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취임후 처음 나선 동아시아 순방에 돌발사건들이 겹쳐 뜻밖에 좋은 공부가 됐을 듯싶다.덩샤오핑(등소평) 사망에 북한 황장엽의 망명이 잇따랐고 한국에서는 한보사건이 막바지에 오르고 있었다. 올브라이트로서는 이 대형사건들이 내포한 정치적 의미를 그 현장에서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셈이다.
한일중 3국 방문에서 그는 그의 모국 체코와 미국의 차이 만큼이나 다른 분위기와 이질적 문화를 실감했을 것이다. 그의 방문패션이 스스로 그 차이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검은 코트와 테가 넓은 검은 모자 차림의 중국방문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흑색패션은 등의 죽음에 대한 조의였겠지만, 미국적 패션의 상징인 카우보이 모자는 좀 뜻밖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의 미국에 맞서는 유일한 강대국 중국에 미국의 힘을 과시하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한편으로는, 그가 히틀러와 스탈린의 박해로부터 살아남은 체코출생 유대인 난민이지만, 지금은 체코인도 유대인도 아닌, 세계를 제패한 미국인임을 보여주려 한 것 같기도 하다. 그 미국의 국무장관으로서 중국공산당의 독재와 인권유린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그는 그의 옷차림에 담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판문점 인근의 전방 미군부대를 방문한 그의 군복패션 모습의 사진은 화약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긴박감을 풍긴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꼽고 있는 한반도 군사대치 현장에서 그가 분단의 고통에 신음하는 한민족의 염원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만한 다행이 없겠다.
그는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해도 미국과 한국의 긴밀한 관계를 이간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로 한미공조를 다짐했다. 「북한의 정체와 약점을 알고 있으니 한국정부는 국내정치에 북한문제를 끌어들여 일을 꼬이게 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는 얘기처럼 들리기도 한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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