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모험과 그 이후채영주가 오래간만에, 첫 창작집 「가면 지우기」로부터 환산하면 7년만에 내놓은 소설집 「연인에게 생긴 일」은 그의 소설쓰기가 고심어린 모색의 연속이었음을 직감하게 한다. 가령, 「겨울 소묘」에서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대한 암울한 해석을 만날 수 있다면, 「족자카르타의 베착」에서는 순정한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을 느끼게 된다. 또한 「백지 세습」같은 정신병동 이야기들이 현실을 관념으로 장악하는 알레고리를 지향하는 반면에, 「춤추는 멍텅구리배」는 관념이 삶의 우연에 조롱을 당하고 마는 희극을 선사한다. 그런 점에서 「연인에게 생긴 일」은 혼성적인 소설집이다. 비유컨대, 오페라 세리아(정가극)와 오페라 부파(희가극)가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외형적인 다채로움에도 불구하고 소설집을 관통하는 관심사를 몰라보기란 불가능하다. 그것은 사회에 정주하지 못하는 개인들의 욕구와 소망을 탐구하는 것이다. 채영주에게 사회란 개인의 자유와 성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억압의 체제이다. 그것은 명령과 훈육을 통하여 사람들을 복속시키고, 그들의 삶을 정해진 궤도에 묶어놓는다. 그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당연히 사회적 삶의 운명에 거스르는, 그것의 세습을 거부하는 개인들의 모험이다. 하지만 모험이란 말이 연상시키는 어떠한 영웅적 위풍도 그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과 합류하는 영광도, 존재의 초월적 신비와 마주치는 열광도 없는 것이다. 그들은 안쓰럽게도 지방도시의 술집이나 정신병동 같은 관제 사회의 외곽에 외롭게 서식하고 있는 그들 자신을 발견할 따름이다.
채영주는 탈출과 고립이라는 자유의 관철, 그 종점에 개인의 파멸이 기다리고 있음을 모를만큼 몽상적이지 않다. 그래서 「도시의 향기」에서는 외로움에 자족하고 있는 화가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건달을 등장시키고, 화가가 건달에게 폭행을 당한 끝에 자신의 초라함과 대면하도록 내버려둔다.
소설집 표제작에서는 같은 화가가 이웃 여자에 대한 엉뚱한 사랑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을 수락하는 듯한 전환의 기미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려는 조짐이 있다. 사람들의 모든 사회적 관계가 불확정적인 삶의 와중에서 과연 조화와 제휴의 원리를 건져낼 수 있을까. 이러한 현대소설의 항구적 현안과 새롭게 마주친 대목에서 채영주 소설은 그동안의 방황을 뒤로 하고 성숙을 예고한다.<황종연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황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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