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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대신 주부·노인들 ‘면학의 열기’/야학교실 ‘신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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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대신 주부·노인들 ‘면학의 열기’/야학교실 ‘신풍속도’

입력
1997.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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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향상 근로자 발길 ‘뚝’/전국 158곳… 점차 감소추세/컴퓨터 강좌·책방운영 등 지역문화공간 속속 탈바꿈시대가 변하면 문화도 바뀐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운동권 대학생에게 이념의 실천공간으로 각광을 받았던 야학도 예외가 아니다.

90년대 야학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학생과 교사 모두가 줄고 있는 것. 또 학생들 가운데 10∼20대 근로청소년이 드물어진 대신 주부 노인 직장인 등 일반인들이 많아졌다. 특히 공부할 기회를 놓친 30∼50대의 주부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검정고시에 대비한 기초학과 공부 외에 컴퓨터 외국어 풍물 등 교양강좌로 교육내용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서울 연동야학 교사 김웅(29)씨. 『경제 발전에 따른 절대임금의 상승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교육기회가 대폭 확대됐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진학을 못하는 불우청소년이 아직도 있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줄어 들었다고 봐야죠. 또 신세대 청소년들의 공부에 대한 열의도 많이 떨어진 게 사실입니다』

서울 동부교육정보센터의 김기범(31) 대표는 『섬유 전자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공장이 산업합리화 조치 등으로 감소하거나 수도권 외곽지역으로 옮겨간 것도 야학의 풍속도를 바꾼 한 원인』이라며 『인근의 소규모 공장이 잇달아 자취를 감추면서 10대, 20대 초반 생산직 근로자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설명했다. 김대표는 『재학생 50여명이 모두 주부』라며 『지난해 5월 1년 과정의 학생 모집공고를 낸 뒤 신청자가 100% 주부여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서울 중부야학 교사 김은복(24)씨는 『학생과 교사 지망자가 급격히 감소해 지난해 서울지역에서만 10여개의 야학이 문을 닫았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2∼3개 야학이 통합해 색다르게 운영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한겨레야학과 청송야학은 지난해 4월 「새날을 여는 사회교육센터」라는 이름으로 살림을 합쳤다. 이소영(35·여) 대표는 『시대가 달라진 만큼 야학의 형태도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통합했다』며 『정통 야학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지역주민에게 도움이 될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센터는 지난해 여름 맞벌이 부부를 위해 시범운영한 「지역아동 공부방」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판단, 4월부터는 상시운영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서울 태청야학은 지난해부터 학교측이 일방적으로 강의과목을 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이 듣고 싶은 강좌를 선택하는 대학식 수강신청제를 도입해 눈길을 끌고 있다. 교사 박상일(32)씨는 『개인의 기호와 필요에 맞게 교육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야학내에 책방을 개설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동부교육정보센터는 15평 정도의 「도서대여점」을 마련, 지역주민에게 책이나 학습용 테이프를 무료 또는 싼값에 빌려주고 있다. 많은 야학은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충족시켜 주기위해 컴퓨터 연극 영화 성교육 역사 노동법 등을 주제로 한 특강을 실시하고 있다.

문화체육부가 청소년육성기금을 지원하기 위해 파악하고 있는 야학은 서울 32개, 경기 19개 등 전국적으로 158개.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야학까지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다.<김성호 기자>

◎‘주부들 못배운 한 푸세요’/한글·검정고시반 등 찾는 발길 늘어/동부교육정보센터·종로주부학교·양원주부학교·한림주부중고

서울 광진구 자양동 동부교육정보센터(02―465―6459). 배움에 목마른 지역 주부들을 위해 한글반을 비롯, 중등 검정고시 야학과정을 개설해 놓은 「주부전문야학」이다. 인근지역에서는 물론 멀리 수서동과 아현동의 주부까지 『한글을 깨우치겠다』는 일념으로 이곳을 찾고 있다.

낮 1시와 저녁 6시30분에 한글반 강좌가 초·중·고급 과정으로 나뉘어 열리고 검정고시를 위한 중등교과과정은 저녁 8시에 시작된다. 교사진은 대표 김기범(31)씨를 포함해 11명. 김씨를 빼고는 모두 자원봉사자로 월 2만5,000원의 회비를 내가며 강의를 하고 있다.

취재팀이 찾아갔을 때 저녁 한글반 주부 14명이 김씨의 지도로 받아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40대 초반부터 70대 후반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은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거부감을 나타냈고 몇몇은 아예 교실 밖으로 「대피」했다. 김씨는 『절반 이상이 부끄러움 때문에 가족에게 말도 안하고 나온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사진촬영과 함께 받아쓰기가 시작되자 밖에 피해 있던 주부들이 『큰일났네』라고 화들짝 놀라며 일제히 교실로 뛰어 들었다. 주부 김모(45·광진구 자양동)씨는 사진찍히기는 싫지만 배움에서는 뒤처질 수 없지 않느냐고 이유를 설명했다. 『젊은이들처럼 선생님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해 가뜩이나 죄송한데 남들 다 아는걸 다시 물어볼 수는 없잖아요』 68년 동부야학으로 시작해 95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바뀐 것은 이름뿐이 아니다. 대학생 등 자원봉사자들의 야학에 대한 관심이 예전같지 않고 무엇보다 야학을 찾는 청소년들이 거의 없어졌다. 『주부 등 지역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야학이 가야할 길』이라는 게 김씨의 결론이었다.

이곳처럼 야학 형태는 아니지만 주부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 몇군데 더 있다. 서울 혜화동 종로주부학교(02―741―7618)는 아침과 낮시간을 이용해 한글, 중·고교과정의 검정고시 교육을 한다. 중학과정 3개반에 150명, 고교과정 2개반에 80명의 주부들이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1년정도 걸리는 한글반은 인원 제한이 없다.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주부학교(02―704―7402)에 1년과정의 중·고등 검정고시 강좌가 개설돼 있고, 송파구 장지동 한림주부중고등학교(02―400―6201)의 3년 과정을 이수하면 정식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이상연 기자>

◎야학생 출신 야학교사 김문주씨/낮엔 재단사 밤엔 교사로/“받기만 하던 사랑 나눠주는 행복있어요”

서울 신림7동 남부야학 교사 김문주(22)씨의 정규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90년 중학과정 학생으로 남부야학과 처음 인연을 맺은 그는 지금은 이곳의 국사 선생님이다.

서울 독산동 봉제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는 그는 일이 끝나면 저녁 8시까지 야학으로 달려 온다. 낮시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 들지만 9시부터 3, 4교시를 이어 맡아야 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수업준비를 해야 한다. 1주일에 3일은 강의를 하고 토요일에는 야학운영 전반을 점검하는 교사회의에 참석해야 해 매주 4일밤은 휴식을 잊고 살아야 한다.

88년 경기 용인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그는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초등학교 1학년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기억에도 없고요. 친척집을 전전하며 겨우 학교를 마치자 빨리 돈을 벌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상경후 서울 봉천동에 있는 봉제공장에 취업해 재단일을 배워 나갔다. 한달 20만원의 박봉에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해야 했지만 공장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해 가며 월급 전액을 저축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던 공부에의 미련이 고개를 들었다. 『기숙사에 남부야학 다니는 친구가 있었어요. 저녁마다 가방을 싸서 야학에 나가고 밤늦게 들어와서도 책을 놓지않던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왜 그렇게 부러웠던지…. 어느날 함께 야학에 나가자는 친구의 권유에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중학과정 1년만에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남부야학에 고교과정이 없는데다 다른 사정까지 겹쳐 2년동안 교과서를 놓아야 했다. 그리고는 서울 아현동에 있는 동서야학을 찾아 군대에 갈 때까지 공부를 계속했다.

남부야학을 다시 찾은 것은 지난해 3월. 모교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야학에 14명의 선생님이 있는데 대부분이 대학생이거나 대졸이었어요. 그런데 고교과정도 못마친 사람이 교사일을 맡았으니 처음에는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새벽 1시까지 다음날 강의할 내용을 정리하면 완전히 파김치가 된다. 그래도 그의 표정은 밝았다. 『야학은 저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준 곳입니다. 받기만 하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능력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열심히 공부해 가면서 이일을 계속할 겁니다』<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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