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바둑 굳이 비유하면 된장보다는 고추장”/젊어서는 실리 나이 들어가며 두터움 선호/대국 스트레스는 승부가 있는 게임으로 풀어/이창호 9단 가장 어려운 상대… 반반 승부면 다행서울 종로구 관철동 옛 한국기원 대국실에서 마주대한 서봉수(44) 9단의 얼굴에는 잔잔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지난달 23일 중국 베이징(북경)의 제5회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경이의 9연승을 기록, 한국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는 기쁨의 여운이 그 웃음에 배어 있다. 「순국산 된장바둑」으로 불리는 그는 일본유학을 거치지 않은 국내파 기사의 우상이다. 이번 진로배에서 서9단은 기로 뭉친 된장바둑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기의 바둑」앞에 일본과 중국의 내로라하는 정상급 기사들은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고 베이징 승전보는 총체적 국난으로 그늘이 드리워진 국민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서9단을 만나 인생관과 바둑관을 들어보았다.<편집자 주>편집자>
―축하합니다. 제5회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9연승의 대기록을 세웠는데 소감을 말씀해주시지요.
『반이상이 역전승이었던 것 같습니다. 운도 많이 따랐고 부담없이 두어서 기대이상의 성적을 올렸다고 생각합니다』(지난해 6,200여만원의 수입을 올린 서9단은 이번 진로배의 우승주역으로 1억4,200여만원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가장 어려웠던 상대는 누구였습니까.
『제4국인 일본의 히코사카 나오토(언판직인) 9단과의 일전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90%이상 진 상황에서 상대가 실수하는 바람에 승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상대인 마샤오춘(마효춘) 9단은 역대전적에서 3승1패로 앞서서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죠』
―유일한 국가대항전인 진로배가 채택하고 있는 「넉다운방식의 연승전」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가 많습니다.
『한·중·일 3국에서 5명씩의 대표기사가 출전, 다섯명의 기사가 질때까지 상대기사를 바꾸어가며 두는 방식으로 최고 10연승까지 가능합니다』
―세계바둑계에서 자신의 랭킹을 평가한다면. 또 가장 어려운 상대와 좋아하는 기사는 누구입니까.
『성적이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매년 결과가 나오니까 성적을 보고 자신도 짐작하고 남들도 평가하겠지요. 가장 어려운 상대는 세계 최강인 이창호 9단이고 가장 좋아하는 기사는 바둑을 잘 두는 기사죠. 왜냐하면 내가 모르는 수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9단의 바둑을 흔히 「된장바둑」 「기의 바둑」이라고 하는데.
『편하게 받아들입니다. 국내파라고 붙여진 별명같은데 굳이 바둑을 음식에 비유한다면 된장과는 안어울리죠. 치열한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바둑을 어떻게 구수한 된장에 비유할 수 있습니까. 혹 고추장이라면 모를까』
―자신의 기풍과 장단점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꾸준히 공부하는 과정입니다. 젊어서는 실리를 추구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두터움쪽을 선호하게 됐지요. 실을 쌓다보면 두터움은 자연히 생기게 마련입니다. 일류는 세, 실을 다 잘해야지요』
―70∼80년대 한국바둑을 분할하며 혈투를 벌였던 영원한 라이벌 조훈현 9단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동갑내기로 알고 있는데요.
『조훈현 9단은 천하가 다아는 천재아닙니까. 젊었을 때는 대국에서 지면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승부에 초연해지더군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1인자인 이창호 9단에 대해 얘기좀 해주시지요.
『창호는 강합니다. 특히 계산의 천재죠. 지금 당장은 이9단을 누를 기사는 없을 것 같고 반반 승부를 낸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공식적인 승패 기록은. 그동안 타이틀은 몇개나 획득했습니까.
『94년말 국내 최초로 1,000승을 달성했습니다. 현재 1,078승 583패 3무를 기록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딴 타이틀 수는 30여개 정도 될 겁니다』
―동양증권배 우승(90년)에 이어 93년 응씨배 우승으로 「바둑황제」 칭호를 받았지만 그 뒤 성적이 부진했습니다. 이번 진로배에서도 나타났듯이 국내보다는 국제기전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국내에는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등 세계 최강자가 다 있는데 당연한 것 아닙니까. 승부세계에서는 1, 2인자가 타이틀과 도전권을 챙깁니다. 그러면 어제의 1, 2등은 당연히 뒤로 밀리게 됩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가족관계와 그동안 바둑공부를 해 온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가족은 아내와 1남1녀가 있습니다. 바둑은 1급을 두었던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1년만에 1급이 된 뒤에는 강자들을 만나기 위해 기원을 전전하며 실전바둑을 익혔죠』(그래서 그런지 서9단은 유독 싸움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승없이 혼자 바둑을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제2의 서봉수를 꿈꾸는 꿈나무에게 한마디 조언을 한다면.
『바둑이 적성에 안맞는 어린이들은 대성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정도 재주가 있으면 꾸준히 공부하는 길 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일찍 시작하면 할 수록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평소 건강관리나 바둑공부는 어떻게 하십니까.
『어떤 운동이든지 시작해야겠습니다. 실전이 최상의 공부지요. 그외에 다른 사람의 대국을 관전하거나 집에서 기보를 복기합니다. 한중일 3국 기사들의 기보를 일일이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재의 한국바둑은 세계 최정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차 세계 바둑계의 판도와 우리 바둑을 전망해주시지요.
『일본은 젊은이들이 기피,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다고 보지만 중국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바둑인구도 두터워 가능성이 많습니다. 한국바둑은 당분간 이창호를 누를만한 천재가 나올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국민의 사랑을 듬뿍받고 있을 때 꿈나무 양성을 비롯한 지속적인 발전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대비가 소홀할 경우 중국에 추월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대국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합니까.
『승부가 있는 게임을 즐기고 가끔 노래방에 가는 정도입니다. 간혹 술을 마시는데 주량은 소주 반병이나 맥주 한병정도입니다. 담배는 한때 심장이 안좋아 4개월 가량 끊었다가 최근 다시 시작해 하루 한갑정도 피웁니다』
―바둑공부를 위한 일본유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한국이 제일 강하고 세계최강자들이 몰려있는데 일본에 갈 이유가 없죠. 오히려 일본에서 건너와야 할 판입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대국이나 타이틀은.
『아무래도 생애 첫 타이틀인 명인전 획득 당시의 조남철 8단과의 대국이겠지요. 또 92년 응씨배 4강전에서 조치훈 9단에 1패 뒤 2연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한 것과 오다케 히데오(대죽영웅)에게 역전 우승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서9단은 72년 19세 때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명인전에서 당시로서는 최연소 우승,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앞으로 계획을 들려주십시오. 혹시 내제자를 둘 생각은 없습니까.
『특별한 계획은 없고 꾸준한 성적을 거두는 것이 희망입니다. 대국내용이 훌륭한 기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를 토대로 기보연구를 할 계획입니다』<여동은 문화부 기자>여동은>
□약력
▲53년 대전 출생 ▲69년 한중일 고교생바둑대회 우승 ▲70년 제32회 입단대회서 프로 입단 ▲71년 배문고 졸업, 2단 승단 ▲72년 최저단(2단), 최연소(19세)로 제4기 명인전 획득 ▲72∼76년 명인전 5연패 ▲86년 11월 9단(입신)승단 ▲93년 제2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 우승 ▲97년 2월 제5회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 9연승 신기록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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