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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 피난처 중국 자싱·하이옌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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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 피난처 중국 자싱·하이옌 르포

입력
1997.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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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애국혼이 살아있는 땅/1932년 잇단 폭탄의거 이후 시작된 고난의 도피/그 여정의 쉼터 자싱·하이옌/지난해 중국정부에 의해 깨끗이 복원된 유적지엔 ‘피난처’ 간판·사진·흉상…/탈출구·비밀통로서 당시 긴박감이 느껴지기도/한국정부는 지난해 선생의 피신을 도와준 추푸청씨에 훈장을 수여했는데…/변변한 기념관 하나없는 우리가 그들 앞에서 부끄럽기만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국내가 한창 시끄럽던 지난해 9월30일 중국 저장(절강)성 자싱(가흥)시 인민정부 사무실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조촐히 열렸다. 우리 정부를 대표한 경창헌 상하이(상해)주재 총영사가 중국인 추푸청(저보성·1873∼ 1948)씨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는 백범 김구 선생이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상하이에서 자싱과 하이옌(해염)현으로 피신했을 당시 피난처를 제공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추씨를 위한 것이었다. 백범 선생의 차남 김신(75)씨는 추씨의 손자들을 부둥켜 안고 연신 눈물을 흘렸다.

중국정부는 또 열흘 후 쌍십절(10월10일)을 기해 64년동안 망각속에 묻혀있던 자싱시와 하이옌현의 백범 피난처 2곳을 복원해 유적지로 지정하고 관리에 들어갔다.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두 「사건」은 모두 백범이 1932년 5월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피난살이에 나선 데서 비롯했다. 그해 1월 이봉창 의사의 도쿄(동경) 폭탄투척 의거와 4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코우(홍구)공원 폭탄투척 의거 이후 임시정부 국무위원이던 백범은 사건 배후조종자로 지목돼 일본 경찰의 집요한 추적을 받게 된다. 현상금만 60만원. 당시 초등학교 교사 월급이 20원, 쌀 한가마가 2원이었으니 일본 경찰이 얼마나 혈안이 돼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백범은 상하이를 빠져 나와 임정 외사국장 박찬익 선생의 주선으로 알게 된 추씨가 자싱시에 마련한 거처에 은신하게 된다.

취재팀이 당시 백범의 피난경로를 따라 피난처를 둘러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취재팀은 지난 21일 상오 8시 상하이발 완행열차를 타고 자싱으로 향했다. 자싱은 상하이에서 서남쪽으로 80여㎞ 떨어져 있는 소도시. 차창에 비친 농촌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백범은 이 열차를 타고 피난길에 오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검고 큰 그의 얼굴이 자꾸만 차창을 메웠다.

2시간쯤 달려 열차는 자싱역에 도착했다. 말끔하게 단장된 역사 옆에는 백범이 빠져 나갔을 구역사가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 뒤 하오 1시30분께 시관계자들의 안내로 백범의 피난처를 찾아갔다.

1800년대 말 지어진 목조건물이 고색창연하게 늘어 서있는 좁은 골목을 몇차례 돌아 「메이완졔(매만가) 76―4」라는 문패가 붙은 나무대문 앞에 섰다. 깨끗하게 단장된 목조 2층의 집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울컥 솟아 올랐다. 대문을 지나 20여m 안쪽으로 들어가니 현관 입구에 「대한민국 김구 선생 항일시기 피난처」라고 한자로 쓴 녹색간판이 단정하게 붙어 있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이 피난처는 원래 추씨가 수양아들 천통성(진동생)에게 지어준 집의 별채였다. 백범은 당시 1층을 접견실과 식당으로 쓰고 2층을 침실로 사용했다. 접견실 벽에는 백범과 추씨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은 옷장처럼 보이는 문으로 가려져 있어 그곳이 2층으로 통하는 입구임을 쉽사리 알기 어렵게 돼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돗자리가 깔려 있는 침대와 옷장 등이 놓여 있었다. 벽에는 망을 볼 수 있도록 2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관리인이 2층 한쪽 모퉁이로 가더니 마룻바닥의 널빤지 2장을 걷어 냈다. 옆에는 사다리가 놓여 있었다. 비상시에는 언제든 널빤지를 들치고 사다리를 내려 도망칠 수 있도록 만든 비상구였다. 관리인의 설명은 이랬다. 『널빤지를 걷어내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 가면 바로 호숫가로 통합니다. 거기에는 주아이바오(주애보)라는 처녀 뱃사공이 배를 대고 24시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호수 반대쪽으로 건너가 갈대밭에 숨으면 좀체로 눈에 띄지 않지요. 지금은 물이 많이 줄었지만 예전에는 바로 집앞까지 물이 차 있었어요』

김신씨는 당시 이곳에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열한살 때 할머니와 함께 이곳에 와서 난생 처음 아버지를 뵈었어요. 얼굴이 검고 키가 큰 남자가 성큼성큼 오더니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으며 「어머니」라고 하더군요.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신아 이리 와 봐라, 이 사람이 네 아버지다」고 했어요. 아버지의 일굴을 보고 얼마나 겁이 났던지 할머니 뒤에 숨어 버렸지요』

이곳에서 300여m 떨어진 곳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피난처가 있었다. 이시영 이동녕 엄항섭 안공근 등 임정요인들은 일경의 추적을 피해 32년부터 4년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이들의 피난처도 추씨가 알선해 줬다. 큼지막한 대문을 열고 안쪽에 들어가면 당시 임정요인들의 기념촬영 사진 10여장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붙어있다. 하지만 당시 임정요인들조차 백범이 부근에 피신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추씨 일가는 이웃나라의 혁명지도자를 이토록 세심하게 보호했던 것이다.

백범과 임정요인들의 피난처를 둘러본 뒤 저장성 3대 호수 가운데 하나인 난후(남호)를 찾았다. 「백범일지」에 『자싱 피난시절 천통성 내외와 함께 자주 구경했다』고 기록된 곳이다. 청나라 건륭제의 겨울 휴양지로도 유명한 이 호수는 1921년 7월 마오쩌둥(모택동) 저우언라이(주은래) 등이 물위에 배를 띄우고 제1차 중국공산당 대회를 개최한 곳이기도 하다. 물보라에 묻힌 옌위로우(연우루) 등 호수 전체가 한폭의 동양화였다.

다음날 아침 백범의 제2의 피난처가 있는 하이옌으로 갔다. 백범은 자싱 피난처에 일본 첩자들의 손길이 다가오자 추씨의 장남인 펑장(봉장)의 주선으로 하이옌으로 은신처를 옮겼다. 당시 하이옌에는 펑장의 처가가 있었는데 그의 장인은 이 지방의 부호이자 덕망가였다. 펑장은 출산한 지 6개월 밖에 안된 부인 주쟈루이(주가)를 백범의 부인으로 위장시켜 이곳으로 보냈다. 백범은 도착 당일 주쟈루이의 친정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3, 4㎞ 산길을 넘어 피난처로 향했다.

취재팀은 백범이 걸었던 산길을 따라 걸었다. 산마루에는 당시 주쟈루이의 친정에서 지은 윙안팅(영안정)이라는 정자가 말끔히 수리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백범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땀을 씻고 간 정자였다.

하이옌 피난처는 주쟈루이의 숙부가 사용하던 여름 별장이었다. 마을로 내려와 피난처로 향하는 길에 후춘양(호춘양·82)이라는 노인을 만났다. 『당시 형님이 추씨 집안의 묘지기로 그 별장에 머물렀지. 그래서 나도 김구 선생을 3번정도 봤지만 그가 혁명가인 줄은 전혀 몰랐어. 유적지로 지정된 뒤 사진을 보고서야 알았지. 그때는 그저 광둥(광동)출신의 장사꾼으로 알았어』

대나무 숲 사이로 커다란 기와집 한채가 보였다. 워낙 깨끗해 새로 지은 집처럼 보였다. 돌계단을 올라가 대문을 지나 집 뒤로 돌아갔다.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구 피난처」라는 한자 현판과 백범의 흉상이 눈앞으로 다가섰다. 쪽문을 열고 들어간 전시실에는 백범과 임정요인, 추푸청, 주쟈루이 등의 경력과 활약상을 담은 각종 자료와 사진이 긴 설명문과 함께 깨끗하게 전시돼 있었다. 또 다른 방에는 백범이 썼던 것과 같은 종류의 침대와 책상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백범은 하이옌에서 수개월을 지내고 다시 자싱으로 돌아와 인근 농촌에 있는 천통성의 친구 쑨용바오(손용보)씨 집에 숨어 지냈다. 얼마 후 백범은 자싱의 동문으로 통하는 큰길가 광장에서 중국 군경의 훈련모습을 지켜보다 관헌에 체포됐으나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천통성의 보증으로 운좋게 풀려났다. 자싱과 하이옌 시절은 백범으로서는 동포들에게서도 받아보지 못한 온정을 중국인들로부터 받았던 때였다. 자주독립이란 민족적 과제가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는다는 체험과 확신이 이후 그의 독립운동 열정을 더욱 부채질했음에 틀림없다.<자싱(중국저장성)=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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