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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가 본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다시 읽는 한국문학: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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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가 본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다시 읽는 한국문학:13)

입력
1997.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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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이란 허구를 말하는 작가만의 특권에 매료/소설을 따분하게 여기던 내가 그 삶의 길로나는 소설 읽기가 한심해뵈는 시대에 대학을 다녔다. 소설은 기껏해야 신입생용 세미나 교재였거나 「역사의식 없는」 이들의 소일거리였던 시대. 사회과학 책으로 서가를 가득 채워야 마음이 뿌듯하던 시대 말이다. 그런 시대를 함께 살았던 한 친구가 조심스레 내게 건넸던 책이 「비명을 찾아서」였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때의 나는 그 친구를 경멸했었다. 너는 참 한가하구나.

그 책은 몇년동안 내 서가의 귀퉁이에 처박혀 있었다. 그러는 동안 임수경과 문익환 목사가 평양에 갔다 왔고, 소비에트가 붕괴했고, 명지대생 강경대가 죽었고 나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학교에 간다며 집을 나선 나는 하루 온종일 볼링을 쳤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에 15게임쯤 치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이 침침해지고 아무 것도 들 수 없을 정도로 손에 힘이 빠진다. 그렇게 돌아와 저녁 먹고 쓰러져 잠들곤 하던 어느날 아침, 「비명을 찾아서」를 집어들게 되었다. 무심히 서가를 바라다 보면 발광이라도 하듯 제 존재를 드러내는 책이 있다. 그 책이 그랬다. 그래서 그날 나는 볼링을 치는 대신 그 책을 읽었다. 재미있었다. 그랬다. 아주 재미있었다.

우선 이 소설은 발상부터가 독특했다. 이른바 「대체역사」소설이라 불릴 이 소설은,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했으나 죽지는 않고 부상만 했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지 않고, 조선과 만주국만을 식민지로 한 채, 내부 경영에 주력하여 미국과 소련 다음의 강대국이 된다. 우리 민족은 내선일체 정책에 의해 한글과 역사가 말살되어 주인공인 39살의 기노시다 히데요(목하영세)는 자신의 이름이 박영세인지도 모르고 살아간다는 그런 내용이다.

이 허무맹랑(?)한 소설을 덮고 나서 역사, 소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역사는 바뀌어지지 않는다. 이토 히로부미는 죽었으며 히로시마에는 원폭이 떨어졌다.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복거일은 거꾸로 생각했다. 만약? 이라는 가정에서 그는 출발했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가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해박한 인문적 지식과 언어학적 통찰, 소설적 재미를 얼기설기 엮어 이 소설이 한갓 재미난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소설가라는 삶에 매료되었다. 이론가도 정치가도 역사가도 할 수 없는 일. 오로지 소설가만이 할 수 있는 일. 허구를 구축하여 그 허구를 통해 현실에 대해 말하기. 허구를 통해 허구에 대해 말하기. 허구를 통해 현실을 허물기, 흔들어대기. 나는 복거일에게서 그런 삶의 가능성을 엿보았던 것이다.

여전히 나는 소설 읽기가 한심해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내게 책을 권했던 그 친구를 경멸하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소설은 소일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지만 소설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 소설은 하찮고 한심하게 존재하면서 어느날 문득 사람들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질 것이다. 당신의 삶은 과연 안전한가, 당신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현실이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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