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South China Morning Post 2월26일자대국민 사과와 「깨끗한」 인물의 등용을 통해 한국이 맞닥뜨린 심각한 위기를 완화시키려는 김영삼 대통령의 계획이 과연 어떠한 결말을 보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위기상황을 무마하려 했던 김대통령의 최근 노력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처럼 보인다. 현철씨 관련설에 대한 김대통령의 사과는 아직 한보사태의 전모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만약 그렇다면 야당의 특검제도입 요구도 정당화할 수 있겠다.
내각개편은 오히려 이제까지 대통령을 보좌해온 관료들의 성품과 능력에 대해 왜 아직까지 오판해 왔는가 하는 문제제기와 함께, 새로운 내각이 과연 기존의 내각보다 더 나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부패는 여전히 뿌리 깊이 남아있다. 전두환 노태우씨 재판은 부정부패의 종식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대신, 현직 대통령에게까지 그 화살의 방향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전·노씨를 법의 심판대에 서게 만들었던 김대통령은 이제 자신의 측근들에 대한 스캔들이 폭로되면서 스스로 전직대통령들과 유사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지난 수주일 동안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김대통령이 집권초기부터 구시대적 가신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의 학생시위는 단순히 급진 좌익세력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돌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국민들이 직접 선출한 문민대통령이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더욱 암울해진 한국인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는 집권여당이나 야당이나 모두 민주주의 경험이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의 정치문화는 급경사의 모양을 한 힘겨운 민주주의 학습곡선을 그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이러한 학습 과정을 더욱 더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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