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사과 담화후 김영삼 대통령이 처음 단행한 청와대비서진 인사는 우선 외형상으로는 지극히 소규모다. 비서실장과 12명의 수석비서관중 실장과 정무·경제·총무 등 3명의 수석만을 교체한 담화에서 대통령이 공언한 「인사개혁」과는 규모면에서 부합되지 않는다. 국민은 그동안 누적된 잇단 실정과 엄청난 한보비리사건의 파장을 감안할 때 대폭 수술 또는 적어도 반수이상은 교체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몇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우선 한보사건책임과 비서실 내의 갈등과 불협화 등에 대한 인책과 관련, 비서실의 핵심 트리오인 김광일 비서실장과 이원종 정무 이석채 경제수석 등, 이른바 가신과 실세 등을 교체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후임에 특정지역과 출신학교 등 연에 의하지 않은 인사들을 기용한 점도 눈길을 끌고 있다.
비서진은 한마디로 말해 대통령의 그림자다. 그래도 이승만·장면 정부 시절에는 비서진들이 큰 물의없이 성실히 보좌했다. 제3공화국 때부터 본격화한 비서실 기능은 실력자와 전문인들을 기용하면서 점차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행사하여 권부로 부상했다. 내각과 당위에 군림했던 것이다.
4년전 김영삼정부는 이른바 권위주의 청산을 내세웠고 청와대 비서진은 소리없는 보좌, 민주적인 비서실 기능을 선언했다. 그러나 가신·실세들과 전문가들의 혼합기용, 김대통령의 비밀주의와 개인적인 지시방식의 운용 등은 갖가지 부작용을 노출했다. 취임 2년도 못돼 비서실기능은 경직화하고 대북 및 경제정책의 혼선, 행정구역개편마찰, 그리고 느닷없는 21세기 신도시구상 발표 등은 국민에게 깊은 의구심을 안겨줬던 것이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힘센 손」의 인사·운영의 간여 등으로 결국 비서실·내각·당이 눈치보기속에 따로따로 움직이는 기현상마저 드러냈던 것이다.
한보사건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작태도 그렇지만 국민은 지난번 연두회견을 보고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서진들이 어떻게 잘못 보필했기에 대통령이 그토록 안이하고 잘못된 현실인식을 하고 있는가에 개탄했던 것이다. 최근 비서실내의 불화와 동요는 결국 대통령이 사상 처음 국민에게 사과하게까지 만들었다. 오직 충성심만을 기준으로 참모를 기용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전문가 시대다.
비록 대폭개편이 아니어서 아쉽지만 새 비서진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지금 보좌관들이 갖춰야 할 제1의 덕목은 겸손과 책임감, 투철한 사명감, 그리고 민의를 존중하는 자세다. 남은 1년임기중 한보사건 처리와 민심수습, 그리고 대통령이 밝힌 경제회생 등 4대 국정추진 등 새 비서진이 할 일은 너무나 막중하다. 권력남용도 눈치보기도 있어서는 안된다. 정부와 당과의 연결·조정으로 대통령이 원활하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보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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