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없다. 「이야기꾼」이 없다.필부필녀의 삶을 관통하는 꿈틀거리는 역사 이야기도, 읽는 이의 폐부를 헉하고 찌르는 진정한 삶의 감동이 이 시대엔 없다. 오직 시류를 좇아가는 신변잡기성의 가벼운 트렌디 드라마나 어설픈 복고, 장르의 복제와 반복, 모방, 또는 이 모든 것을 혼합한 잡탕만이 있을 뿐이다.
이야기는 일상으로부터의 비상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날개와도 같다. 『근대문명은 산문적이기 때문에 개인의 시적·영적인 동경과 산문적 현실의 분열이야말로 소설의 전형적인 주제가 됐다』는 헤겔의 말은 갑갑한 현실에서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잊고자 하는 동시대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혼란하고 지난한 이 시대에 이야기의 존재가치는 더 커졌는 지도 모른다. 문학 영화 방송 연극 비디오 멀티미디어 등 다양한 문화는 더 재미있고, 더 감동적인 이야기에 목말라 한다.
이야기가 없음은 「대서사」를 거부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영향도 한몫 거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꾼들을 「이야기 불임증」 환자로 만든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전망의 실종에 따른 서사의 부재/‘이미지에 사로잡힌 문자’도 한몫
문학이란 것은 바로 이야기 그 자체다. 문학이 어쨌든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는 한에서는 문학에 이야기꾼이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문학에 이야기가 없어졌다, 다른 말로는 서사가 없어졌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왜일까?
『90년대 초의 경우 우리 문학에서 이야기의 부재―서사의 부재가 운위되었던 것은 전망의 사라짐이 그 원인이었다』고 문학평론가 장은수씨는 말한다. 이야기는 시작과 중간과 끝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현실적 전망(끝)이 안보이니 이야기 자체가 성립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전망이 투명하지 않은 시대에 이야기가 나올 수 없고, 작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한쪽은 내면으로 침잠해 버리거나, 한쪽은 주변의 세세한 잡사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세태소설로 흐르게 된다. 또 다른 모습으로는 최근 비판론이 대두된 윤대녕씨의 「은어」로 대표되는, 신비주의적 경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문자가 이미지에 사로잡혀버린 것도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요즘의 문학이 자신만의 고유한 도구인 문자로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나 방송드라마에 압도당해, 오히려 그들의 도구인 이미지로 이야기를 얽어나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쓰는 경우나, 영상에서 빌어온 이미지들을 현란하게 조합해 놓거나 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문제는 진정한 이야기 아닌 것이 상업주의나 사회 분위기만을 등에 업고 활개 치는 경우다. 그래서 『문학은 이야기이고 이야기 생산 체제이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문학」의 이름으로 대접받고 문학의 이름으로 평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나쁜 이야기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문학이며 그에 수반되는 싸움과 투쟁이 문학의 운명』이라는 도정일 경희대 교수는 『지금 누가 문학의 죽음을 말하는가?』고 묻고 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영화/‘먹고 살기 힘들다’ 작가 기피/감독이 연출·시나리오까지
한국의 영화 감독은 만능 재주꾼이다. 촬영, 기획, 시나리오까지 직접 해내야 한다. 신인들은 더 심하다. 물론 할리우드의 스필버그, 코폴라처럼 유능한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출하고 싶어 그런 경우도 있지만, 유능한 작가를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강제규(은행나무 침대)도, 양윤호(유리)도, 이창동(초록물고기)도, 장선우(나쁜 영화)도 직접 시나리오를 쓴다. 할 수만 있다면 감독이 직접 이처럼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한계가 있어 결국은 자신의 틀속에 갇혀 영화는 점점 작품성을 잃어간다.
때문에 한국영화에는 엄격한 의미의 기획이란 없다. 기획을 바탕으로 재주있는 작가를 찾아 시나리오를 만들고, 작품에 맞는 감독에게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작품을 만들 감독이 직접 생각해 만들어 놓은 시놉시스(개요)를 자본을 책임질 대기업에 보여주고 선택되길 기다릴 뿐이다.
한국 시나리오작가협회에 등록된 작가는 73명이지만 활동하는 작가는 10명도 안된다. 『한국영화의 낙후는 작가 부재에서 출발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다. 최근 조금씩 저변이 확대되는 것은 92년 설립된 한국 시나리오 작가 교육원이 배출한 신인들의 활동 덕이다.
「닥터 봉」의 육정원,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정대성, 「코르셋」의 최문희, 「깡패수업」의 박계옥, 「피아노 맨」의 허재호, 「용병이반」의 김대우 등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여기에 「장미빛 인생」 「축제」의 육상효, 「투캅스」의 김성홍 등 기존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모두 감독으로 데뷔했거나 데뷔를 준비중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시나리오 작가로만 도저히 살 수 없는 현실도 그 중의 하나이다. 주연배우 한명의 출연료가 전체 제작비의 15%(2억원)까지 육박하고 있지만 시나리오 작가료는 1%(1,000만∼ 1,500만원)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작가에게 시나리오만 쓰라고 강요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이대현 기자>이대현>
◎연극/직업 극작가 열손가락/‘실험보단 흥행’도 원인
『요즘 대학로에서 유행하는 자조적인 농담 좀 들어보세요. 대학로 연극의 3대 요소는 대관비, 인쇄비, 세트비라고 합니다. 극작료와 캐스팅비는 아예 언급이 없지요. 그만큼 작가를 우습게 안다는 얘기죠』(극작가 이상우씨)
현재 우리나라의 극작가수는 아예 파악조차 불가능하다. 직업 극작가들은 대략 열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이런 저런 이유야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돈문제다. 합의된 가격이 없다.
요즘 잘나가는 오은희씨는 데뷔 첫해에는 한 푼도 못 벌었고, 2년째 「리어왕」 각색료로 30만원이 전부였다. 3년째에는 문예진흥원에서 창작지원금을 받았는데 흥행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극단측이 이 돈의 절반을 가져갔다.
따라서 재능있는 극작가들은 형편이 나은 방송, 영화쪽으로 빠져나간다. 매년 신춘문예, 공모전 등을 통해 10여명 이상의 신진들이 배출되지만 현재 신춘문예 출신으로 현역 활동중인 사람은 조광화, 김윤미, 오은희 정도가 고작이다.
또 하나의 큰 이유는 참신한 실험과 높은 작품성보다는 흥행을 우선시하는 최근 풍조. 연극도 유행을 따라간다. 감각적이고 엇비슷한 작품들만 대량 양산하는 오늘날의 연극계. 영화보다 유구하고, 방송보다 깊다는 연극의 자존심은 적어도 희곡 부분에 있어서는 허풍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황동일 기자>황동일>
◎방송/트렌디 드라마 붐타고 여성작가 급증/감각적이고 경쾌한 ‘가벼움’만 판쳐
현재 방송극작가 협회 회원수는 600명이 넘는다. 이중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작가는 50명 남짓이다. 억대 작가 김수현씨를 정점으로 박정란, 서영명, 최연지, 주찬옥, 박진숙, 이금림 등 중진작가와 김정선, 이선미 등 30대 신진작가 등 여성작가의 비율이 현저히 높아졌다. 또 작가의 연령층이 젊어졌다는 점도 예전과 달라진 것이다.
「질투」 「마지막 승부」 「종합병원」 등 94년부터 불기 시작한 트렌디 드라마의 붐을 타고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여성작가들은 감각적이고, 경쾌한 대사, 빠른 호흡의 구성으로 시청자들을 파고 들었다. 이제는 시청자들의 취향까지 바꾸어 놓았다. 방송작가 C씨. 『시청자들의 취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시청률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데 인간의 본성이나 역사의 진리를 캐는 드라마를 쓰기란 어렵다』
한 남성작가는 『남성 PD들은 여성작가들이 여성의 심리를 잘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작가들 역시 스케일이 큰 시대극, 사회극 보다는 가정사, 개인사 중심의 이야기를 끌고 가려고 한다』 고 말한다.
문제는 늘어나는 여성작가의 수가 아니라 신진, 중견 할 것 없이 작가들이 한결같이 「가벼운」 드라마만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극작가 임충씨의 뒤를 잇는 선 굵은 사극 작가가 없는 것도 이같은 세태를 반영한다.
작가들이 주로 개인적 경험이나 신문, 잡지 보도에 의존한다는 방송개발원의 분석에 근거해 본다면, 경험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30대 초반의 여성 작가들에게 「큰 얘기」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여기에 시청률 만능 주의에 빠진 방송국은 큰 이야기 보다는 아기자기한 것을 요구한다.
시청률 높여줄 작가만을 뽑아 쓰겠다는 방송국의 입장이 달라지지 않는 한, 작가들이 굵직한 이야기에 매달릴 수 있는 경제적 토양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이야기꾼」이기를 포기한 작가들의 자성이 따르지 않는 한, 방송에서 「굵직한 이야기」를 더이상 기대하기는 힘들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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