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국민앞에 사과를 했을 때 그 사과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대통령이 실정을 자신의 책임이라고 했을 때 그 책임은 어떻게 지는 것인가. 지금 국민들은 이것이 궁금하다.한보사태로 한껏 치밀었던 국민들의 노여움이 대통령의 담화 하나로 단박에 수그러들었을까. 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두들 평상으로 돌아가 놓았던 일손들을 도로 잡기 시작했을까. 담화 후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봐서는 반드시 그런 것같지 않다.
대통령의 사과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해서, 또 사과가 전례없이 침통하고 진솔하다고 해서, 국민들의 동정심이 나라의 장래를 눈감을 만큼 얄팍한 것일 수 없다. 그 사과의 원인이 된 책임은 그것만으로 다 면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경의는 소홀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국민은 나라를 위한 그의 고뇌를 같이 괴로워하고 그의 심통을 같이 아파해야 한다. 대통령의 고독한 결단과 그 위험부담의 노심을 헤아려 주어야 하고 그의 불면과 초려를 격려하고 위로할 줄 알아야 한다. 언제나 꿋꿋하고 당당한 대통령을 국민은 원한다. 그런 대통령일 수 있게 자신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 것도 국민이다. 대통령을 일부러 궁지에 몰아넣어서도 안된다. 자칫하면 국민들 스스로 나라를 궁지에 몰아넣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나라가 언제까지나 수렁에 빠져 허덕이는 것을 원하는 국민은 없다. 함께 밀어올려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의 모든 것이 이해되고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 대통령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무단히 분노해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성적인 차원에서 분노를 쉽게 거두어들일 일도 아니다. 그리고 그 잘못이 깨어진 그릇일 때, 전혀 구제방법이 없는 파국일 때는 더 이상 추궁하기가 어렵겠지만, 뻔한 길을 두고 딴전을 피운다면 그냥 함께 주저앉고 말 일이 아닌 것이다.
한보사태의 수습방법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 의혹의 진상규명에 있다고 국민들은 외친다. 정부로서는 국민이 미진하게 생각할 때에는 어떻게든지 성에 차게 해주는 것이 의무다. 그런데도 사과만 하고 손을 털겠다는 자세면 그 사과가 진상을 덮는 커다란 보자기로 보여질 수도 있다.
이럴때 사과는 아무리 진심이더라도 신실해 보이지 않게 된다.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임을 막연한 조사로만 질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칫하면 오히려 둔사가 될 뿐이다. 도의적 책임만 말고 실질적으로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법적인 경우를 보자. 우리나라 헌법에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않게 되어 있다. 이때 행정상의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이 아니기는 하다. 대통령이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에는 국회가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대통령의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에 있어서의 과오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헌법상 대통령은 취임선서를 통해 국가를 보위하고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지며 또 헌법상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명기되어 있지만 선언적일 뿐이어서 구체적인 책임을 질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무한책임은 영원한 무책임이라야 하는가.
한보사태의 경우는 다르다. 대통령이 책임을 질 방법이 있다. 그것은 의혹의 진상을 캐는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특별검사제로 재수사를 하든지 국회의 국정조사특위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든지 해서 사과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것이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는 길이요 국가를 보위하는 길이요 그래서 국헌을 준수하는 길이다.<본사 논설고문>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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