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순결은 여자에게 무엇인가?/성폭행당한 여인의 일생통해/당한자 붕괴와 방관자 몰이해/사회의 허위의식 등 해부지금 우리사회의 성은 어떤 모습일까? 문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반면, 「무슨 고리타분한 소리냐」는 반항도 만만치 않다. 자유로운 섹스를 주장하는 젊은이들은 많지만, 혼인의 순결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다. 한마디로 혼란스럽다.
범위를 좁혀서 한국의 여성에게 있어 순결이란 무엇인가? 남자인 당신은 순결한 아내를 원하는가? 당사자냐 아니냐에 따라 극과 극의 대답이 기대될 뿐이다. 이야기의 공통점이 있다면 예나 지금이나 여성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최근 완간된 한수산씨의 장편소설 「모든 것에 이별을」(1, 2권 삼진기획간)은 가슴 섬뜩한 성범죄에서부터 출발한다. 여성의 성과 순결에 대한 사회의 허위의식을 성폭력 피해자의 복수극을 통해 고발하고 해부했다.
소설의 주장은 교훈적이고 묵직하지만 형식과 문체는 날렵하다. 한씨의 글은 감성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이 작품에 격정과 과감한 에로티시즘을 보탰다. 속도가 빠르고 흥미진진한 한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하다. 형식과 등장인물에서 상투적인 방법을 배제한 점도 신선하다. 복수극의 단골 손님인 경찰과 기자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학 강사인 창우는 두권의 노트를 담은 소포를 받는다. 세월이 흘렀지만 뚜렷하게 가슴에 남아있는 옛 여인 혜련의 일기이다. 창우는 편지 형식으로 쓴 일기 속에서 완벽하게 망가져버린 한 여자의 삶을 읽으며 진저리친다.
열아홉살의 여자가 세남자에게 윤간을 당한다. 가해자는 번드르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쾌락만을 탐닉하는 망나니 같은 사내들이다. 여자는 죄책감으로 사랑하는 남자 창우곁을 떠나 미래의 삶을 포기한다. 사실을 안 어머니가 충격으로 병을 얻어 숨지자 그는 복수를 결심한다. 술집 호스티스, 유부남의 애첩 등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그는 복수를 실행한다. 방탕과 죄악으로 젊음을 보내고도 유력한 집안 덕택에 호사를 유지하던 세남자는 차례차례 죽어간다. 복수를 마친 혜련은 그가 꿈꾸던 안식처로 날아간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당한 자의 철저한 붕괴와 방관자의 몰이해를 극명하게 표현했다. 혜련의 분노와 상심은 까만 절망이다. 「죽어서 가는 곳은 조그만 오동나무 상자 안이랍니다. 난 지금 내 뼛가루가 든 오동나무 상자 하나를 들고 떠나가듯 그렇게 떠나려고 합니다. 내가 죽어도 내 불타고 남은 재를 뿌려줄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우의 새 여자친구 경미는 다르다. 「복수는 이해해. 그렇지만 죽인다고 해서 회복이 돼, 보상이 돼? 당했으면 당한 거지. 그렇지만 그게 뭐 그렇게 목숨처럼 소중하다는 거지?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니잖아」.
한수산씨는 이 작품을 80년대 중반부터 쓰기 시작했다. 1권을 내고 나서 필화사건의 후유증으로 일본에 가는 등 우여곡절 끝에 10여년 만에 완성했다. 그 긴 세월 내내 그는 성에 있어서 피해자인 여성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살아온 셈이다. 한씨는 딸을 극진히 사랑하는 아버지로 문단에 이름이 나있다. 그래서 그에게 이 문제는 당연하고 영원한 화두일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이 인간에게, 여성에게, 한국여자에게…. 그렇게 좁혀들어가 미혼의 젊은 우리 여성에게 성이란 무엇이며 순결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일종의 소유욕과 보호본능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거기에서 순결은 얼마나 큰 무게와 깊이를 가지는 것인지 모두 함께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권오현 기자>권오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