움의 공간이었다.
전북 전주출신으로 섬유공장에 다니던 박씨도 그런 청소년 가운데 하나였다. 고향의 야학에서 닦은 실력으로 대입 검정고시를 마친 것이 최종학력이어서 교사와 학생 어느 쪽에도 끼기가 어정쩡했지만 야학교사 모집공고를 보고 「운명처럼」 성광야학을 찾았다.
두사람은 이렇게 우연히 찾은 야학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았다. 『93년 한해동안 야학에 대해, 또 인생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때 서로를 이해하게 된 거죠. 그리고 평생 서로 도우며 우리자리를 지켜 나가기로 약속했습니다. 부모님도 이해하시고 흔쾌히 결혼을 허락해 주셨지요』
정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수원에서 학원강사를 하느라 수업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매주 회의에 참가해 야학운영에 대한 조언을 하고 학생들의 진로상담도 해 주고 있다. 또 낮에 시간이 날 때면 아내의 수업준비를 돕고 야학의 현안에 대해 부부가 몇시간씩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현재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재학하면서 국어를 가르치는 박씨는 지난해 교무선생을 지낸 후 지금은 평교사로 돌아 와 수업에 전념하고 있다.
요즘 두사람은 그동안 소홀했던 서로의 건강에 신경을 쓰면서 어느 때보다도 큰 사랑의 기쁨을 느낀다. 학생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밤을 지새우는 경우가 많아 결혼전에는 그런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두사람의 장래 계획 역시 야학과 뗄래야 뗄 수 없다. 『남편은 야학 등 대안교육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론가로, 저는 현장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지식을 알리는 전달자로 살아갈 거예요』 박씨의 다부진 소망이다.<이상연 기자>이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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